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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정냥이 Oct 04. 2021

겐지를 생각하다-2

5

겐지는 농촌 경제에 도움이 되고 싶다며 농학교 교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농촌활동에 나섰다. 이때 이와테 현의 지역 신문에 겐지를 인터뷰한 기사가 나왔다. 겐지는 ‘경작에도 종사하고 생활 즉 예술의 보람을 누리고 싶습니다.’라고 하고 이어 환등회, 레코드 콘서트를 말했다. 이전에 이미 11주에 걸쳐 「농촌예술개론강요」 강의를 마친 터였다. 먹고 살기 위해 노동만으로 이루어진 생활이 아니라 그들의 생활에 예술을 끌어들여 농촌 생활이 더 풍요롭기를 바랐다.*   


겐지는 새로운 농작법을 시도하여 실질적으로 경제적 도움을 주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렇게 마음을 다해 농민들에게 다가가고 노력했음에도 그의 방식은 성공하지 못했고 농민들에게도 사랑받지 못했다.**  


작가로서 생전에 한 권의 동화와 한 권의 시집을 냈으나 판매는 형편없었다. 그를 이해하고 그가 매우 아끼던 여동생 토시는 1922년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오랫동안 결핵을 앓던 겐지도 1930년 즈음부터는 병상에 눕기를 반복한다. 


1896년에 태어난 겐지는 1933년에 눈을 감는다. 「비에도 지지 않고」는 1931년, 그의 삶과 가치관이 담긴 『구스코 부도리의 전기』는 1932년, 자신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위해서라면 스스로 희생할 각오가 된 겐지의 결단이 담긴 『은하철도의 밤』은 사후에 출간되었다. 


자신을 돌보지 않는 극단의 이타심으로 가득했으나 그 바람에도 불구하고 당시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했고, 이와 대조되어 자신을 내던져 사람들을 따뜻하고 온전하게 하고 싶다는 열망은 계속해서 불타올랐다. 이런 강렬한 영혼의 외침은 그의 삶이 저물어가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누이 토시가 세상을 떠난 뒤 깊은 상심에 빠졌을 때도 ‘모두 오래전부터 한 형제였으니 한 사람만을 위해 기도해서는 안’ 된다며, 누이만 좋은 곳으로 가게 해 달라고 빌지 않았다고 하는 그이다( 『봄과 아수라』, 「아오모리 만가」). 지금의 세계도 우리가 느끼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하며 현상에 큰 집착을 드러내지 않으려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집착한 것이 자신을 희생하여서라도 세계를 좋게 하겠다는 바람이었을 것이다. 『은하철도의 밤』에는 이런 외침이 책 전체에 울려 퍼진다.  


미야자와 겐지 글, 오승민 그림, 박종진 옮김,『은하철도의 밤』, 여유당, 2013년. / 미야자와 겐지 지음, 이경옥 옮김, 이광익 그림,『은하철도의 밤』, 사계절, 2006년.

 

6

『은하철도의 밤』에서 외로운 소년 조반니는 까무룩 잠든 틈에 꿈을 꾸고 꿈속에서 은하철도를 탄다. 앞자리에는 유일한 친구인 캄파넬라가 물에 젖은 모습으로 있다. 둘은 은하철도를 타고 은하의 여러 곳을 지나고 각 정착지에서 탄 사람들을 만난다. 불타오르는 듯 빨갛게 빛나는 전갈자리에 오자, 조반니는 전갈이 좋은 벌레가 아니라고 한다. 그러자 캄파넬라는 그렇지 않다며, 아빠에게 들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전갈은 작은 벌레를 잡아먹고 살았는데, 어느 날 족제비를 피해 도망가다 우물에 빠지고 말았다. 전갈은 아무리 애를 써도 물에서 나올 수가 없었다. 전갈은 기도했다. 


‘아, 나는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목숨을 뺏었던가. 그런 내가 족제비한테 붙잡힐 지경이 되자 그토록 열심히 도망치다니. 그래도 끝내 이렇게 되고 말았어. 아, 아무것도 의지할 게 없다. 난 왜 내 몸을 기꺼이 족제비에게 내주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족제비는 오늘 하루 더 살 수 있었을 텐데. 신이시여, 부디 제 기도를 들어주세요! 다음번에는 이렇게 허무하게 목숨을 버리지 않고, 부디 모든 이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 이 몸을 쓰게 해 주세요.’라고.

전갈자리 이야기를 해 주는 캄파넬라. 캄파넬라는 이미, 다른 이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였다. 새빨갛고 아름다운 전갈자리처럼. 아름다운 색과 빛으로 환상적인 천상의 세계를 표현했다.


그러자 전갈 몸이 새빨갛고 아름다운 불이 되어 밤하늘을 비추었고, 지금 저 불이 바로 그거라고 캄파넬라는 얘기한다. 조반니와 캄파넬라는 남십자성을 지나면서도, 다시 한 번 이런 말을 나눈다.


“모든 이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내 몸 따위는 백 번 불에 타고 괜찮아.” “나는 이제 저렇게 커다란 어둠 속이라도 무섭지 않아. 반드시 모든 이의 진정한 행복을 찾으러 갈 거야. 어디까지나 언제까지나 우리 같이 가자.”


그 길을 같이 가자고 약속한 캄파넬라는 은하철도의 여행이 끝났을 때 조반니의 곁에 없었다. 모든 이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불도, 어둠도 두렵지 않다고 했으나 전갈이나 캄파넬라와 달리 겐지에게 그토록 강렬한 희생의 기회는 없었다. 






7

『구스코 부도리의 전기』에서 냉해, 농업, 비료, 화산, 여동생 같은 요소는 미야자와 겐지의 삶과 겹친다. 어린 시절 겐지가 이와테 현에서 냉해와 자연재해에 힘들어하는 농민들을 목격했듯, 이야기에는 냉해 때문에 먹을 것이 없어지고 힘들어하는 가족이 나온다. 주인공인 부도리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더는 식량을 구할 수 없게 되자 숲으로 들어가 돌아오지 않았고, 여동생 네리는 낯선 사람이 데려가 버린다. 이후 부도리는 붉은 수염 농부의 집에서 지내며 농사를 도왔는데 다시 냉해가 닥치자 이 생활마저 어려워져서 도시로 떠난다. 부도리는 도시에서 화산국의 기사가 되어 농민들을 돕는다. 부도리가 화산국 기사로 이름을 알리자 여동생도 다시 만나게 되었다. 구도리의 삶이 순조로운 듯했으나, 어린 시절과 같은 혹독한 냉해가 다시 조짐을 보이자 부도리는 자기를 희생하여 화산을 폭발시키고 냉해를 막는다. 그러자, 


'날씨는 점점 따뜻해졌고, 그 가을에는 거의 평년 수준의 농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의 시작처럼 되었을지도 모를 많은 부도리의 아버지와 어머니들은 많은 부도리와 네리와 함께 그 겨울을 따뜻한 음식과 밝은 장작불로 즐겁게 살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픽션이나 또한 겐지의 진심이었을 것이다. 

『구스코 부도리의 전기』는 「비에도 지지 않고」에서 겐지가 다짐한 겸손하고 이타적인 삶의 자세를 완수한 이야기이자 잦은 냉해와 더위, 장마로 가난했던 고향 이와테 현의 현실이자 『은하철도의 밤』에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자기를 희생하겠다던 간절한 열망이 그 결말로 그려진다. 


미야자와 겐지의 책은 위로받으려고 볼 책은 아니다. 읽고 나면 마음이 몹시 먹먹하여 한동안 헤어나오지를 못한다. 

그의 이야기를 읽으면 권정생 선생님의 이야기를 볼 때와 비슷한 느낌을 공유한다. 하찮다고 천대 받았지만 자신에게 민들레 씨가 날아왔을 때 아낌없이 자신을 녹여 꽃을 피워 내는 강아지똥, 세상 만물에 아픔을 주기 싫어 풀을 먹지 못하는 토끼(「하느님의 눈물」)… 흙냄새 풍기는 두 작가의 질박한 삶에서도, 세상의 빈 틈을 채우고 딱딱하게 굳은 벽을 적시는 이야기에도, 함께 살아가기 위해 자신을 내놓는 존재들을 만난다. 폭주하는 시대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로 세상의 한 귀퉁이라도 구하려는 캐릭터들을 만난다. 이뿐일까. 두 작가는 열광적인 신앙심도 닮았다.


『구스코 부도리의 전기』의 이광익 작가는 기묘하면서도 강렬하게 겐지의 기묘한 세계를 그려 냈다. 인과관계가 작용하는 세계이면서도 기묘하다.



*앞 논문, 223쪽 인용문 재인용.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80423018005&wlog_tag3=naver

   ‘은하철도의 밤 1부’, 「ebs 지식채널」, 2008년 1월 7일 방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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