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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리하는 김선생님 Mar 20. 2024

우리 같이 닭한마리를 먹을까요?

오늘 반찬은 한국어입니다   제13화  닭한마리






[ 오늘의 반찬 ] 

V(동사)(으)ㄹ까요?


 여러분, 우리 같이 점심을 먹을까요?     

 밥을 먹은 후에 무엇을 할까요? 우리 같이 커피를 실까요?     

 솜이야, 동구야! 우리 산책 갈까?




  정신없이 바쁜 한 주를 보내고 드디어 되찾은 주말. 침대에 누워 천금 같은 휴식을 경이롭게 만끽하고 있었다. 휴대전화 알람 없이 실컷 늦잠을 자고 일어나 맞이하는 여유로운 아침은 어쩜 이렇게도 달콤한지. 아무 일 하지 않고 천장만 보고 있어도 끝내주게 재미있었다. 한 시간 가까이 이리 뒹굴 저리 뒹굴 구르다 보니 슬슬 허리가 아파왔다. 오늘의 날씨를 확인했다. 날도 따스하고 공기도 좋은 날이다. 천장 보는 게 넷플릭스 시청보다 재미있는 오늘 같은 날에도, 이렇게 날씨가 좋으면 꼭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오빠. 날씨도 좋은데 솜이랑 동구랑 같이 산책할까?”



  침대 왼쪽에 누워 꼭 나와 같은 포즈로 천장 구경을 하고 있던 남편이, 말을 듣자마자 바로 반색한다.



  “언제 갈까? 간식도 준비할까?”



  강아지를 좋아하는 남편은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솜이와 동구를 만나는 일만큼은 절대 미루지 않는다. 솜이와 동구는 내가 대학생이었을 때부터 십 년 넘게 가족으로 지내고 있는 반려견이다. 둘은 친정집에서 지내고 있다. 이제 와 하는 고백이지만, 친정집에서 걸어서 삼 분 거리에 신혼집을 구한 이유 중 절반 이상은 솜이와 동구 때문이었다. 가까이 살면 그만큼 자주 볼 수 있을 테니까. 바로 오늘처럼.     




  초인종을 누르자 문 안쪽으로부터 반가운 왕왕 앙앙 소리가 들려왔다. 저절로 씨익 웃음이 났다.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대문 코앞까지 달려 나와 있을 거다. 언제나 가족 중 누구보다도 먼저 반겨 주니까. 문이 열리고 한동안 소란스럽게 재회의 기쁨을 나눈다. 아이들의 흥분도가 좀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뜸을 들여 묻는다. 쫑긋거리는 털북숭이 귀 네 개.



  “솜이야, 동구야.”


  “…….”


  “우리 산책 갈까?”


  “……!”



  신이 난 둘은 나를 넘어뜨릴 기세로 마구 달려든다. 안겨들고 또 안겨든다. 품 안에서 빠르게 맴도는 털보들의 소용돌이. 눈을 감고 그 위로 얼굴을 묻는다. 양 볼을 톡톡 치며 꼬랑지가 알랑알랑. 솜이와 동구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간. 사랑해, 사랑해. 사랑한다는 말도 공평하게 한 번씩.   







       

  “와, 너무 힘들어. 근데 배고파.”



  산책을 마치고 우리 집으로 돌아왔다. 밥도 먹지 않고 여기저기 뛰어다녔더니 온몸에 힘이 다 빠져버렸다. 시간은 벌써 오후 한 시. 뒤늦게 배달음식을 주문하기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다. 집에 있는 재료로 빠르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음식 만드는 건 정말 재미있지만 지금은 너무 기진맥진한 상태라 재주를 뽐내기가 어렵다.



  냉장고 문을 열어 보니 지난번에 사둔 생닭이 보인다. 그 옆에 부추도 조금 남아 있다. 머릿속에 구세주처럼 메뉴 하나가 떠오른다. 이런 날엔 재료 몽땅 때려 넣고 푹 끓이기만 하면 되는 닭한마리가 딱이다, 딱.



  그런데 음식 이름이 ‘닭한마리’라니. 이리 생각하고 저리 생각해도 정말 이상한 이름이다. 닭 한 마리가 다 들어가서 붙인 이름이라기엔 백숙이나 삼계탕, 치킨은 왜 닭한마리라고 부르지 않는 건지 의문이 든다. 아마도 닭한마리의 첫 명칭은 ‘닭한마리칼국수’였을 것이다. 칼국수에 닭이 한 마리 통째로 들어간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 붙인 이름이 아니었을까? 이제 칼국수는 주요리보다는 사리의 자리로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힘든 나는 칼국수 빼고 그냥 닭한마리에만 집중해야지. 절대로 칼국수 한 번 더 끓이기 귀찮아서가 아니고, 현 명칭을 그대로 존중하기 위해서…….     




  생닭 포장을 벗기고 냄비에 가지런히 담는다. 닭고기가 잠길 만큼 물을 넉넉히 부어 두고 불을 올린다. 맛술과 치킨스톡을 한 숟가락씩 물에 푼다. 맛술에는 설탕이 꽤 많이 들어가 있어서 많이 넣을 경우 음식이 너무 달달해질 위험이 있으니 딱 한 스푼만. 아쉬우면 두 스푼까지는 괜찮다.



  냉장고 야채 칸에 구비되어 있는 채소들을 서둘러 꺼낸다. 감자 한 알, 알배추 두 잎, 대파 두 대, 청양고추 하나, 부추 조금. 모두 간단하게 샤워를 시키고 나서 가장 먼저 감자부터 손질한다. 우리 집 감자 칼은 세라믹 재질인데 보기엔 플라스틱처럼 생겼어도 절삭력이 대단하니 주의해야 한다. 지금처럼 지치고 피곤한 순간에는 더더욱. 껍질을 벗겨 말끔해진 감자를 둥그런 모양의 면을 살리며 편썰어준다. 배추는 가로로 잡고 슥슥, 대파와 부추는 5센티미터 길이로 길쭉하게, 청양고추는 한쪽으로 기울여 썰어 놓는다. 늘 냉동실에서 꽁꽁 언 상태로 한 자리 차지하고 있는 떡국 떡도 오랜만에 한 줌 끄집어낸다.



  펄펄 끓는 육수 속에서 닭이 절반 정도 익었을 때 고기를 한 번씩 뒤집어 아랫면과 윗면을 서로 바꾼다. 육수가 충분해서 굳이 뒤집지 않아도 속까지 깊이 익겠지만, 한번 뒤집지 않으면 왠지 섭섭하다. 딱히 할 일이 없어 심심하기도 하고. 그다음엔 감자와 대파를 모두 빠뜨린다. 이 상태로 15분쯤 멍하니 기다리면 언뜻 보았을 때 닭이 다 익은 것처럼 뽀얗다.



  이제 나머지 야채들을 넣을 순서다. 썰어 놓은 배추와 청양고추를 냄비 안 여기저기로 후두둑 뿌린다. 부추는 아직이다. 부추는 파릇파릇한 풋내를 얼만큼은 유지해야 더 맛있다. 그래서 기다림의 시간을 좀더 견뎌야 한다. 10분 정도 더 끓이다가 마지막으로 떡국 떡을 넣고 3분 후에 불을 끈다. 완성한 닭한마리 위에 부추를 작은 카페트처럼 펼친다.



  빠르게 양념장을 만든다. 닭한마리는 양념장이 생명이다. 소스볼에 고춧가루 세 스푼, 간장 두 스푼, 닭한마리 육수 두 스푼, 참치액과 다진마늘, 맛술은 각각 반 스푼씩 넣는다. 겨자를 좋아한다면 겨자를 조금 추가해도 좋다. 그 위에 부추를 잘게 잘라 올린 후 잘 섞어서 식탁에 낸다.   



  

  하얀 식탁에 놓인 연분홍빛 무쇠 냄비. 그 안에서 뽀얗게 푹 익은 닭고기와 채소들. 바라보고만 있어도 포근한 느낌이 든다. 누군가 내 뒤에 다가와 양어깨를 따스하게 안고 품어 주는 것 같은 그런 기분.



  국물부터 한 숟갈 뜬다. 오래 고아 아늑해진 닭 육수. 채수가 섞여 건강한 감칠맛이 난다. 입천장으로 혀를 문지르며 굴리면 배추의 단맛이 샐쭉 웃으며 눈을 맞춘다. 닭다리를 하나 집는다. 젓가락을 찔러 넣고 옆으로 톡 건드리니 고깃결을 따라 부드럽게 찢어진다. 그대로 먹으면 감칠맛이 살며시 도는 백숙 맛 같다. 이번에는 양념장을 한번 폭 찍고 부추도 두어 개 올린다. 맵싸한 양념이 살코기의 결을 따르며 퍼지고 흩어진다.



  연한 다리살과 졸깃한 가슴살, 탱글한 떡을 번갈아 한번씩 먹다 보니 어느 틈엔가 몸에 넌지시 열이 오른다. 앞에 앉은 남편도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며칠 무겁고 뻣뻣했던 온몸이 단번에 가뿐해진다. 주중의 피로가 땀방울과 함께 씻겨 내려가는 듯한 느낌. 이런 느낌을 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아! 시원하다!”라고 표현한 게 아닐까?



  벌써 냄비 바닥이 드러났다. 우리 두 사람은 모두 몸을 뒤로 젖히고 배를 땅땅 두드리고 있다. 배가 가득 찬 게 분명한데 무언가 헛헛한 기분이다. 아마 칼국수를 먹지 않아서인 것 같다. 고기가 메인인 식사를 면류나 볶음밥 등의 탄수화물로 마무리 짓지 않으면 뱃속이 이상야릇하게 허전한 걸 보니 나도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인 모양이다. 그렇지만 더는 음식물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 아쉽고 또 아쉬워서 괜히 젓가락만 달그락거린다. 어떻게 한담……. 왼쪽 오른쪽으로 한 번씩 눈을 굴려보다가 슬그머니 묻는다.



  “우리 오늘 저녁에 칼국수 먹을까?”  




        





  한 학기에 한 번씩은 반 학생들과 식사를 한다. 학생들과 교사가 함께 꼭 식사를 해야 한다는 교칙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열몇 명이나 되는 학생들과 일일이 시간을 조율하는 건 상당히 번거로운 작업이기에 웬만하면 밥 약속 잡기를 피하시는 선생님들도 계신다.



  나는 거의 모든 학기마다 학급 학생들과 한두 번씩은 같이 밥을 먹었다. 다수의 인원이 함께 만날 수 없었던 펜데믹 시절을 제외하면 말이다. 사실 나는 타인에게 썩 다정한 성격이 아니다. 동료 선생님들에게는 쭈뼛거리며 낯도 상당히 가리곤 한다. 그래서인지 학생들과 가까이 지내는 내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시는 동료 선생님들도 계셨다. 아마 좀 의외의 모습이라고 생각하신 것 같다.



  참 이상하게도 학생들에게는 자꾸만 정이 간다.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함박웃음을 매일 지을 수도 있고, 이만큼 정을 주었는데도 이따만큼 더 많이 주고 싶은 마음이 계속해서 흘러넘친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노력과 애정을 쏟고 또 쏟아도 아깝지가 않다. 그만큼 좋아하고 그만큼 관심이 가는 두 가지 대상, 학생과 음식이 한곳에서 만날 수 있는 식사 자리는 정말이지 마다할 이유가 없다.



  한 가지는 이실직고하고 지나가고 싶다. 절대로 학생들과 같이 밥을 먹지 않을 거라고 마음먹은 학기가 있기는 했다. 공부도 열심히 안 하고, 맨날 책상 밑에서 몰래 휴대폰 게임 하고, 친구랑 자기 나라 말로 시끄럽게 떠들고……. 한둘만 있어도 선생님의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이런 친구들이 아주 그냥 한 반에 다 모여 있던 사고뭉치 학급이었다. 학기 내내 시달리면서 ‘너희들이랑은 밥 절대 안 먹는다!’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학생들이 먼저 밥 먹자고 해도 계속 바쁜 척하면서 확답을 주지 않고 스리슬쩍 넘어갔다. 내 나름의 소심한 복수였다고나 할까.     




  그러던 어느 날. ‘V(동사)(으)ㄹ까요?’를 가르치는 날이었다. ‘-(으)ㄹ까요?’는 대화 상대방에게 먼저 제안을 하며 의향을 묻는 표현이다. ‘-(으)ㄹ까요?’를 가르치는 날엔 보통 가상의 점심 식사 약속을 하며 수업을 시작했다. 그날도 그랬다.



  “여러분, 우리 같이 점심 식사를 할까요?”


  “네? 네, 좋아요!”


  “우리 같이 뭘 먹을까요? 고기를 먹을까요? 라면을 먹을까요?”


  “고기를 먹고 싶어요.”


  “아, 그래요? 그럼 밥을 먹은 후에 뭘 할까요? 우리 같이 커피를 마실까요?”


  “네! 커피를 마셔요!”



  분위기가 좀 이상했다. 평소엔 집중도 잘 안 하는 사고뭉치들이 갑자기 날 한번 봤다가 자기들끼리 수군수군댔다. 열심히 떠들다가 내 눈치를 한번 슥 보기도 했다. 서로 휴대폰으로 달력 화면을 보여주며 조잘거리는 걸 보니 아뿔싸, 수업 도입을 위한 가상의 대화가 아니라 진짜로 반 회식을 하자는 의미로 이해해 버린 게 분명했다. 화제를 돌리기 위해 급하게 교재를 펴라고 했다. 너희들이 날 얼마나 고생시켰는데, 같이 밥을 먹어? 절대 그럴 수 없지! 책에 나와 있는 예문을 막 읽으려는 순간, 수업 시간마다 제일 시끄럽게 떠들던 베트남 여학생이 떨리는 음성으로 더듬거렸다.



  “서, 선생님. 어, 어, 언제……. 언제 먹을까요?”



  손에 든 휴대전화 화면에 달력이 띄워져 있었다. 휴대전화 화면도 살짝 떨리고 그 아이의 목소리도 떨리고. 그리고 또, 보고야 말았다. 크게 뜬 눈. 기대감으로 떨리는 눈동자. 살짝 벌어진 입. 슬며시 올라간 입꼬리. 아유, 정말. 이러면 내가 질 수밖에 없잖아.



  그날 우리는 점심 약속을 잡았다.    



 

  학생들이 선택한 메뉴는 닭한마리였다. 닭한마리는 외국인 학생들에게 아주 인기가 좋다. 돼지고기나 소고기는 종교적 또는 개인적인 이유로 꺼리는 학생들이 생각보다 꽤 있다. 닭고기는 그런 제약이 별로 없고, 그중에서도 닭한마리는 동양 서양 따질 것 없이 모두가 좋아하는 메뉴다. 양념 맛도 강하지 않고 담백해서 매운 음식에 익숙하지 않은 친구라도 부담 없이 먹을 수가 있다. 고기를 다 건져 먹은 후 칼국수나 죽을 끓여 먹는 문화도 그들에겐 독특하고 재미있게 다가오는 듯하다. 손수제비를 넣어주는 식당에 가면 냄비 위에서 수제비를 뜨는 이모님의 현란한 기술에 다 같이 손뼉을 치는 재미도 있다.



  그날 같이 닭한마리, 아니 닭네마리를 해치우는 동안 우리 반 말썽쟁이들은 열심히 눈을 빛내며 한국어로 이런저런 질문들을 해왔다. 내가 입만 뻥긋하면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수업 시간에 지금처럼 집중하고 열성적으로 질문하면 얼마나 좋아. 칼국수까지 긁어먹은 후에는 모두 다 몸을 뒤로 젖히고 배를 땅땅 두드렸다.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러 가는 길에 사고뭉치들은 저마다 한 명씩 “선생니이임!” 하며 나에게 안겨들었다. 사랑하는 우리 집 털북숭이들처럼. 이렇게 좋아할 줄 알았으면 진작 같이 밥 먹을 걸, 나도 참.







         

  우리 집에도 사고뭉치와 말썽쟁이가 있다. 나는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남편은 솜이와 동구, 그리고 나까지 셋을 한데 묶어 ‘방배동 말썽쟁이’라고 부른다. 털북숭이 친구들이 말썽쟁이인 건 맞지만 왜 내가 함께 거론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맨날 덜렁거려서 그렇다나. 친정과 시댁을 통틀어 운전면허증이 없는 것도 우리 셋뿐이다. 말썽쟁이라고 통틀어 불릴 때마다 자존심이 좀 상하기는 하지만 단순하게 생각하면 기분이 좋기도 하다. 사랑하는 솜이와 동구하고 한 테두리에 들어갈 수 있는 거니까. 한 번 사는 인생 그냥 푹 끓인 닭한마리처럼 단순하게 살지 뭐.



  ‘-(으)ㄹ까요?’는 솜이와 동구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어 표현이다. 우리 산책 갈까? 우리 같이 나갈까? 간식 먹을까? 이거 먹을까? 듣는 이에게 앞으로 같이 할 일을 제안하며 의견이나 생각을 묻는 말. 우리 강아지들이 명령하는 말보다 ‘-(으)ㄹ까요?’처럼 제안하는 말에 더 익숙하다는 사실이 나를 포근하게 안아준다. 솜이와 동구, 남편, 가족, 친구, 동료, 그리고 우리 학생들. 앞으로도 나의 소중한 동반자들에게 이런 포근한 말들을 하며 늙어가고 싶다. 뽀얗게 푹 익은 닭고기를 볼 때처럼, 누군가 뒤에 와 어깨를 살포시 안아주는 것 같은 그런 아늑한 말들을 하며. 오래오래 그렇게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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