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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도 지지 않고』는 여러 그림책으로 출간되었는데, 그중 애니메이션 감독 야마무라 코지 그림의 그림책으로 이야기했다. 일본 농촌을 배경으로 하는 그림에는 겐지 시대의 가난, 겐지의 서글픔이 더 묻어난다.
순수한 열정으로 가득한 청년 같은 겐지도, 20세기 초반, 군국주의 시대 일본의 작가였기에 마냥 자유롭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질문을 던지고야 만다. 군국주의와 전쟁에 동조하지는 않았는가,를 묻는다. 일본 북부 이와테 현의 이 독창적 작가에게 시대의 이념이 나타나고 있는지 찾으려 한다.
결론부터 보자면 그는 군국주의를 신봉하지는 않았으나 국가를 따랐고 종교를 따랐다. 그런데 그 시대에 그의 국가는 군국주의로 물들어 있었다. 또 그의 종교는 일련종으로 그 시작부터 국가, 사회와 결합되어 있었다.* 좋은 시대라면 국가와 종교를 따르는 것은 그대로 자연스럽다. 그러나 위태로운 시대에 살았던 겐지는 국가와 그 국가가 지향하는 이념의 위험한 파급력, 신앙과 그 신앙을 지키려고 실제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 사이의 모순을 날카롭게 파악하려는 노력은 없었던 것 같다. 국가와 전쟁, 신앙과 전쟁을 분리하려 하지 않았고 그 결과, 겐지는 자신의 국가가 전쟁을 벌이는 것도, 자신이 그 전쟁에 징집되기도 거부하지 않았다.** 동경하는 양상도 보였는데, 전쟁의 전체성과 비극성, 비장함에 마음을 빼앗긴 듯하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는 숭고했다. 겐지가 「농민예술개론강요」 서론에서 ‘세계 전체가 행복하지 않으면 개인의 행복은 있을 수 없다.’라고 한 말을 보며 그의 이타주의가 극단화되어 자칫 전체주의로 나아간다는 생각을 한 적 있다. 이에 대한 겐지의 진심은 세상을 널리 구제하고자 한 대승불교의 신봉자로서 그의 불교관이 그의 성향에 따라 발달한 결과일 것이다. 그것을 뒷받침하듯, 그의 작품에는 구스코 부도리나 캄파넬라처럼 세상을 위해,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농민의 생활 향상에 도움이 되고자 애썼으나 정치나 국가의 방향에 대해서는 크게 비판 의식이 없었다. 그의 비판 대상이 아니었다라고 보는 편이 맞겠다. 그의 전체주의는 정치가 아닌 불교관에서 비롯되었으며 세상 만물에 집착하지 않으려 했으나 유일하게 자신을 희생하여서라도 세계를 좋게 하겠다는 데에는 집착을 보였다. 실제로 그의 전체성은 민족주의나 타국의 정복이 아니라 우주로 확장한다. 그것이 인간 의식의 진화 단계라 보았으며 ‘바르고 강하게 산다는 것은 은하계를 자신 속에 의식하고’ 따르는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 시대에서 정치적으로 보자면 올바른 판단이라 하기는 어려우나, 겐지는 더 나은 전체의 삶에 밑거름이 되기를 바라며 구도자처럼 살았다.
종교의 영향, 당대의 현실, 겐지의 타고난 성향이 뒤섞여서, 후대에 보기에 그의 삶과 작품관을 한 방향으로 설명하기에는 어렵게 하는 모순이 있다. 평화롭기를 바라지만 전쟁의 비극성에 마음을 빼앗기고 자연의 참혹함에 지지 않으려 하나 전쟁은 필요악이라 여기는 발언을 보여 준다. 부질없는 말이지만 나는 겐지가 더 오래 살았다면 전쟁과 침략에 대해 젊은 시절 자신이 보였던 견해 혹은 동경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평가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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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지는 예민하고, 연민이 많고, 세상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진 인간 유형이었다. 게다가 항상 자신을 던질 무언가를 기다리는 사람 같았다. 겐지가 지향하는 바는 전체의 행복을 극도로 지향하여 자신을 부정하는 전체주의자의 모습 같으나, 실제로 겐지의 삶과 작품이 보여 주는 바는 세상의 슬픔, 사람살이의 고단함을 그의 내면으로 모두 끌어안고 열정으로 토해 내는 근대 기준의 낭만주의자와 닮았다. 그에게 전쟁의 폭력성은 멀고 피상적인 것이요, 인간을 가장 참혹하게 만드는 것은 냉해와 가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겐지는 문학가라고만 하기에는 부단한 실천가이고 자신의 유토피아가 확고한 사회운동가였다. 혁명가라고 하기에는 세력을 도모하지 않고 개인으로 움직이는 사람이었으나, 전체를 위해 자신의 독창적 사상과 방법으로 움직이는 가장 순수한 혁명가이자 생활인이었다. 문학은 그의 예술이자 청소년 시절 그를 사로잡은 불교관이 바탕이 되어 세상을 향한 메시지가 절절이 담긴 도구였다. 일신이 좀 더 편할 수 있었는데도 자발적 수난을 택했다는 점에서는 조지 오웰을, 선하지만 부담스러울 정도의 열정에서는 고흐를, 극도의 청빈함에서는 권정생을 떠올린다. 크든 작든 세상의 부조리와 결핍, 탁함에 무력해지지 않으려 했고 지지 말라고 우리에게 경고하고 우리를 보듬으려 작품을 쓰던 이들이다.
『비에도 지지 않고』를 펼치면 나무 사이로 한 사람의 실루엣이 어렴풋이 보인다. 가방을 메고 모자를 쓴 이 사람은 험한 날씨에도, 여름 냉해에도 들판을 가로지른다. 그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아도 우리는 그의 시선으로 농촌을 보고 농민을 본다. 마지막에는 척박한 땅에서 솟아나는 풀 위로 눈이 내린다. 그 위로 한 사람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이 사람은 겐지일 수도, 겐지가 아닐 수도 있다.
이 시의 실제 모델은 미야자와 겐지가 아니라 겐지의 이웃 동네에 살던 사이토 소지로라는 인물이었다는 연구가 있다. 사이토는 승려의 아들이자 교사였으나, 기독교를 믿는다는 이유는 부모와 의절하고 교사를 그만두고 자식을 잃었다. 참혹한 수난을 겪었으면서도 사이토는 도움과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다니고 그들을 위해 기도했다. 그런 그가 도쿄로 떠나게 되었을 때였다. 무시와 조롱과 폭력을 받던 사람이었기에 쓸쓸히 떠났겠지 하겠으나, 기차역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촌장, 지역의 유지, 승려, 걸인, 그리고 겐지도,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이토가 가는 길을 배웅해 주었고 역장도 정차시간을 늦추며 이들을 배려했다.***
시의 모델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알고 처음에는 당황했다. 아마 이 연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사람들은 「비에도 지지 않고」를 겐지의 자전적 시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이 생각을 의심하지 않았을 것 같다. 타인을 바라보고 썼으나 겐지의 삶도 그와 많이 겹쳐 있고, 그래서 그의 삶을 더 잘 이해하고 자신의 갈 길을 다시 한 번 다짐했을 수도 있다.
간소히 생활하며 사람들에게 필요가 되기를 바라고 사람들 삶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던 사람. 책을 덮어도 험한 벌판을 동분서주 가로지르는 그림책 속 인물의 모습이 떠오른다. 사람들 속에서 일을 하고 사람들과 엉켜 싸움을 말리기도 했으나 책 속 내내 그는 혼자였다. 이 시의 주인공이 겐지이든, 사이토이든, 농촌을 누비던 그들의 모습이 이리 바쁘고 이리 외로웠으리라.
*겐지의 종교는 일련종(니치렌종)이다. 1253년 승려인 니치렌이 법화경 신앙으로 종교를 만들었을 때, 당시 지배적인 정토종의 개인 안위나 개인의 수행을 도모하는 경향과 달리, 일련종은 국가‧사회 차원의 포교와 법화종을 통한 국가 안위를 내세웠다. 1914년에 다나카 치가쿠의 국주회도 일련종의 핵심 사상을 따랐다.
**고한범, 위 논문, 280쪽. 징집 신체검사에 응하기 위해 부친과 몇 번의 서신 교환을 하며 징집의 의무를 고집했으나 결국은 심장이 약해서 제외되었다. 고한범의 논문에서.
*** https://www.segye.com/newsView/20150706004683?OutUrl=naver
「[야가사키의밖에서일본을보다] 미야자와 겐지의 ‘비에도 지지 않고’」, 세계일보, 2015년 7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