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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식한데 용감한 사람은 왜이리 많은지 (2)

'더닝-크루거 효과'라는게 있대요. 이걸로라도 일단 이해를 해봅시다.

by 김쿠키

어떻게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저렇게 용감하게, 저렇게 떳떳하고 당당하게 헛소리를 할 수 있을까?


도저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같은 이 고민. 알고 봤더니 그 이유를 콕 찝어서 보여주는 이론이 있었다. 바로 미국 사회심리학자인 데이비드 더닝(David Dunning)과 저스틴 크루거(Justin Kruger)가 1999년 실험을 토대로 정리한 '더닝-크루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로 다음을 의미한다.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현상.


여기서 능력은 지식으로도, 경험으로도 치환될 수 있다. 이 두 문장으로 풀리지 않던 수수께끼가 갑자기 허망하게 풀려버리는 느낌이 든다. 나는 처음에 이 개념을 알았을 때 정말 '유레카'를 외쳤다. 맞아! 내가 느낀게 바로 이거야! 그러나 곧 절망감이 찾아왔다. 저 사람은, 저 사람들은 결코 더 능력이 늘어나지 않을 텐데... 설령 훈련을 통해 어떻게든 늘어나도 자기가 부족했다는 걸 인정하기 싫어서 더 아집을 부리는 경우도 숱하게 봐왔지 않는가. 그들은 영원히 저 꼭대기에서 자기가 잘났다고 확신하며 잘 살아갈 것이다. 좀 더 배웠고 배우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내가 아는 것도 많지만 모르는 것도 더 많다라는 것을 깨닫고 더 스스로를 검열하며 주저하는데 말이다.



더닝-크루거 효과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이러하다.



진짜 아는게 코딱지 만큼 있으나 그것을 알고 있음에 매우 도취된 사람들은 마치 매우 작은 우물 속에서 있으면서도 그 우물이 작은 지도 모르고 내가 다 알고 있으니 나는 세상의 모든 것을 안다고 자부하는 개구리와 같다. 그들은 '우매함의 봉우리의 정상'을 밟고 서 있는 상태로 아무리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를 해줘도 너네가 뭘 알아 내가 맞아 라는 태도를 보인다. 믿을 수 없지만 해당 분야의 전문가의 의견을 들고 와도 그 전문가보다 본인이 더 맞다고 철썩 같이 믿고 있다.


아는 것이 차츰 늘어갈수록 이제까지의 내가 정말 무지했구나, 내가 별 것 아니었구나, 나는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 하며 한 없이 저 깊은 '좌절의 골짜기'로 자신감은 추락하게 된다. 사실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살면서 내가 최고가 아니구나를 깨닫는 많은 경험이 있었을 것이다. 10대 학창 시절이나, 대학교에서, 아니면 사회 초년생일 때, 아니 살면서 그 어느 때라도! 그러나 대단하신 '무식해서 용감 하신 분들'은 그렇지 않으셨나보다.


내가 모르는 것을 깨닫고 부족한 것을 수용한 후 다시 어느정도 지식과 경험이 늘어가면 바닥을 쳤던 자신감이 올라간다. 저 아래 계곡에서 다시 '깨달음의 언덕'을 걸어 올라오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대단한 무식하고도 용감한 사람들은 자기가 서 있는 봉우리가 더 높기 때문에 이 사람들을 여전히 무시한다. 슬프게도 깨달음의 언덕을 오르고 있는 사람들은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태도를 가지고 있어 과소평가 당하는 일까지 발생한다.


시간이 흘러흘러 지속적인 훈련을 통해 깨달음을 얻게 된 사람들은 '지속 가능성의 고원' 에 도달하게 된다. "나는 아는게 많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 모르는 것이 있다."는 태도로 아주 바람직한 전문가가 된다. 열린 자세와 늘 배우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그들. '무식한데다가 용감한 사람들'은 심지어 자신을 고원을 걷고 있는 전문가와 동일시 하는 경우가 발생하는데, 속칭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전문가들은 이 조차도 넓은 마음으로 받아주기도 한다.


물론 이 이론과 대치되는 다양한 이론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생에선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무식해서 더욱 용감한 사람들'로 인한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서는 그저 이 더닝-크루거 효과를 보며 아는게 없어서 저러는구나, 우매함의 봉우리에 서있는 상태구나, 하며 억지로라도 납득을 하는 것이 속편한 일이다. 실제로 2018년의 나에게 이것은 한 줄기 빛과 같은 방법이었다.


커리어를 좀 더 브랜드 전략으로 풀어나가고 싶었던 나는 전사 리브랜딩을 이끌어 갈 신생팀의 경력직을 선택했다. 직속 상사가 현대카드에서 브랜드 전략을 담당하셨던 분이라고 해서 배울 점도 많아 보였기 때문에 약간은 기대감을 가지고 새로운 모험을 시작했다. 팀 분위기도 좋아 보였고, 지금 이 조직은 새로운 브랜드 전략이 반드시 필요하고 그렇기 때문에 나랑 파트장님을 모두 외부에서 영입해왔다며 기대하는 바가 크다고 한 HR과 총괄실의 전언은 나의 '일잘러' 자아를 완전히 각성 시켰다. 나의 모든 능력을 총 동원해서 정말 멋지게 일을 해내고야 말겠다고 불타오르던 그때의 나. 지금 과거로 돌아가 만날 수 있다면 그 불을 살포시 꺼주고만 싶다. 이제까지 숱하게 언급하고 있는 '우매함의 봉우리'의 최정상에 서있던 P팀장 아래에선 그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P팀장은 스스로를 B2C 마케팅 전문가라고 칭했다. 외국계 소비재 회사에서 커리어를 쌓기 시작해 20년의 경력을 쌓았다는 그녀는 스스로 트랜드세터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나아가 브랜드 전문가라고도 생각했다. 첫 입사시 나와 파트장님 같은 사람을 절실히 찾고 있었다고 했다. 자신과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이 그 동안은 없었다면서. 나와 파트장님은 연간 업무 비전과 계획을 세워 그녀에게 보고했고 그녀는 너무나도 흡족해했다. 모든 것이 순탄 해 보였다. 그러나 입사 후 1달이 되어가고 있을 무렵, P팀장이 우리 파트에서 할 일이 아닌 것을 자꾸 우리에게 하라고, 너네가 하는 일의 속성이 아니냐고 하기에 파트장님과 나는 아 팀장님이 업무를 조금 혼돈하셨나보다고 생각해서 그 부분을 설명 드리는 미팅을 잡았다. 5-10분 정도면 끝났어야 하는 그 미팅은 2시간이 지나도록 끝나지 않았고, 놀랍게도 우리의 설명은 그녀에게 전혀 전달 되지 않았다. P팀장은 눈꼽만큼도 이해를 하지 못했고 나와 파트장님은 저 사람은 마케팅의 ㅁ도, 브랜드의 ㅂ도 모르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었음을 깨달았다. 더 큰 불행은 P팀장도 그 미팅을 통해 자신이 우리보다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바로 했던 것 같다. (눈치는 기가 막힌 사람이었고, 나는 이것이 그녀가 지금까지도 그 조직에서 한 자리 꿰고 있게 한 일종의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별로긴 하다.)


그럼에도 나와 파트장님은 우리가 일을 더 잘하고 성과를 보여주고, 설명을 더 자세하게 하면 P팀장이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우리를 잘난 척 하는 애들로 치부해서 정말 말그대로 다니는 내내 탈탈 털었다. 정말 어떻게든 잘 풀어보려고, 내가 부족해서 지금 이런건가 싶은 마음까지 들었으나 더닝-크루거 효과를 알고 나서 그냥 아 그녀는 저기에 나는 여기에 있구나 하고 더 이상의 생각을 멈추었다. 그리고 나는 전편에서 말한 감정 수용의 5단계를 거쳐 막판에는 그냥 그녀가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해 주었으나 이는 나의 무력감을 잔뜩 높여 결국 떠나는 선택을 하게 만들었다. (이 때의 이야기를 하자면 정말 과장이 아니고 260여개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그녀와 함께 한 1년 동안 매일 새롭게 놀라웠기 때문에. 이 이야기는 앞으로 야금야금 해보도록 하겠다.)


수많은 직장인들은 이런 P팀장 같은 사람을 만나봤을 것이다. 이보다 더 한 사람도 만났을 것이다. 우리의 상식으로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을 애써 이해하려는 노력을 이제는 그만하자. 그저 '더닝-크루거 곡선'을 보며 아 저 봉우리에서 있는 사람들이구나, 골짜기로 떨어지기 전까진 답이 없는 사람들이구나 하고 인지하고 그저 최대한 피하기로 하자.


마지막으로 슬픈 문장들을 인용하며 마무리하고자 한다. 슬픈 현실이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그들보다 더 낫다는 것을 의심하지는 말자.



"무지는 지식보다 더 확신을 가지게 한다" – 찰스 다윈
"이 시대의 아픔 중 하나는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무지한데, 상상력과 이해력이 있는 사람은 의심하고
주저한다는 것이다” - 버트런드 러셀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진짜 아는 것이다" - 공자
"참된 지혜란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 소크라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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