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람 밑에서 일해보셨다면...우리는 이미 동지입니다.
회사 다니다 보면 정말 많이 경험하는 유형의 사람들이 바로 '무식해서 용감한 사람'이다.
아는게 없으니까 두려울 것도 없어서 일단 시도해보거나 도전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 등장하는 직장인에게 끊임없이 불만을 주는 유형은 바로 '아는게 없는데도 자기가 무식한 걸 모르니 목소리만 큰 사람' 을 말한다. 아마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직장인 동지 분들의 머리 속에 무조건 한 명은, 물론 그 이상이 떠올랐을 것임을 슬프지만 나는 알고있다. 99.9%*의 직장에는 이런 유형의 사람이 반드시 존재하기 때문에.
(*0.01%를 남겨놓은 것은 어딘가에 이런 사람들이 없는 유토피아적인 직장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아직은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직 환경이 바뀌어도, 조직 구성원이 바뀌어도 기가 막히게 이런 사람들이 존재한다. 마케팅의 ㅁ도 모르면서 트렌디하지 못하네 어쩌네 하던 그 팀장, 이미 몇 번이나 보고했는데도 처음 듣는다는 듯 눈 똥그랗게 뜨고 있는 저 팀장, 영업을 뛰어보지도 않았으면서 영업사원한테 영업 마인드가 없네 어쩌네 훈계하는 그 팀장, 20년전에 했던 경험을 아직까지 우려먹으며 경력사원한테 이론부터 설명해주겠답시고 1시간 넘게 영양가 없는 라떼는 말이야까지. 굳이 팀장이라고 쓴 이유는 대부분 직책자인 경우에 모르면서 모른다고 말하긴 싫어서인지 아니면 정말 자기가 뭘 모르는지 몰라서 인지 유난히 가르침을 주시려는 분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동기나 선후배중에도 이런 유형이 있지만, 이런 유형은 지위가 아직 없기 때문에 눈치라도 야금 보기는 한다.
이런 유형의 사람과 함께 일하면, 특히 이런 똥멍청이를 직속 상사로 두면 너무 괴롭다. 때릴 수도 없고 윽박지를 수도 없으며 어떻게든 그를 설득해서 이 난관을 헤쳐 나가거나 아니면 그 멍청이가 하자는 대로 해야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사람과 함께 하는 과정에서 겪는 감정적인 고통을 '죽음의 5단계 (Five stages of grief)'에 비유하곤 했다. 이런 사람이랑 같이 일하는 과정은 정말 죽음과도 같기에. 1+1이 왜 2인지를 1시간 동안 설명해야하는 그 고통을 아는가? 온갖 비유를 다 가져다가 정말 이렇게도 설명하고 저렇게도 설명해서 이제 겨우 알아먹었나 싶었을 때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갈 때의 그 절망감은 지금 떠올려도 끔찍하다.
1단계: 부정
'아니야 그럴 리 없어.'
'뭐 잠깐 잊으셨나보지. 알긴 아시는데 약간 헷갈리셨나보다.'
'설마 진짜 하나도 모르나? 에이 아니겠지 연차가 얼만데.'
2단계: 분노
'와 어떻게 이걸 모르냐. 어떻게 팀장이 된 거야?'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 쩌네! 어이없어.'
'악! 내가 정리한 걸 저렇게 이상하게 말하면 어떡해!! 사람들이 내가 바본 줄 알겠어!'
3단계: 타협
'내가 좀 더 자료 정리 잘하고 설명 잘해주면 알아먹지 않았을까?'
'사실 내가 잘못 알고 있는건지도 몰라.'
'하 근데 왜 나지? 왜 내가 이 사람이랑 같은 팀인거지...쟤보다 내가 더 나은 것 같은데 왜 나는 여기 있지?'
4단계: 우울
'끝나고 동기 모임? 아니 난 집에서 쉴래... 너네가 저 사람이랑 일해봐라 술 마시고 웃을 힘이 없다...'
'저런 사람이 부장이라니 이 회사에서 나는 글렀네. 그냥 월급쟁인데 뭣하러 내가 이런거에 열 올리고 사나.'
'멍청이 밑에서 일한다고 나를 멍청이로 보겠지. 근데 그러라지 뭐.'
5단계: 수용
'원래 회사가 그렇지 뭐. 그냥 다 맞춰주면 편하다.'
"네, 부장님 말이 맞아요! 콩 심은 데는 팥이 나는 거죠!"
처음 인턴을 하던 2011년부터, 무식하면 용감한 사람들을 많이 봐왔다. 히스토리 지난 얘기를 우렁차게 하다가 아닌걸 아니까 아랫사람 잡던 사람도 있었고, 오히려 큰 소리 세게 해서 이상한 방향으로 일을 기어코 마무리 한 사람도 있었지만 살면서 만난 정말 '무식하고 강력하게 용감했던 사람'은 2018년에 만난 P팀장이다.
그리고 이 사람과 일한 지 한달 남짓 되었을 때 가졌던 2시간의 미팅을 통해, 나는 마치 시간과 정신의 방에 갇혀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내가 살면서 만났던 '무식하고 용감한' 사람들 중 최고였던 그녀. 지금까지도 최고이며, 앞으로도 그냥 최고였으면 하는 그녀와 함께 일하며 나는 5단계 감정 기복을 수백 번을 겪었고, 어떻게 저런 사람이 있을까 이해가 되지 않아 답답한 날들을 겪다가 어느 날 운명처럼 한 개념을 알게 되고 이 상황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잠시 쉬었다가 다시 나누어 보고자 한다. 과거의 숱한 고통들이 물밀듯 밀려와 차 한잔을 마시며 잠시 진정하는 시간을 가져야겠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