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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정냥이 Mar 15. 2020

[번외편]'투명성'은 어떻게 대표어가 되었나

현상에 언어가 씌워지고 그것이 자리잡는 과정


지난 2월, 코로나19 31번 확진자 이후 확진자가 놀라운 속도로 증가하는 가운데, 이런 증가는 한국 사회가 개방적이고 투명하기 때문이라는 외신의 기사가 있었다. 미국 주간지 타임Time에 실렸다. https://time.com/5789596/south-korea-coronavirus-outbreak/ 이후 정치인들은 코로나19에 대처하는 정부의 방침에 ‘투명성’이라는 표현을 내세웠다. 국내에서만 쓰는 것이 아니라 외교에서도 한국은 투명하게 잘 하고 있다고 할 때도 쓴다.


나는 경향신문에서 타임지의 기사를 처음 알게 되었다. 확진자 급증으로 한국 사회는 충격에 빠진 때였다. 영화 「기생충」의 수상 소식은 이전에 있었던 일로 이미 효력이 없었고, 기운 북돋을 기사라고는 이것밖에 없었다. 한국 사회의 투명성과 개방성이라는 헤드라인을 단 기사에는 고양된 감정으로 우리를 스스로 격려하는 댓글들이 달렸다.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2251626011&code=970100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32&aid=0002993867


기사가 뜬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댓글 중 하나에 원문 url이 있었다. 나는 그 url을 따라 원문을 읽었다. 원제는 How South Korea’s Coronavirus Outbreak Got so Quickly out of Control, 한국의 코로나 발생은 어떻게 그렇게 빨리 통제불가가 되었는가,이다. 조금 의역하면, 어떻게 그렇게 빨리 확산되었나,로 보아도 되겠다. 스크롤을 여러 번 해야 하니 짧은 기사는 아니다. 기사가 등록된 2월 24일 당시 한국의 코로나 진행 상황과 신천지가 어떤 단체인지를 설명하고 있다. 또 정부가 중국인 입금 금지를 하지 않은 데 대한 국민의 분노, 북한, 대만 같은 주변국이 중국인 입국을 막으며 대처한 사실을 실었다. 한국의 코로나 사태를 전반적으로 정리한 기사였다. 기사가 끝날 무렵, 한국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급격히 늘어나는 것은 한국 사회가 비교적 개방적이고 투명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확진자 급증이라는 현상을 다른 관점에서 보고 역으로 분석했는데, 분석은 탁월했고 표현은 적절했다. 

 

A major reason for the rapid surge in confirmed coronavirus cases is the relative openness and transparency of South Korean society. “The number of cases in South Korea seems high at least in part because the country has high diagnostic capability, a free press and a democratically accountable system. Very few countries in the region have all those,” said Andray Abrahamian, a visiting scholar at George Mason University Korea.


경향신문의 기사는 "한국 코로나19 빠른 확산세, 한국사회 투명성과 개방성 반영"라는 헤드라인으로 타임지 기사뿐 아니라 여러 의료 전문가의 평가를 들며 이들이 한국 의료의 역량을 높이 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경향신문 기사는 타임지 원문을 전체적으로 소개했고, 그중에는 국민들이 중국인 입국 금지를 하지 않은 데 대해 비판적이라는 내용도 1문장 포함되어 있다. 타임지 원문에서는 5문단(인용문 1문단으로 포함)에 걸쳐 정부가 코로나19의 위험성을 간과했기 때문에 사태가 더 심각해졌다는 내용,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중국인 입국 금지를 실시하지 않은 데 대해 탄핵을 요구하는 글에 70만 명이 넘게 서명했다는 내용, 최대 무역국인 중국에게 양해를 구하지 못해 국민의 건강을 지키지 못했다는 내용도 있으니 비판적 부분도 비중이 적지 않다. 다만 경향신문 기사는 주제를 대처 방식이나 의료로 잡았기에, 정치나 외교는 간략히 요약했다.


타임지 원문과 그것을 인용한 경향신문의 기사-이 두 기사의 갭과 댓글의 방향을 보고 있자니 의아하기 시작했다. 이 의아함이 두어 주가 지나도 사그라지지 않은 이유는, 그 이후에 이 두 기사에 영향을 받은 기사가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두 기사에 등장한 단어의 쓰임이다. 나는 타임지 기사에서 파생된 단어들이 어떻게 쓰이는지 계속 목격하고 있다. 한국을 칭찬하는 꽤 훌륭한 기사로 사람들에게 전파되며 자리잡기 시작했고 실제로 이 기사에 등장하는 단어에 의존하여 감염병 대응 방향을 잡아간다는 생각마저 든다. 


타임지 기사가 등록된 2월 24일, 그 기사가 우리나라에 소개된 2월 25일 이전에 ‘투명성’을 코로나 대응과 직접 연결하여 언급하는 국내 기사는 없었다. 한 기사에 ‘코로나’ ‘투명성’이 둘 다 등장할지언정 '현재 한국이 코로나 사태에 투명성 있게 방어한다'는 내용은 아니다. 코로나 대응과 관련하여 ‘투명성’ 단어의 사용은 우리나라 언론에 타임 기사가 소개된 2월 25일부터 급격히 증가한다. 그전에도 진단 능력은 뛰어났고 의료진은 훌륭했으며 결과는 다른 나라에 비해 투명하게 알려졌다. 그러나 그전, 그러니까 이 기사 전에는 이 상황 대처 능력을 ‘투명성’ ‘개방성’이라는 단어로 표현해 내지는 못하거나 하지 않았다. 반대로 기사 이후, 개방성과 투명성은 한국 코로나 대응을 대표하는 단어가 되었다. 현재 상황을 설명할 뿐 아니라 앞으로의 코로나 대응을 결정짓는 역할까지 한다.


원문에서 언급된 5가지의 단어, 투명성, 개방성, 진단 능력, 자유로운 언론, 민주적 절차는 모두 좋은 의미로 쓸 수 있는 말이며 특히 ‘투명성’의 쓰임이 두드러진다. '진단 능력'은 수치와 연결되는 객관적 사실 자체로 구호로 쓸 단어는 아니다. '자유로운 언론'은 중국과 달리 확진자 수를 굳이 속이려 하지 않고 언론인을 탄압하거나 의료인을 감금하지 않으니 현재 언론사에서 딱히 많이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가짜뉴스를 서로 경계하는 실정이다. ‘투명성’은 다소 추상적이나 검사 결과를 숨기지 않고 확진자를 보고하는 지금 시스템에 맞는다. 또한 일본의 코로나 대책과 견주었을 때 가장 두드러지는 강점이다. 그러나 이 특성이 사실이자 강점이라는 것과, 이 말이 전략적으로 쓰이고 힘을 얻으며 정치적으로 자리 잡는지를 목도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이다. ‘투명성’은 자신의 말에 영향력을 지닌 사람들, 정치인, 고위 공무원이 잘 쓰는 말이 되었다. 정치적으로 유용한 말이 되었다.


2월 25일, 박광온 의원은 확진자 증가는 한국의 국가 체계가 잘 작동한다는 말이라고 했다. 이 말이 코로나에 괴로움을 받는 국민들에게 비판을 받자, 외신 보도를 인용했다고 밝혔다. 여러 매체에서 이 기사를 냈는데, 그중 타임지 원문 내용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기사의 url을 붙인다.(박광온 의원여당이 "韓 칭찬했다"는 타임, 원제목은 "어떻게 통제불능 됐나“http://bitly.kr/k6DIGCMi) 우연인지, 참고했는지는 모르겠는데, 3월 8일자 청와대의 발표를 보면 정부는 타임지에서 쓴 단어들을 그대로 사용한다.(http://news.tf.co.kr/read/ptoday/1784660.htm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오후 서면 브리핑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일본의 과도하고 불합리한 조치에 한국은 투명성·개방성·민주적 절차라는 코로나19 대응 3원칙에 따라 절제된 방식으로 상응하는 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경화 장관 역시 한국의 방역 시스템이 투명하고 강하다고 말한다. 외신에서 보도된 한국의 코로나 상황도 곧잘 ‘투명성’과 ‘개방성’으로 다시 연결된다.


투명성, 개방성은 한국의 코로나 대응 시스템을 대표하는 말이 되었다. 그러나 타임지 전에는  지금 이 말이나 이 말에서 파생된 긍정적 표현을 어떤 정치인도, 고위 공무원도 쓰지 않다. 즉, 한국은 코로나에 대하여 이 단어를 스스로 발굴하지 못했다.


또 하나. 그 원점인 타임지는 어땠는가 다시 보자. 타임지 원문은 그때까지 한국 코로나 사태에 대한 모든 내용의 결정판이었다. 그때 코로나를 둘러싼 큼직한 이슈 중에 마스크 사태가 이 지경이 이르지 않도록 수출을 막거나 선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라는 주제만 없을 뿐, 전반적 사항이 다 들어있다. 그중 한국 언론 기자는 한국 방역 시스템 중 ‘투명성’ ‘개방성’을 강조하는 여러 예시를 모아 기사를 썼다. 타임지 기사는 메인으로 소개되었다. 네티즌은 환호했다. 한국민이라 자랑스럽고 우리는 이 사태를 잘 극복할 거라고 한껏 고양되었다. 정치권에서 ‘투명성’ 단어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원문에서 투명성과 개방성이 포함된 내용은 전체 중 일부이다. 심지어 한 단락에 불과하다. 즉, 이것은 한국을 칭찬하는 기사가 아니었다.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한국을 칭찬하는 기사로 이용될 뿐이다. 


원문은 미국에서 바라본 현 한국 사회와 의료진에 대해 좋은 말뿐 아니라 정부에 대한 비판적 상황을 아우른다. 지금 한국이 잘 대응하고 있다고 ‘투명성’ ‘개방성’ ‘민주적 절차’ ‘자유로운 언론’ ‘뛰어난 진단 능력’을 쓰는 정치인, 고위 공직자들은 과연 원문의 내용을 다 읽고 호기롭게 이야기하는지 궁금하다. 아마 안 읽었을 것 같다. 원문에는 심지어 ‘문재인 바이러스’라는 과격한 단어도 있다. 읽었다면 이런 단어를 외신에 흘렸다며 난리난리 쳤을 텐데, 아무도 얘기하지 않고 ‘개방성’ ‘투명성’만 유용하게 쓰는 것을 보면, 분명 안 읽었을 것 같다.


타임지 기사는 대구 시민의 말로 끝난다. 대학 생활은 연기되었고 친구들과 식구들은 바이러스 얘기만 한다. 거리는 조용하고 행인이 별로 없으며, 모두 마스크를 썼다. 가게에는 마스크가 거의 없거나 품절이며 대형 백화점은 문을 닫았다.   


이 쓸쓸한 풍경이 2월 24일의 기사에 드러난 한국이다.




나는 영어를 잘하지 않는다. 원어민이 사용하는 단어와 행간의 뉘앙스를 다 파악하지 못한다. 내가 이 글에서 말한 정도는, 화학적 뉘앙스 파악이 아니라 물리적 사실로도 되는 수준이기에 내가 읽은 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했다. 원문에 담긴 내용 중 일부 단어는 헤드라인으로 쓰이며 한국을 칭찬하는 기사로 사람들에게 힘이 되었지만, 원문의 객관성을 본 나는 이 기사의 표현이 정치적으로 전파되고 힘을 얻고 자리를 잡는지를 지켜보며 내내 이 경험을 풀어내고 싶었다.


나는 정치적 의견이 강하지 않고 그것을 주장할 만큼 탄탄한 근거도 없다. 내가 인용으로 든 매체는 그 언론사가 보수인지, 아닌지를 골라서 택하지는 않았다. 검색된 페이지 중에서 해당 내용을 더 많이, 더 편리하게 볼 수 있는 url을 여기에 옮겼을 뿐이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풀어내지도 못했다. 

언어의 쓰임에 대해, 언어가 자리를 잡고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명확히 잡아나가는 효율성에 대해. 반대로 그 효율성이 사람들에게 판단의 프레임을 씌울 수 있음에 대해. 원문이 어떠하든 유리한 단어만 발췌하여 유리한 대로 끌고 가며,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음에도 원문을 보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사실에 대해. 그리고 ‘투명성’과 ‘개방성’을 이렇게 잘 쓰면서 진작 발굴하지 못한 사람들처럼 내가 발굴하지 못했거나 어렴풋이 생각은 있는데 적당한 단어를 붙이지 못하는 뜬구름 같은 주제에 대해.

하고 싶은 말과 설명하고 싶은 생각을 시원스레 털어내지는 못했다.


정치과 언론에서 유용한 말은, 계속 노출되며 영향을 줄 것이다. 처음에는 국민이 거부하더라도 시간이 지나고 코로나19 사태가 잠잠해지며 남는 것은 중국인 입국 금지나 마스크가 아닌 투명성이 될지도 모른다.

https://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ws&sm=tab_jum&query=%EC%BD%94%EB%A1%9C%EB%82%9819+%ED%88%AC%EB%AA%85%EC%84%B1

투명성에 대해서 한국은 단연 독보적이고 유리한 위치를 차지한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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