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모두 자신만의 직장 스트레스 해소법이 필요하다.

전 퇴근길 지하철 편의점에서 작은 캔맥주를 사서 마십니다.

by 김쿠키

강남역 2호선에서 광교행 신분당선으로 환승하는 게이트 오른쪽에는 편의점이 하나 있다. 자그마한, 그렇지만 다양한 아이템을 파는 편의점. 그곳에는 330ml짜리 맥주도 판다. 원샷으로 마실 수 있을 법한 사이즈인 캔맥주를. 이 편의점을 정말 몇 년을 다녔는데도 이 사실을 2018년 어느 날 전까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2호선 강변역으로 출퇴근을 하던 그 시절, 나는 회사의 모팀장 때문에 쌓인 분노와 모멸감때문에 하루하루 돌아버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녀는 뭐랄까, 브랜드의 ㅂ과 마케팅의 ㅁ도 모르는 사람들이 즐비한 회사에서 자신이 마케팅 전문가라며 10년 이상을 자리매김 해왔던 사람이다. 그녀는 브랜드 마케팅 경력이 있는 나를 자신의 팀원으로 뽑아 자신의 자리를 더 공고히 하려고 했다. 그러나 내가 너무 1달도 안 되어서 그녀가 마케팅에 대해 너무 껍데기만 알고 입으로만 일한다는 사살을 알아버렸고, 그녀 또한 그 사실을 알아버린 순간부터 피말리는 회사생활이 시작되었다.


우선 그녀가 만들라는 자료는 로직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로직을 잡아서 구성을 해가면 왜 멋대로 이렇게 만들었냐는 식이었다. 그래서 내가 왜 이렇게 생각했는지에 대해서 설명을 하면 그녀는 꼭 '생각은 팀장인 내가 해. 너는 팀장이 아닌데 왜 이런 식으로 일을 하니?' 라고 말하곤 했다. 아니, 나 같으면 생각을 하고 일하는 팀원은 정말 땡큐일 것 같은데! 그래놓고선 나중에 보면 결국 내가 짠 구상을 바탕으로 여기 조금 저기 조금 바꾸는 식이었다. 그것도 정말 못견딜 일이었다. 왜냐면 내가 그린 그림에 마치 이상하게 낙서를 한 것과도 같은 기분이었으니까. 누구한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자료. 그녀는 빨간 펜 선생님처럼 단어 하나하나 첨삭하기를 좋아했으며 항상 이상한 영어 단어를 쓰려고 했다. 의미라도 맞으면 몰라, 어디서 주워들은 있어보이는 단어들을 억지로 끼워 넣다보니 보고서는 우스꽝스러워졌다. 그리고 가장 최악은 이런 거지같은 보고서나 자료들이 내 이름으로 보내진다는 것이다. 여러분, 이거 제가 만든거 아니에요, ㅇㅇㅇ팀장이 이렇게 만든거에요라고 메일에 꼭 쓰고 싶었다. 정말로.


더욱 괴로운 것은 윗사람들은 브랜드와 마케팅을 정말 눈꼽만큼만 알아서 그 보고서를 보고도 뭐 그렇다면 그런가보다~ 하며 넘어가거나 이상한 부분에 꽂혀서 말도 안되는 디렉션을 주었다는 것이다. 진짜 내가 이상한건가, 내가 왜 이런 회사에 이직을 해서 돌아버라겠는 감정을 느껴야하는건지 매일매일 곱씹었다.내가 일한 백오피스 공간은 창문이 인사상무방 옆에 딱 하나 있었는데 숨이 막힐 것만 같은 때엔 물을 뜨러 가는 척 하며 늘 그 창문 앞에 가 하염없이 밖을 바라보았다. 내 키만하건 정사각혁 창문. 그 마저도 없었다면 난 사무실에서 소리를 질렀거나 기어코 팀장 머리를 주먹으로 때렸을수도 있었을 것 같다. 회사를 다니는 내내 그녀를 때리는 상상을 너무 많이했기에.


스트레스라고 표현하기엔 그때의 고통이 너무 가볍단 생각도 들지만 아무튼 이런저런 스트레스로 참다참다 터져버릴 것 같던 어느 퇴근길, 지하철 환승 게이트를 향하다 너무 더워서 (실제로 덥기도 했지만 아마 열받아서 더 덥게 느껴진듯 하다.) 마실 것을 사려고 편의점에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캔맥주가 진열된 냉장고를 발견했다. 나는 홀린듯이 버드와이저 작은 캔을 사버렸다. 그리고 정말 단숨에 다 마셔버렸다. 살면서 한 번도 하지 않았던 행위를 하고 있다는 어떤 일탈감에 나의 분노는 임계점 직전에서 마치 김이 빠지듯 그렇게 어느 정도 해소 되었다.


왜 일탈감을 느꼈느냐고? 우선 나는 혼자서는 절대 술을 마시지 않았다. 술은 술자리에서 여러 사람들과 즐겁게 마시자는 주의였기도 하고 술 그 자체 보다는 술과 함께 음식을 먹는걸 좋아했기도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술은 반드시 누군가와 함께 마셨다. 그런데 그런 내가 지하철 편의점에서 아무 안주 없이 캔 맥주를 혼자서 마시다니. 이런 일종의 일탈 행위를 통해 나의 부정적 감정을 환기한 것은 정말 우연한 일이었지만, 그 때 이후로 나는 극한의 스트레스에 다다를 때엔 퇴근길 편의점에서 맥주 한캔을 사서 원샷을 한다. 그 때 이후로 퇴근길 원샷을 한 횟수는 다섯손가락 안에 들어가니 어쩌면 다행인가 싶기도 하다.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누구나 정말 미쳐 돌아버릴 것 같은 순간을 분명 마주하게 된다. 평소에 먹히던 스트레스 해소법으로는 택도 없는 그런 순간. 그럴 때 나의 감정이 임계점을 넘지 않도록, 정신줄을 놓지 않도록 하는 자신만의 해소법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 글을 잃고 있는 당신만의 해소법은 혹시 있는지. 없다면 당신만의 무기를 한 번 찾아보는 것은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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