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집 책꽂이에 꽂힌 책들1
참 이상하고 나약하지. 마음에 엉킴이 있고 서글퍼질 때야 비로서 글을 쓸 생각이 절실해지고 쓰는 행동까지 이어지고 무어라고 쓸 수 있다는 건.
며칠 사이로 급격히 마음이 지쳤다.
말은 '며칠 새'이지만, 그 전에 오랜 기간이 쌓이고 쌓였기에 급격한 피로감이 절정으로 치달았다. 피라미드는 쌓이고 있었고 며칠 전 겪은 사건 두어 가지가 로젠타석으로 올랐을 뿐이다. 며칠 지나면 이 피라미드 자체가 와르르 무너질 수도 있음을 안다. 그러나 얼마가 지나면 나는 같은 감정이 서린 돌들로 다시 서운함의 피라미드를 쌓을 테다. 결정적 사건이 있을 때 또 다시 로젠타석이 올라가고. 그럼에도 어떤 사람에 대해서는, 어떤 감정에 대해서는 나는 시간이 지나면 또 허물 테다. 모든 사람에 대해서가 아니라 어떤 사람에 대해서는. 그러니 착각하지 말자. 당신이 마음대로 해도 상대가 다 받아들이고 또는 뒤에 수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당신에 대해서는 아닐 수도 있다. 이유는 하나. 당신이 다시 받아들여질 만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터의 직원 하나는 이곳에 오기 전에 직장 생활 경험이 적어도 3년은 되는데, 처음 왔을 때도, 지금도, 나는 이 직원이 다른 데서 일했다고는 믿기가 어렵다.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부터 상사들은 내게 이 직원을 지적하기 시작했다. 인사, 표정, 근태 등의 기본 태도에 대해서였다. 그 말이 틀리지 않음을 알고 그 이상을 알지만, 나는 이 직원이 밝고 손이 빠르고 일을 잘 한다고, 주의사항을 주면 수용한다고 변명하고 방어했다. 그리고 나는 실제로 그런 점부터 보려 했다. 우선 이 친구를 보듬어 주고 마음을 연 뒤에 직장에 어울리는 매너를 조금씩 익히가도록 해야지 생각했다. 나는 노력했다. 그 친구도 내 말을 들어주었음을 안다. 주의를 주면 잘 수용하는 듯하지만 결정적 베이스가 망가진 것인지 처음부터 형성이 안 되었는지, 본인에게는 친밀감이나 타인에게는 곧잘 무례해지는 말을 해서 제재해야 했고, 자신의 즐거운 자신감을 넘어 타인의 방식을 트집 잡는 태도 등은 내게도 쌓이고 쌓였다.
지금은 그 친구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그를 받아들일 여력이 없다. 나는 불편한 감정을 자주 드러내고야 만다. 3년 이상 여러 직장에서 일할 동안 그 어떤 선배도, 어른도, 이 친구에게 일의 기본 자세, 동료와의 기본 자세. 일터에서의 기본 갖춤을 말하지 않았던가? 사람이 꼭 다듬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이들을 이렇게 불편하게 한다면, 조절되어야 하고 그건 먼저 일을 시작한 일 선배, 상사, 어른들이 계속해서 해 주어야 할 일이다. 그 불편함이 결국은 본인도 불편하게 하기에, 그것은 해 주어야 될 일이 맞다.
며칠 사이에 내 마음을 지치게 한 또 다른 사람 ㅇ. ㅇ은 처음에 의존적 사이가 싫다고 했다. 그 뒤 ㅇ은 나와 친해지며 서로 위로가 되는 사이가 되었다. 그런 ㅇ이 나와의 약속을 정식으로 거절하지도 않고서 원래 없었던 듯 자기 일정을 얘기했다. 내 서운함은, 그 날, 그 다음날, 그리고 오늘까지 계속 이어졌다. 일터의 일 때문에 내가 ㅇ에게 내 부정적 감정을 토로해 대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지만 그 또한 적당히 귀를 닫고 대처하는 것을 안다. 그리고 이 이유 때문에 약속을 미룬 것이 아니라, 그에게는 대수롭지도 않은 일,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듯 얘기한 것처럼 지나쳐 버렸다. 나는 ㅇ을 만나고 같이 있고 싶었다. 그러면 마음이 안정될 것 같았다. 원래는 오늘 주려던 선물을 어제 퇴근하는 길에 주고 왔다. 그 뒤로 언제라고 울음이 터질 듯 눈에는 물이 차 있고 마음은 입은 열기가 싫다. 이럴 때면 나는 떠올리는 거다. ㅇ은 의존적 사이가 싫다고 했지. ㅇ이 지닌 나보다 더 심한 개인주의적 성향을 이럴 때 나는 떠올리며 어쩔 수 없는 한계라고 볼멘 소리로 말하게 되는 거다. 그 개인주의적 성향 때문에 또 다른 개인적 성향을 지닌 나와 잘 지내고 있음을 알면서도.
ㅇ과 약속을 취소하고 집에서 글을 쓴다.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를 들었고, Sia의 목소리를 들었고 그러다 나온 에드 쉬런의 목소리가 참 편하다고 느끼면서 글을 쓴다. 밥을 볶아서 늦은 아침식사를 먹었다. 사과 한 알을 먹고 싶지만 일어나기 귀찮아 아직 앉아 있다. 엄마한테 전화하고 싶지만 그러면 엄마가 분명 언제 오느냐고 물으실 것을 알고, 나는 지금 가고 싶지가 않아서, 전화하지 않고 있다*.
작은 집, 작은 책꽂이에 꽂힌 책들을 본다.
The Wonder Garden, 크리스트자나 윌리엄스 그림, 제니 브룸 글, Wide Eyed Editions, 2015
우리나라 번역본도 있다. 『원더 가든』이라 이름 붙였다. ㅇ이 작년 내 생일에 주었던 그림책. 세계의 경이로운 생물 서식지 다섯 곳의 환경과 그곳에 사는 특징적 동물을 보여주는 그림책이다. 큰 판형에 화려하고 채도 높은 색이 가득하다. 밀도도 높고 농도도 짙다. 색채도, 형태도, 구성도 대담하다. 낮은 채도에 흐르는 선을 좋아하는 터라 처음에는 내 눈 앞에 펼쳐진 꽉 차디 꽉 찬 풍경이 반갑지만은 않았다. 그러다 블랙 포레스트The Black Forest를 보려고 책을 펼치고 다시 보며 생각한다. The Wonder Garden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놀라운 책이라고. 한 화면에 텍스트와 일러스트가 알차게도 담겨 있다. 화면에 동식물이 담겨 있고 사이사이에 텍스트가 있는데, 글밥이 적지는 않다. 내용이 단편적으로 각 동물을 설명하는 것이고 전체적 구성이 좋아서 그림이 크다고 해서 방해되지는 않는다. 배경 색채로 숲의 묘한 신비감, 사막의 권태로운 열기를 발산하는 재주도 좋다.
『여우』, 마거릿 와일드 글, 론 브룩스 그림, 강도은 옮김, 파랑새, 2012
2012년에 나왔다는데 나는 이번 여름에야 보았다. 이 또한 놀라운 책. 글도, 그림도, 전체 구성도, 말할 게 많은 흥미로운 책이다. 읽는 이가 처한 상황에 따라 매번 가장 인상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다를 텐데, 지금 내게는 이렇다. 한 못난 존재가 구성체를 얼마나 망칠 수 있는가.
『여름밤에』, 문명예 글·그림, 재능교육, 2019
ㅇ과 그림책 한 권씩 가져와서 읽어주자고 했다. 서점에서 둘러보는데, 마침 여름밤, 밤하늘, 밤 풍경을 주제로 여러 권이 있었다. 나는 여름밤을 좋아해서 반가워하며 보다 이 책을 골랐다. '여름밤' 자체도 내게는 판타지여서, 팬시 상품 같은 판타지를 갖다 붙이면 오히려 책에 갖힌 풍경처럼 느껴지고 만다. 이 책은 세 권 중 가장 자연스럽 표현했고, 그럼에도 어느 정도는 환상을 가미한 듯 느꼈다. 내용은 뉘집 개 아롱이의 여름밤 산책이다. 여름밤이 좋다고 샀는데, 수많은 '개굴개굴' 글자를 발견한 건 그 다음이었다. 어지러워서 이걸 어찌 읽어주나...
『나그네의 선물』, 크리스 반 알스버그 글·그림, 김경연 옮김, 풀빛, 2003
책 읽어주자는 얘기에 ㅇ이 가져온 책. 크리스 반 알스버그는 영화 「주만지」「폴라 익스프레스」의 원작자이다. 이 책들도 즐겁지만 『세상에서 가장 맛잇는 무화과』『압둘 가사지의 정원』 등을 보면 화풍에서뿐 아니라 이야기 전개에서도 이 작가만의 독특한 스타일이 있다. 앞의 두 책은 정교한 흑백 그림으로 진행되는데, 스릴감도 있고 살짝 그로테스크하기도 하다. 재미는 있으나 편안하지는 않다.
『나그네의 선물』은 앞의 두 책과는 또 다른 화풍이다. 올컬러에 미국스러운 풍경이 펼쳐진다. 미국스러운 색채와 미국스러운 붓질로. 참 이상한 말인데 그렇다. 유럽 그림책에서 이런 색채, 실험이 없는 정적이고 구체적인 유화로 화면을 채운 그림책을 본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ㅇ과 그림책을 보는 순간, 미국스럽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좋아하는 그림체가 아니라고 생각했음에도(그러고 보니 ㅇ이 선물한 또 다른 그림책 The Wonder Garden도 그랬다) 이야기도 좋았고, 그림도 좋았다. 굉장히 정적인 듯하지만 동작과 표정을 보면, 이 작가가 정말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구나, 하고 감탄한다. 출판사에서 일할 때, 사무실 책장에 늘 있던 책일 것이다. 읽지 않고도 익숙해서 읽은 줄 알았건만,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이 이야기는 그날 처음으로, ㅇ과 함께 읽었다.
그리고 또 많은 책들이 작은집 작은 책꽂이에 있다. 내가 좋아서 가져온 책, 그 책에 대해 싶어 가져온 책, 작은집에서 늘린 책들이 3단 책장에 꽉 차 있다. 다른 살림살이도 좀 포함되어 있기는 하다. 처음에는 낮은 책꽂이를 길게 두고 싶었지만, 곧 내 바람을 접고 말았다. 창문 쪽으로 이불을 털다 보니 주로 여는 창문 아래에는 책꽂이도, 책상도 두고 싶지 않았다.
많지 않지만 적지도 않은 책들. 이 책들은 내가 써 주기를 기다리지도 않을 거다. 내가 이 책들이 필요할 뿐. 위로가 필요할 때, 가까운 사람에게 안정을 구하지 못하고 스스로 결핍을 느낄 때, 내가 찾고 의지하는 게 그림책일 때가 있다. 요 몇 달 사이에는 그랬다. 『세상 끝에 있는 너에게』는 곰과 큰 새의 우정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지만 애틋한 사랑이라고 보아도 좋고, 『폭풍우 치는 밤에』의 가부와 메이도 그렇다. 『변신』은 카프카의 『변신』과 달리 비극적이지 않은데 그 이유는 하나, 가족들과 친구들이 그레고리 샘슨의 바뀐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어주었거나 바뀌어도 상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렌지색 여우 페리보』는 금년에 읽고 산 책 중에 가장 별로였다. 이기적이지 않은 사랑에 대해 말하려는 시도는 좋았으나 범세계적 차원에다 판타지적 방법으로 나아가다 설득력을 잃었고, 뒤면지에 알파벳마다 좋은 구절을 적은 구성은 팬시 상품 같은 느낌마저 주었다. 밸런스를 못 맞추고 너무 나갔다는 생각을 들었던 책이다.
그리고 또 여러 책들. 책들은 기다리지 않지만 나는 이 책들을 다시 읽고 말하기를 기다린다. 내 처지에서 할 수 있는 생각, 느낌, 언어로. 고립되기 싫어 사람들 속에서 일하지만 그러느라 생각의 힘이 예전보다 약해졌고 풍부하지도 않다. 오늘처럼, 일주일에, 아니 2주일에 한 번이라도 오늘처럼만 쓰고 또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작업한 듯 작업했으니 오늘은 여기까지. 이제 엄마네 집에 갈란다. 내 작은집이자 작업실은 쉬게 놔두고.
*볶음밥 해 먹고 엄마한테 전화했더니만 엄마가 내가 언제 올 건지도 묻지도 않으신다. 책 보고 글 쓰고 싶어서 지금 가고 싶지 않아서 얘기한댔더니 엄마가 너무너무 쿨하게, 네 마음대로 해, 라고 하신다. 전화도 안 하신다. 다만. 밥만 잘 먹으라고. 글 쓰는 게 네게 가장 중요한 일 아니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