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자연과 함께 살아온 아버지의 문장을, 딸이 엮은 기록.
시골의 문장들___
”가을 산행“
울긋불긋 곱게 단풍이 든 등산로로 접어들자,
이름 모를 산새들은 우리를 보고도 도망갈
생각은 하지 않고
맑고 고운 목소리로 지저귀고,
스산한 바람이 숲을 스쳐 지나가며
나뭇잎들은 와수수수 노래라도 부르듯 속삭이고,
발밑에서는 낙엽이 바스락거리며
산행하는 발걸음을 한층 가볍게 해 주고,
답답하던 가슴을 뚫기라도 하듯
불어오는 상큼한 산바람은 정신까지 맑게 해 준다.
골짜기로는 옥구슬 같은 맑은 물이 졸졸졸 흐르고,
소나무, 참나무, 물푸레나무, 층층나무, 떡갈나무, 자작나무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나무들이 저마다의
자태를 뽐낸다.
드문드문 서 있는 산 밤나무에는
청설모와 다람쥐가 알밤을 먹느라 분주히
입을 놀린다.
송골송골 이마에 땀방울이 맺힐 무렵,
드디어 작은 동산 정상에 올라섰다.
눈을 들어 바라보니,
청풍호를 끼고 올망졸망 모여 있는 작은 섬들은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 장관이다.
찬란한 햇살은 호반에 비춰 은비늘처럼 반짝이고,
단풍놀이를 나온 관광객을 태운 유람선은
가을 정취를 북돋우고,
북녘에서 날아온 기러기들은 강물 위에 앉아
지친 날개를 쉬고 있다.
우리 고장에도 이처럼 멋진 곳이 있다니,
새삼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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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이 글을 읽으며,
가을 산행의 숨결과 그 안에 담긴 삶의
감탄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등산로에 접어드는 순간부터
이름 모를 산새의 지저귐, 바스락거리는 낙엽 소리,
시원하게 가슴을 뚫어주는 산바람까지 —
모든 것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다가왔다
특히,
"답답하던 가슴을 뚫기라도 하듯"
불어오는 산바람은,
자연 속에서 비로소 다시 숨을 쉬게 되는
해방감과 맑음을 그대로 전달해 주었다.
정상에 올라섰을 때,
청풍호와 작은 섬들을 내려다보며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 감탄하는
아버지의 마음에는
자연 앞에서 다시 순수해지는 인간의
겸허함이 담겨 있었다.
무엇보다,
"우리 고장에도 이처럼 멋진 곳이 있다니
새삼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이 마지막 한 줄이 너무 좋았다.
멀리 떠나지 않아도,
내가 딛고 서 있는 곳에도 충분히
아름다움이 있다는 걸.
"숨 가쁜 세상 속에서도 자연 앞에 서면,
인간은 다시 겸허해진다."
는 걸 조용히, 그러나 깊게 일깨워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