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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크다스 Dec 07. 2021

엄마의 죽

지금의 나를 있게 한 따뜻한 사랑





엄마는 내가 아플 때면 늘 손수 죽을 끓였다. 너무 아파서 흰죽밖에 못 먹을 때가 아니면 소고기와 채소를 다져 넣거나 전복을 넣은, 참으로 정성 가득한 죽이었다. 불도장같은 보양식도 공진단같은 비싼 한약도 아니고 그저 쌀과 물을 넣고 푹 끓인 음식일 뿐인데 엄마의 죽에서는 생명력이 느껴지곤 했다.


열이 펄펄 끓거나 먹은 걸 다 토해서 그냥 누워 있는 것도 힘든 지경일 때 약을 먹으려면 뭐라도 빈속을 채워야 하니 간신히 침대에서 기어나와 식탁에 앉는다. 숟가락 들 힘도 부족하지만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죽을 한 입 떠 넣는 순간, 따끈한 기운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 몸 안에 퍼지기 시작한다. 두 입, 세 입, 어느새 한 그릇을 다 비운다. 아픈 곳은 여전하지만 이제 조금은 살 것 같다는 희망의 기운이 몸을 감싼다. 그렇게 나의 아픈 날들에 엄마의 보살핌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그런데 정작 엄마가 아플 때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아무리 건강 체질이라고 해도 엄마도 사람인데, 아프지 않았을리 없는데 그저 괜찮다고 하며 부엌에는 손도 못대게 하고 직접 음식을 만들곤 했다. 점심에 가족들이 먹을 김밥을 싼 후 레토르트 황태국밥을 직접 끓여 먹고, 내가 저녁에 먹을 샐러드의 달걀까지 반숙으로 삶아주는 사람이 우리 엄마였다.


아플 때가 아니어도 엄마는 늘 내색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겪는 힘든 감정,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모두 털어놓는 나와는 달리 엄마는 내가 물어봐야만 힘든 점을 이야기해 주었다. 결혼 생활에 힘든 점이 있을 때도 엄마는 엄마의 엄마에게 그런 이야기를 잘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저 자신이 짊어져야 할 짐이라고 생각했고, 이야기를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닌데 괜히 걱정시키기가 싫었다고 했다.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진짜 어른이 되어보겠다고 늦은 나이에 독립을 한 후 알게 되었다. 아플 때 스스로 밥을 차려 먹는 사람이 얼마나 강인한 사람인지를. 겨우 조금 체했을 뿐인데 꼼짝도 못하고 배달 앱에서 죽부터 검색한 나는 아직도 멀었다. 엄마의 보살핌을 받던 아이에서 더 자라지 못한 것만 같다. 스스로의 마음을 챙기는 일도 그렇다. 명상 공부를 시작했지만 아직도 힘든 마음을 혼자서 감당하기엔 벅찰 때가 있다. 이 나이에 자꾸 엄마에게 기대고 싶어진다.


이토록 부족한 어른 아이지만, 이제라도 엄마에게 짐을 떠넘기지 않는 어른이 되려 노력해 본다. 지금까지의 나를 만든 힘이 엄마의 사랑과 희생이었다면 앞으로의 나를 만들 힘은 내 안에서 스스로 찾아야 한다고 다짐해 본다. 힘든 순간마다 나를 감싸고 다시 일으켜줬던 따뜻한 사랑, 공기처럼 당연하게 늘 곁에 존재해서 감사함과 소중함을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랑은 이미 내 안에 가득 차 있다. 이제 잘 꺼내서 스스로에게 정성스레 떠 먹이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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