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자연과 함께 살아온 아버지의 문장을, 딸이 엮은 기록.
시골의 문장들___
“가을”
산에는 벌써 단풍이 들어서 새색시처럼 볼처럼
붉게 홍조를 띠우고는
우리를 오라고 유혹을 하고,
황금 들녘도 어느새 추수가 끝이 나고
속살을 훤히 드러낸 채 겨울잠을 청하고 있고,
메뚜기들도 논두렁에 알을 낳고는
보시하듯 몸뚱이를 들짐승에게 내준다.
집 앞 채마밭에는 아직도 무와 배추가
홀로 가을을 지키려는 듯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다.
누군가 봄은 여성의 계절이고 가을은
남성의 계절이라 했던가.
소슬바람 소리에도 가슴이 허전해져
오는 것을 보니,
그 말이 정녕 맞기는 맞는가 보다.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천고마비의 계절답게
파란 가을 하늘이 너무나도 멋지게 올려다 보인다.
해마다 맞이하는 가을이건만,
유독 올 가을은 쓸쓸하고 허전함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이처럼 아름다운 가을을 몇 번이나 더 볼 수 있을까?
세월이 너무나 빨리 변해가니,
옛일들이 그저 꿈을 꾼 듯,
지나온 날들이 일장춘몽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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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가을 글을 읽으면서
자연의 변화와 함께 흐르는 인간의 쓸쓸함을
가슴 깊이 느꼈다.
단풍이 들어 붉어진 산,
속살을 드러낸 들판,
알을 낳고 생을 마감하는 메뚜기까지 —
자연의 풍경은 그 자체로 생의 순환을
조용히 말해주고 있었다.
채마밭의 무와 배추가 가을을 끝까지
지키는 모습은
마치 다 지나가는 것들 속에서도
끝까지 살아 있으려는 작은 의지를 보는 듯해
묘하게 먹먹했다.
그리고,
봄은 여성의 계절, 가을은 남성의 계절이라는 말.
그 말처럼,
가을을 맞는 아버지의 마음에도
소슬한 바람 한 점에 흔들리는 쓸쓸함이
가득 배어 있었다.
특히 마지막,
"이 아름다운 가을을 몇 번이나 더 볼 수 있을까?"
라는 물음 앞에서는,
시간이 흘러감을 아쉬워하고,
한 번뿐인 삶을 조심스레 쓰다듬는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져서
가슴이 시렸다.
이 글은 단순한 가을 풍경의 기록이 아니라,
세월 앞에서 인간이 느끼는 쓸쓸함과 겸허함"
그 자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