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반찬은 한국어입니다 제12화 묵은지참치김밥
집에서 김밥을 만들어요. 소풍 가고 싶어요.
선생님, 저는 울고 싶어요.
가: 나 속상해.
나: 먹고 싶은 거 있어?
봄이 되어 날이 풀리고 걸친 옷들이 점점 가벼워지기 시작하면 마음도 함께 들뜬다. 겨우내 춥다고 입술 삐죽 내밀며 집에만 콕 박혀 있던 지난날들. 하나둘씩 팝콘처럼 터져 나오는 꽃망울을 보니 언제 그런 날들이 있었나 싶다. 다 오래전 옛일로만 느껴진다.
언젠가 “봄 소풍 가고 싶어.” 말했더니 곧바로 들뜬 음성으로 “가자!”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신이 나서 바로 주말 날씨를 찾아보았다. 에이, 참. 계절은 우리 편인데 날씨 녀석의 심보가 고약하다. 일기예보에 나타난 이번 주 토요일과 일요일 칸에는 사람 속도 모르고 구름과 비 그림이 아주 귀엽게도 그려져 있었다. 간만에 아무 일 없이 여유로운 주말인데. 아쉬운 마음에 휴대폰 화면에서 맥없이 손가락만 비비적댔다. 속상해하는 내 모습을 바라다보던 남편이 물었다.
“먹고 싶은 거 있어?”
참 한결같이 단순한 사람이다. 내가 우울해할 때마다 남편이 꺼내놓는 처방은 항상 똑같다. 먹고 싶은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질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 재미있는 점은 이게 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도움이 되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특효약이다. 휴대폰을 멀리 치운 다음 빙긋 웃음 지으며 되물었다.
“우리, 김밥 싸서 먹을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소풍’하면 생각나는 음식을 한 가지 말해보라고 한다면 백이면 백 김밥을 꼽을 것이다. 학교에서 소풍 간다고 하는 날엔 전날부터 엄마가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소풍날 당일. 엄마는 새벽부터 바쁘게 속재료들을 준비하셨다. 소고기를 간간하게 볶는 냄새, 계란 지단을 부치는 기름 냄새, 짭짤하게 조려지는 유부 냄새를 맡으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우리 집 김밥에는 특이점이 하나 있었다. 밥에 식초를 넣는 것. 요리 블로그 글들을 읽다 보면 김밥이 쉽게 쉬지 않도록 식초를 살짝 섞어주라는 팁이 보인다. 우리 집 김밥은 그 수준이 아니었다. 초밥을 만들 때처럼, 거의 식초로 간을 한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식초를 많이 넣었다. 소풍 가서 하나씩 뺏어 먹는 친구 집 김밥들에서는 식초 맛이 나지 않았다. 분식집에서 사 먹는 김밥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인지 내겐 다른 김밥들은 다 밍밍하고 맛이 없었다.
우리 집 김밥의 독특한 맛은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좋았다. 별로 많이 먹지도 못하면서 친구들이랑 나눠 먹겠다고 소풍 때마다 김밥을 한가득 싸 달라고 했다. 소풍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내 책가방에서는 달강거리는 소리가 났다. 깨끗하게 비워진 큼직한 도시락통에서 숟가락과 젓가락이 서로 부딪치며 내는 경쾌한 소리였다. 그 소리를 듣고 있다 보면 내가 도시락을 싼 게 아닌데도 마음이 뿌듯하게 부풀었다.
대학생이 되어 요리에 관심이 생겼을 때 엄마에게 여쭈어보았다. 엄마, 우리 집 김밥에는 왜 식초를 많이 넣어? 엄마는 외할머니 집안이 일본에서 오래 사셨기 때문이라고 알려 주셨다. 일본식 김초밥의 영향을 받은 거였다. 그 이후로 스시 집에서 그릇에 송송 놓인 아담한 김초밥을 볼 때마다 괜히 혼자 반가워지곤 했다.
냉장고 문을 열고 식재료들을 살펴본다. 장을 봐 놓지 않아서 별게 없다. 소고기도 없고 유부도, 시금치도 당근도 단무지도 없다. 있는 거라곤 지난번에 만들어놓은 어묵볶음과 언제나 자리 차지하고 있는 신김치, 그리고 부모님 댁에서 얻어온 열무김치뿐이다. 이 정도면 아주 훌륭하다. 여기에 늘 찬장에 쟁여놓는 참치 통조림 한두 개면 화룡점정이다. 마침 깻잎도 몇 장 남아 있으니.
쌀을 한 컵 반 정도 헹구고 안친다. 평소에는 현미밥을 자주 먹지만 김밥만큼은 흰 쌀밥으로 만들어야 맛있다. 빠른 취사를 선택하면 20분도 채 걸리지 않아 온기 가득한 새 밥을 얻을 수 있다. 신김치를 체에 밭치고 흐르는 물에 씻는다. 고춧가루와 양념을 모두 씻어내야 한다. 하얀 쌀밥에 고춧가루가 덕지덕지 묻어 버리면 미관상으로도 썩 좋지 않은 데다가 김치 양념이 다른 속재료들의 맛을 다 눌러 버린다. 세수를 마친 신김치는 나이가 들어 성숙해진 알배추처럼 생겼다. 열무김치는 탄탄하고 두꺼운 줄기 부분만 골라 양념을 씻어 놓는다. 깻잎도 깨끗하게 씻은 후 꼭지를 떼어 둔다.
참치 통조림을 조금만 뜯는다. 엄지손가락 두 개로 뚜껑을 꾹 누르며 통조림 속의 기름을 뺀다. 기름이 빠져 얼추 보송해진 참치를 너른 그릇에 담는다. 마요네즈를 힘주어 짠다. 오늘의 김밥은 아삭하고 담백한 맛이 핵심이므로 마요네즈는 조금만 넣는다. 포크로 가볍게 비벼 놓는다.
깊은 볼에 밥을 뜬다. 갓 지은 밥이라 뜨거운 기운을 실컷 품고 있다. 식초로 간을 한다. 식초를 병째로 들어 쪼르르, 쪼르륵, 쪼륵, 이렇게 한 대여섯 번 부어 준다. 거실에 식초향이 강하게 퍼진다. 초밥집에 온 것 같다. 참기름을 세 바퀴 두르고 소금을 친다. 밥주걱을 들어 부지런히 아래위로 섞는다. 중간중간 간을 보며 소금을 추가하다가, 살짝 짭짤하고 부드러운 초밥 느낌이 날 때 멈춘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 식탁에 김밥용 김과 밥, 양념을 씻어낸 배추 묵은지와 열무김치, 조금 남은 어묵 반찬, 그리고 마요네즈에 버무린 참치와 참기름을 차례차례 놓는다. 도마를 꺼내 그 위에 대나무로 만든 김밥발을 올린다. 양손에 비닐장갑을 낀다. 단침을 삼키며 기다리고 있는, 오늘 유능한 조수 역할을 할 남편도 부른다.
얇은 여름용 이불을 펴듯이 김을 한 장 깐다. 밥을 한 줌 집는다. 손끝이 뜨거워진다. 까만 김 위로 툭툭 떨어지는 하얀 밥알 덩이들. 손가락을 오므리고 손톱 등 부분을 이용해 가볍게 톡톡 누르며 밥을 펼친다. 절반을 살짝 넘는 면적에 이를 때까지 균일하게 흰밥을 깔아 준다. 어묵볶음과 묵은지, 열무김치를 각각 한 줄씩 올린다. 그 위로 깻잎을 두 장 펴 놓고, 안쪽에 참치를 듬뿍 담는다. 바람이 부는 날 코트 앞섶을 여미듯 깻잎의 양 날개를 살포시 닫아 동그랗게 말아 둔다.
차곡차곡 쌓인 재료들이 쏟아지는 일이 없도록, 검지부터 새끼까지 네 개의 손가락으로 앞부분을 살포시 단속한다. 그 상태에서 엄지손가락으로 김밥 아랫면을 리듬감 있게 들어 올리며 한번 말아낸다. 어깨 지압을 하는 것처럼 손끝에만 힘을 주어 꼭꼭 누른다. 김밥발의 윗부분을 앞으로 조금씩 빼낸다. 한 번 빼고 한 번 누르고, 다시 한번 빼내고 한 번 지압하고. 그렇게 여러 번 천천히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까만 원통 모양의 김밥 한 줄만 도마 위에서 길쭉하게 인사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 김밥집 조수가 필요해지는 시간이다.
“참기름.”
짧게 말하고서 비닐장갑을 낀 손을 펼친다. 소풍날 엄마의 모습을 따라 하는 중이다. 남편도 그때의 나처럼 앞에 놓인 참기름병을 얼른 들고서 조심스럽게 기울인다. 조금 기다리면 왼손 손바닥에 참기름이 한 방울 떨어진다. 양 손바닥을 맞대고 두어 번 둥그렇게 비빈 다음, 김밥을 굴리며 표면에 참기름을 입힌다. 삽시간에 참기름의 구수한 향이 퍼져 입맛을 돋운다. 김의 이음새 부분을 아래로 향한 상태로 그릇에 올려 둔다.
기지개를 켜며 뻐근한 허리를 곧추 세웠다. 벌써 세 줄이나 말았다. 알맞은 두께와 동일한 길이로 화목하게 모인 김밥 삼 형제. 먼저 완성한 녀석부터 썰어 준다. 칼 표면에도 참기름을 얇게 바른 후에 여린 톱질을 하듯 느릿느릿 썬다. 칼질을 할 때 팔힘을 주어 누르면 안 된다. 타원형 김밥을 먹고 싶은 게 아니라면.
완성한 김밥을 그릇에 담는다. 2단 케이크처럼 탐스럽게 김밥으로 층을 쌓는다. 케이크를 장식하는 스프링클처럼 통깨도 살랑살랑 뿌려 주는데, 옆에서 남편은 외면받은 김밥 꽁다리가 속상해하지 않도록 냉큼 입에 넣어 씹고 있다. 그러고는 김밥에 라면이 빠지면 서운하다며 후다닥 가스레인지 앞으로 달려간다. 꽁다리 챙기랴 라면 챙기랴, 배려심이 넘쳐 바쁘다 바빠.
식탁에 앉아 라면이 도착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자꾸만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코에 박힌다. 혀가 촉촉해진다. 간식을 눈앞에 두고 애처롭게 기다리는 우리 집 멍멍이가 된 기분이다. 우리 집 멍멍이들은 착하고 귀엽고 다 좋은데 딱 하나, 참을성이 부족한 게 흠이다. 주인을 닮아서 그렇다. 손가락으로 김밥 한 알을 날름 집어 먹었다.
김밥이 혀에 닿자마자 새콤한 맛과 향이 살짝 감겨온다. 두어 번 나긋나긋 씹는다. 마요네즈를 살짝만 버무려 녹녹하면서도 담백한 참치가 결결이 부서진다. 새큼한 묵은지가 전체적인 균형과 간을 잡는다. 때때로 느껴지는 부드럽고 짭짤한 어묵볶음은 풍미도 식감도 햄과 비슷한 인상을 준다. 단무지가 없어 아쉬움이 들 때쯤 시원한 열무김치가 아싹 얼굴을 내민다. 한번 맛을 봐 버리니 자꾸만 손이 간다. 한 개만 더 먹어야지. 라면하고 같이 먹어야 하니까 이제 진짜 기다려야지. 아직 많으니까 한 알만 더. 진짜 한 알만 더 먹어야지. 마지막으로 딱 한 알만 더…….
“김 선생님, 지금 어디에 있어요?”
수업이 막 끝났을 무렵, 갑자기 휴대폰이 울렸다. 딱 1년 전에 가르친 사우디아라비아 학생이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대뜸 이렇게 물어온 것이다. 의아해하며 되물었다.
“네? 저는 지금 교실에 있어요. 왜요?”
“교실이 몇 층이에요? 저는 가요.”
“지금 학교예요? 교실은 이 층이에요.”
“네. 기다리세요. 만나고 싶어요.”
예정된 1년간의 한국어 연수가 다 끝나서 이제는 학교에 올 일이 없을 텐데…….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부터 앞섰다. 그런 내 염려가 무색하게도, 오랜만에 다시 만난 그 친구는 쌀밥처럼 하얀 이를 빛내며 길쭉하고 환하게 웃었다.
“선생님! 잘 지냈어요? 정말 만나고 싶었어요.”
잠깐의 인사를 교환하기가 무섭게 학생은 나를 이끌고 야외 주차장으로 향했다. 바쁘게 걸음을 옮기며 조잘조잘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미안해요, 선생님. 저는 다시 병원에 가야 해요. 그래서 지금 시간이 없어요. 하지만 주고 싶은 선물이 있어요. 저는 지난주에 사우디아라비아에 갔어요. 거기에서 선물을 샀어요. 선물을 주고 싶어요…….
한참 동안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하더니 어느 차 뒤로 가서 트렁크를 열었다. 커다란 쇼핑백을 꺼내와서는 나에게 건네주었다. 생각보다 큰 크기에 놀란 내가 한사코 사양하자, 사뭇 진지해진 얼굴로 설득하기 시작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저는 정말 힘들었어요. 포기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선생님이 도와줬어요. 그래서 아주 고맙습니다. 그래서 꼭 주고 싶어요. 정말 주고 싶어요.
집에 와서 쇼핑백을 열어 보았다. 절로 탄성이 나왔다. 말린 대추야자가 2단 케이크처럼 두 개의 층으로 탐스럽게 담겨 있었다. 대추야자 통을 안은 채 소파에 털썩 앉는데 마음도 함께 아늑해졌다. 두 개의 층에 걸쳐 빼곡하게 담긴 다정함. 마음의 온기를 전하는 매개체로 음식을 택하는 건 세계 어디에서나 비슷한 모양이다.
처음 먹어 보는 과일이라 잠시 주저했지만, 손가락으로 대추야자 한 알을 집어올리니 그 안에서 포근함이 느껴졌다. 부드럽게 뭉개지는 곶감 같은 맛이었다. 참 달고 맛있어서 한번 더 손이 갔다. 그렇게 한 알 더, 다시 또 한 알 더, 진짜 한 알만 더…….
유난히 한국어 공부에 어려움을 겪던 학생이었다. 아내와 어린 딸을 고국에 두고 와 지독한 향수병을 겪으며 연수를 꾸역꾸역 이어나갔는데, 생각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자 깊은 좌절감에 빠졌던 학생. 우울해서 조용히 지내다가, ‘V(동사)고 싶다’를 배우던 날에 갑자기 평소보다 더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많이 하던 친구.
“제 아내를 만나고 싶어요.”
“제 딸이 보고 싶어요.”
“선생님, 저는 울고 싶어요.”
그랬던 그가 어느덧 1년간의 연수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지금은 늘 바라던 대로 한국의 대학병원에서 레지던트 실습을 하고 있다. 정신없이 바쁜 일상일 텐데 짬을 내어 학교에 들러 준 그 마음이 고마워 대추야자를 한 알 더 집어 먹었다. 정말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울고 싶어요’라고 말하던 그때의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니까 한 알 더. 선생님, 만나고 싶었어요. 선물을 주고 싶어요. 꼭 주고 싶어요……. 슬픔만이 가득했던 ‘-고 싶다’가 이제는 한결 가볍고 넉넉해졌으니 그게 멋지고 즐거워서 한 알 더.
그때처럼 자꾸만 김밥을 집어 먹으면서 상상에 빠져 본다. 만약 우리의 첫 학기,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한번쯤 김밥을 싸서 양손 가득 들고 가도 좋겠다. 무슬림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으니까 오늘처럼 햄을 넣지 않은 묵은지참치김밥으로. 비가 오는 날이지만 김밥을 먹으면 집에서도 소풍을 갈 수 있는 것처럼, 울고 싶은 날이라도 김밥만 먹으면 교실에서도 소풍을 떠날 수 있을 것이다. 저 멀리 사우디아라비아로. 아내와 딸이 아빠를 기다리며 피크닉 매트를 펼쳐 놓은 그곳으로.
중학교 때 교과서에서 처음 만난 어떤 시인은 인생을 소풍에 비유했다. 학생들과 보내는 하루하루가 내게는 소풍과 같다. 출발하기 전의 설렘, 오가는 음식들이 품은 다정함, 웃음이 가득한 추억. 유독 다감했던 그 시구처럼 나도, 아름다운 이 교실 소풍 끝내는 날이 언제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려면 앞으로의 ‘-고 싶다’들에 아쉬움을 남기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하고 싶은 말, 주고 싶은 마음 모두 아낌없이 꺼내놓아야겠다고 다시금 다짐한다. 먹고 싶은 김밥 한 알 더 집어 먹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