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자연과 함께 살아온 아버지의 문장을, 딸이 엮은 기록.
시골의 문장들___
“경칩, 잠에서 깨어나는 시간“
대동강 물이 풀린다는 우수가 지나간 지도
열흘이 넘었다.
이제 곧 개구리 입이 열린다는 경칩도 코앞이다.
그런데도 추위는 물러날 줄 모르고, 장롱 속에 있어야 할 겨울 점퍼가
여전히 애첩처럼 몸에 붙어 있다.
그래도 냇가에 파릇파릇 새순이 돋고, 수양버들이 춤추듯 하늘거리는 걸 보면
미련한 동장군도 곧 삼십육계 줄행랑을 놓을 날이 머지않았다.
경칩이 오면, 농부들은 농한기를 끝내고 본격적인 농사 준비를 시작한다.
논과 밭두렁에 쥐불을 놓으며 벌레를 태우는 것도 그중 하나였지만,
옛 어른들은 경칩 이후엔 쥐불도 놓지 말라고 했다.
갓 깨어난 미물들과 새싹의 삶을 해치지 말라는 조상의 뜻이 거기에 담겨 있다.
경칩이 오면, 옛날에는 엇부루기 소 길들이는 풍경이 동네를 가득 채웠다.
소 목에 멍에를 씌우고 바윗덩이를 매단 채 골목길을 오가던 농부들과 소,
그 모습은 지금은 찾아볼 수 없다.
그 시절 소는 신 같은 존재였다.
가족처럼 한 지붕 아래서 대접을 받으며, 목숨이 다할 때까지 농사를 함께 짓던 존재였다.
하지만 지금은 농기계가 소를 대신했고, 농촌 풍경도 “상전벽해”처럼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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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칩은 겨울잠을 자던 생명들이 다시 살아나는
절기다.
아버지는 경칩이 오면 개구리보다 먼저 깨어나는
농부들을 떠올리셨고,
더 이상 찾기 어려운 엇부루기 소 길들이는 풍경까지 글로 불러오셨다.
계절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기억들이 이 글에 살아 숨 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