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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 Jan 27. 2023

편의점에서 빵과 우유를 받고
눈물났습니다

60이 되니 복잡해 지는 것들

오늘 아침 겉절이를 조금 담아서 출근했다. 공방 근처에 사는 지인 부부에게 갖다 주기 위해서다. 몇 번 그 집에서 식사를 했는데 그때마다 시골에서 친척이 보내준 묵은지 김치를 상에 내왔다. 잘 삭은 묵은지는 맛이 일품이지만 매번 먹기는 그렇다. 지인은 김치를 담을 줄 모른다. 나도 김치를 담을 줄 모른다. 우리의 올케가 넉넉히 담아주고 간 겉절이를 먹을 때마다 그 지인부부 생각이 났는데 결국 거의 다 먹고 조금 남았을 때야 싸들고 나왔다. 그런데 남편 생각은 달랐다. 그걸 주면 그들이 뭐라고 생각할까였다.

 

- 뭘 뭐라고 생각해? 겉절이구나 반갑구나 하겠지. 

-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아요. 

- 뭐가? 

- 암튼 이건 아니고, 갖다 주는 거 반대.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니 쉬운 게 없다. 그러면서 문득 생각났다. 공방 초창기였다. 옆집 편의점에서 택배를 접수하고 돌아서는데 판매원아주머니가 판매기한이 다 됐다며 카스텔라와 딸기우유를 건넸다. 


- 두 분이 출출할 텐데 가져가서 드셔요.

- 왜요. 드시지 않고.

- 우린 자주 먹어요. 얼른 가져가셔서 드세요.


얼떨결에 받아왔지만 공방을 들어서기도 전에 눈물이 나왔다. 무척 복잡한 감정이어서 뭐라 표현하기가 어렵다. 우리가 형편이 어려워 보였을까? 코로나19로 자영업들이 무척 어렵다고들 뉴스에게 떠들 때였다. 우리도 곤란하긴 했지만 누구에게 손을 내밀 정도는 아니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보였다는 게 좀 울적했던 것 같다. 버리기 아까우니 누구라도 나눠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준 건데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인 걸까? 너나없이 힘들 때 나눔 받는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 위로받은 마음도 없지 않았지만, 누군가에게 뜬금없이 받는다는 건 이렇게 복잡한 심정을 갖게 했다. 


우리 부부는 연금생활자다. 국민연금생활자. 한 사람만 받고 있고 한 사람은 기간이 늘어져서 4-5년 더 있어야 한다. 생활비 통장으로 들어온 연금은 한 달 동안 이런저런 비용으로 쓰인다. 체크카드로 연동해 놓고 두부도 사고 샴푸도 주문한다. 오로지 생활비로만 쓰기에 어떤 달은 남기도 한다. 

간혹 SNS친구들의 선동(?)에 유혹당해 소소한 기부로 출금되기도 한다. 매월 천 원에서 삼천 원, 오천 원, 이만 원... 간혹 일시금으로 십만 원에 이르는 거금도 나간다. 그들보다는 우리 형편이 아직은 낫다는 생각, 이 정도 금액은 우리에겐 없어도 되는, 이 정도는 커피 한잔(안 사 먹은 지 오래됐지만) 안 사 먹으면 되고, 외식 한번 안 하면 된다는 생각에서다. 더 필요한 사람, 더 의미 있게, 더 요긴하게 사용될 사람에게 보낸다 생각하면 기꺼운 마음이다. 이렇게 나누지만 뭘 바라진 않는다. 누구나 그럴 게다. 그러나 고정지출은 조심스럽다. 이러다 형편이 어려워지면 끊으면 된다고 생각도 해보지만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적은 금액일지라도 계획을 세웠을 테고, 후원이 중단되면 서운하거나 난처하거나 뭐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시작은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 


이번 명절에 조카사위에게서 되려 세뱃돈을 받았다. 처음 있는 일이라 당황스러웠지만 적지 않은 감동을 받았다. '다 컸구나' 대견했다. 게다가 그 부부는 23주째 임신 중이다. 엄마가 될 조카는 입덧이 심할 때 일을 그만두었고 아빠가 될 조카사위는 종교인인데 타 지역으로 발령을 받았다.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아이를 낳겠다고 하니 애국자다. 너무 힘들게 살게 두면 안 된다. 아이가 하나 태어나면 온 동네사람들이 키웠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마침 고정지출이 하나 줄었다.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액수만큼 보태야겠다는 생각에 남편과 의논을 했다. 

다음날 돌아온 반응은 그럴 필요 없고 오버란다. 젊은 부부가 알아서 잘 살아갈 것이고 양가의 엄마들도 손 놓고 있겠냐는 것이다. 받는 사람 입장을 생각해 보란다. 뜬금없이 삼촌네가 보내는 정기후원금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혹시 딴 맘(우리의 노후를 책임져달라는?) 있는 건 아닐까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건 아닐지 그런 말이다. 비록 사회적 책임감의 발로였으나 듣고 보니 영 틀린 말은 아니다. 편의점 '사건'을 떠올리며 내 마음과 달리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겠다. 사소한 것이라도 누군가에게 베푼다는 것, 그리고 받는다는 것이 참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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