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같은 글쓰기
책을 보다 얼음이 되는 때가 있다. 발 걸음도 멈추고, 시선도 멈추고, 심장도 멈춘다. 문장이 내 삶과 경험 속에 잊힌 어느 고름 덩어리를 바늘로 찔러 아프다. 고름이 철철 넘치기도 하고, 눈물방울이 떨어지기도 한다. 문장 하나가 사람 환장하게 한다. '아 그래서 그랬구나'. 이런 만남은 어색하다. 대게 문제와 동떨어진 책에서 만나기 때문이다. 요리책을 들었는데 수학 문제가 풀린다고 할까.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얻어 방향성이 정해지기도 한다. 삶의 정답은 내가 무시하고 찾지 않는 곳에서 드러난다. 글의 힘이다.
작가 은유는 소설은 분량에 비해서 건질 문장이 별로 없기 때문에 비소설류 책을 더 많이 읽는다고 한다. 그녀는 한 문장 한 문장을 잡는 문장 공, 강태공이다. 은유 작가 글에는 울림이 가득하다. 카프카는 이렇게 말했다. "책은 바다를 내리치는 도끼 같은 것이어야먄 한다". 카피라이터 박웅현은 그답게 일필했다."책은 도끼다". 그의 책 제목이기도 하다.
겨울 방학 할머니 집은 캄캄하고 밤이 길었다. 초저녁 상을 치우고 나면 뒷산에서 딴 밤을 꺼내 쪄 주신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밤을 들어 칼집을 내고 화롯가에 놓으셨다. 나는 숟가락으로 밤을 후비 파먹었다. 입속에서 물컹하고 벌레가 나오면 캑 하고 내뱉었다. 원망스럽게 할머니를 봤다. 날카로운 과도로 벌레 먹은 밤을 까내도 깔끔하지 않았다. 썩은 게 더 많았다. 때가 낀 낡은 칼도 할머니 손도 썩어 보였다. 시골 촌구석의 밤은 지루하고 맛도 없었다.
가운데가 움푹 파인 오래된 나무 도마에 김치가 쓸려 나간다. 돼지고기도 듦성 듦성 쓸렸다. 가마솥 옆에 놓인 곤로에서 김치찌개가 끓는다. 숯을 꺼내 김을 굽고 대충 뿌려진 소금이 녹아내린다. 개다리 상에 밥이 차려지면 머리를 박고 한 그릇을 비웠다. 밥상을 보시던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이제는 어머니가 똑같은 김치찌개를 끓여 주신다. 어머니가 말했다. "엄마가 글도 제대도 못 배우고 아는 게 없지만 밥 하나는 따끈하게 해 먹였다". 순간 가슴이 뜨겁게 끓어 올랐다. 어머니가 말한 것을 글로 적어 봤다. 손 때 묻은 할머니 밤 칼처럼 글이 날카롭다. 가슴을 후비 판다. 가슴을 후비 파는 한 문장을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