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요리하는 김선생님 Mar 12. 2024

항상 술하고 같이 먹어요

오늘 반찬은 한국어입니다   제10화  육회와 감태주먹밥






[ 오늘의 반찬 ] 

N(명사)하고 같이


 육회는 안주입니다. 저는 육회를 항상 술하고 같이 먹습니다.     

 제 남편은 술을 못 마셔요. 하지만 저는 남편하고 같이 술을 마셔요.     

 친구하고 같이 밥을 먹으면 더 맛있어요.




  ‘밥’이나 ‘식사’, ‘음식’보다는 ‘안주’라는 제목을 붙여야 비로소 제 짝을 만난 것 같은 음식들이 있다. 식사로는 적당하지 않다고 아무도 정해둔 사람은 없지만, 어제 저녁으로 이걸 먹었다고 말하면 상대방으로부터 “그게 밥이야?”, “술도 마셨어?”와 같은 질문이 바로 되돌아오게 만드는 그런 음식들. 소곱창이나 생선회, 어묵탕 같은 음식들이 그러하다.



  우리 가족의 밥상 사진들을 쭉 보아 온 사람들이라면 이미 짐작하고 있겠지만 우리 집 식탁에는 해물 요리가 거의 올라오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남편이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척이나 싫어하는 몇 가지 재료만 제외하면 막상 만들어주면 잘 먹기는 한다. 그렇지만 해산물이 들어간 음식을 먹는 동안에는 식탁에서 맛있다는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해물 요리는 하지 말자고 따로 마음먹은 적이 없었는데도 결혼 후 해산물을 먹는 빈도가 급격하게 준 걸 보면 나에겐 역시 맛있다는 그 말이 가장 맛깔나는 반찬이었나 보다.   



  

  남편은 생선회를 특히 싫어한다. 원래도 썩 좋아하지 않는 메뉴였는데, 몇 년 동안 잦은 출장을 다니면서 결국 싫어하게 되었다. 출장 회식 메뉴는 팔 할 이상이 생선회였다. 생선회로 저녁 회식을 하는 날이면 속상함이 왕창 담긴 목소리로 내게 전화를 걸곤 한다.



  “또 회 먹어. 진짜,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이렇게 회를 좋아하는 거야? 쯔끼다시만 엄청 먹었어.”



  남편은 쓰키다시를 꼭 ‘쯔끼다시’로 발음하는데 우울한 목소리와 함께 그 말을 듣고 있으면 퍽 귀엽다는 생각이 든다. 위로를 바라고 건 전화였겠지만 들으면서 웃다 보니 좀 놀리고 싶어져서 이렇게 말한다.



  “그건 다 오빠가 술을 안 마셔서 그래.”



  남편은 술도 싫어한다. 술이랑 먹어야 제맛인 회를 술 없이 먹고 앉아 있으니 그게 맛있게 느껴질 턱이 있나. 술을 즐기지 않으니 꼭 회가 아니더라도 안주로 분류되는 음식들엔 대부분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가끔 보면 무슨 재미로 사는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맛의 지평을 넓혀 주겠다는 이유로 좋아하지도 않는 술을 억지로 먹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안주와 친하지 않은 우리 남편도 즐겨 먹는 안주가 하나 있다. 아, 물론 남편에게는 안주가 아니라 식사다. 바로 소고기 육회다. 육회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내 머릿속은 곧바로 먹음직스럽게 빨간 색상으로 물들고 손끝에서는 차가운 감촉이 느껴지는 듯하다. 육회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안주이기도 하다.



  육회는 단백질이 풍부해서 식사로도 좋은 음식이다. 특히 육회비빔밥처럼 밥과 채소를 함께 먹는 메뉴는 당당히 식사로 칭해도 영양학적으로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육회 김밥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육회 김밥을 파는 가게가 보통 식당이라 불리는지 술집이라 불리는지를 곰곰이 다시 생각해 보면 육회를 어디로 분류해야 할지 자연히 답이 내려진다.



  같은 회인데도 생선회와 육회는 우리 집에서 각각 차별 대우를 받는다. 주말에 생선회 먹자고 하면 “친구하고 같이 먹어.”, “동생하고 같이 먹어.”라는 답이 나오지만, 소고기 사서 육회 해먹자는 말엔 대개 긍정적인 반응이다. 생선회나 육회나 둘 다 술을 곁들이지 않으면 제맛이 아닐 텐데 남편에겐 달라도 한참 다른 모양이다.



  남편과는 정반대로 애주가인 나는 안주를 만들 때 제일 신이 난다. 요리할 때의 즐거움에는 이어질 식사 시간에 대한 기대감이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안주는 음식 맛에 대한 기대와 청량한 술에 대한 기대감이 합쳐지니, 만든다는 생각만으로도 콧노래가 나는 것이다. 게다가 육회는 남편하고 같이 먹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안주니까. 지갑 하나 챙겨 들고 후다닥 동네 정육점을 향해 가볍게 달린다.




  육회용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소고기 부위는 우둔살이다. 그러나 우리 집에서는 늘 꾸리살을 쓴다. 꾸리살은 갈비와 앞다리 사이에 위치한 부위인데 담백하고 쫄깃한 식감이 특징이다. 어느 정육점에 가든 늘 “육회용 고기 주세요.” 이렇게 주문했는데, 한 정육점에서 산 육회가 유독 식감이 좋아서 내 입맛에 딱 맞았다. 다음번에도 그곳을 찾아 똑같은 말로 주문하면서 사장님께 어느 부위를 사용하시는지 여쭈었다.



  “이거 꾸리살이에요. 맛있죠?”


  “네. 지난번에 먹고 너무 맛있어서요.”



  사장님은 고기를 썰다 말고 날 보며 한번 씩 웃으셨다. 어쩌면 이곳의 육회가 특히나 더 맛있었던 이유는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사람의 손으로 손수 썰어 낸 덕분일지도 모른다. 사장님의 미소는 손님에게 형식적으로 으레 보이는 버릇일 수도 있겠지만, 왠지 그날은 같은 입맛인 사람을 만났을 때 표하는 반가움처럼 느껴졌다. 아무튼 그날부터 육회는 꼭 꾸리살을 고집하게 되었고, 그곳을 우리 집 단골 정육점으로 삼았다.          








  오늘의 육회가 식사를 겸하는 안주가 될 수 있도록 주먹밥도 함께 만들기로 했다. 몇 년 전쯤부터 SNS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감태 주먹밥을 만들 생각이다. 사진으로만 보고 늘 그 맛이 궁금했다. 육회와 해초의 조합이 쉽게 상상되지 않지만 다들 먹는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조리용 투명 비닐을 한 장 뽑는다. 감태는 큰 조각으로 세 장 준비한다. 감태는 꼭 진초록색 얇은 실들이 얼기설기 얽히다가 파피루스처럼 종이를 만들어낸 것처럼 생겨서 재미있다. 아주 얇디얇아서 조금만 힘을 잘못 줘도 쉽게 찢어질 듯하다. 비닐봉지에 감태 세 장을 구겨 넣는다. 입구를 꽉 쥐고 감태를 마구 부순다. 옷에 얼룩이 묻어 씻어낼 때처럼 양손에 감태를 쥐고 이리저리 부비다 보면 봉지 안에는 어느새 초록빛 가루들이 차분히 가라앉아 있다.



  스테인리스 볼에 밥을 몇 주걱 담는다. 마요네즈와 소금으로 밥에 간을 한다. 시어머님이 반찬으로 주신 짭짤한 멸치도 함께 넣고 주걱으로 뒤섞으며 비빈다. 참기름도 조금 넣는다. 재료가 고루 섞인 부분으로 골라 한입 맛본다. 간이 맞으면 비닐장갑을 끼고 밥을 뭉친다. 너무 작은 크기는 복이 없어 보이니 어린이 주먹만 한 크기로 동그랗게 꼭꼭 뭉친다.



  주먹밥은 참 귀엽고도 적절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밥을 다 뭉쳤을 때도 아이 주먹처럼 보이고, 주먹밥을 만드는 동안에도 손으로 자꾸 가볍게 주먹을 쥐어가게 되니 말이다. 즐거운 생각을 계속하다 보니 볼 안에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귀여운 아이 주먹이 여섯 개 모이게 되었다. 이제 아이들 손에 초록색 털장갑을 끼워 줄 차례이다. 감태 가루가 담긴 봉지 안에 주먹밥을 모두 넣는다. 다시 한번 입구를 틀어쥐고 아이 손등의 살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계속해서 살살 흔든다.



  큼직한 그릇을 꺼내 왼편에 주먹밥을 담는다. 체험학습을 가는 아이들의 모습처럼 짝을 지어 줄 세운다. 명란젓을 조금 꺼내 알만 따로 모아 마요네즈와 함께 섞는다. 살구색 명란 마요 소스를 숟가락으로 살포시 퍼서 초록색 감태 장갑을 낀 손등 위로 얹어 준다. 동그란 감태 주먹밥 위에 동그랗게 퍼진 명란 마요 소스.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동그란 명란 알알이 보인다.



  랩 포장을 뜯고 소고기 꾸리살 200그램을 깨끗한 볼에 담는다. 밥숟가락으로 진간장 한 스푼, 참기름 한 스푼 반, 고춧가루와 다진마늘은 반 스푼씩, 그리고 미원과 소금을 각각 두 꼬집씩 넣는다. 비닐장갑을 낀 손으로 고기를 살살 추리는 느낌으로 섞는다. 미끄러운 비닐의 감촉 너머로부터 전달되는 생고기의 차가움.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콧속으로 들어오니 침이 꼴깍 넘어간다. 생고기가 힘을 잃지 않도록 얼러 가며 육회 양념을 다 무쳤으면 두어 개 집어 맛을 본다. 입맛에 따라 좀 슴슴한 느낌이 들 수도 있다. 그땐 소금을 조금씩 더 추가한다. 간 맞추기가 끝나면 통후추를 두세 번 갈아 뿌린 후에 전체적으로 몇 번만 더 들춰 준다.



  완성한 육회를 감태 주먹밥이 기다리고 있는 접시 오른편에 동그랗게 모양을 내어 올린다. 꼭 밥그릇을 거꾸로 뒤집어 놓은 듯하다. 상단 가운데 부분을 손끝으로 조금 헤집어 휴화산의 봉우리처럼 패인 모양을 만들어 놓는다. 계란 노른자가 들어갈 공간이다. 노른자가 터지지 않도록 계란을 가볍게 슬쩍 깨고 나서 날계란 그대로 손바닥에 올린다. 손 아랫쪽으로 계란을 내려보낸 다음 서서히 손가락을 벌린다. 손가락 사이사이를 타고 미끌미끌한 계란 흰자가 떨어진다. 촉촉하게 남아 있는 노른자는 알끈을 빼낸 후 육회 봉우리에 올린다. 통깨로 장식을 끝낸다.




  동글동글한 여섯 개의 주먹 옆으로 둥글둥글하고 빨간 육회, 그 위엔 역시 동글동글한 계란 노른자가 올라가 있다. 만족스럽게 웃는 내 얼굴도 동그라미 모양일 테지. 이렇게 동그란 음식들만 생글생글 웃으며 먹다 보면 우리네 삶도 동그라미 모양으로 잘 굴러가지 않을까 하는 기대심을 품게 된다. 과감하게 노른자를 터뜨려 생고기에 마지막으로 부드럽고 노란 옷을 입힌다. 계란 노른자가 노랗게 퍼져 나가는 길을 눈으로 따라가며 다시 한번 침을 꼴깍 삼킨다.     




  앞접시에 감태 주먹밥을 하나 툭 내려놓는다. 젓가락을 이용해 한입에 먹기 알맞게 찢어 두고 그 위에 육회를 듬뿍 올린다. 본격적으로 식사를 시작하기에 앞서 냉장고에서 청하를 한 병 꺼낸다. 눈을 한번 찡긋하고서 남편에게 잔을 내민다. 갓 딴 새 술병에서 술이 따라지는 소리는 조르르보다는 통통통에 가까운 소리다. 통통통, 소리를 내며 술이 담기고 술잔을 든 내 손가락도 기분도 함께 시원해진다. 시원하게 한번에 들이켠다. 그리고 바로 오늘의 안주를 호록 먹는다.



  해말간 청하의 향과 함께 느껴지는, 보드라운 실처럼 맛봉오리를 간지럽히는 감태의 질감. 마요네즈를 넣어 짭조름하고 부드러운 멸치 주먹밥. 혓바닥을 위로 치대면 맛깔나는 명란이 넌지시 미소짓고, 뒤이어 차갑고 탱탱한 생고기가 자신 있게 말을 걸어온다. 상냥한 계란 노른자는 입안에 남아 있던 알콜향을 남김없이 지워 준다. 좋구나. 완연하게 좋구나. 육회를 완성하는 순간은, 술하고 같이 먹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이다. 맞은편에 앉은 누구는 이 맛을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것이다. 안타깝구나. 완연하게 안타깝구나.



  생각해 보니 남편은 내가 없는 곳에선 한 번도 육회를 먹은 적이 없다. 술을 마시지 않으니 육회를 파는 곳에 발을 들일 일이 별로 없어서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육회를 썩 좋아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날생선보다 좀 낫다뿐이지 날고기라고 해서 쾌재를 부르며 반기는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럼 지금은 왜 술하고 같이 먹는 것도 아니면서 맛있게 먹고 있는 걸까?



  흐음, 아무리 고민해 봐도 답은 하나뿐이다. 아내하고 같이 먹으니까 맛있는 거지, 히히. 술 한 잔 못 마시는 남편이랑 같이 육회에 청하를 먹는 이유 역시 조금도 다르지 않다. 같이 먹으면 더 맛있으니까. 같이 마시면 더 시원하니까. 그러니까 한 잔 더 따라 주세요.       







   

  학창 시절에 내가 배운 교과서에서는 ‘한국인의 정’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나왔다. 당시 흔히 말하는 ‘중2병’에 걸려 있던 나는 그 단어를 볼 때마다 찬웃음을 지었다. 요즘 세상에 정이 어디 있어? 자기 가족이나 친한 친구들하고나 잘 지내지……. 입시 때문에 바쁜 고등학교 생활에서도, 진짜 친구를 사귀기는 어려웠던 대학교 생활에서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생각이 비슷했던 것인지, 텔레비전이나 책에서 귀찮도록 자주 보였던 정이라는 단어는 시간이 지날수록 얼굴 보기가 힘들어졌다. 그래, 정이 진짜로 사라진 세상이 맞는 거야. 이제야 모두들 인정하는군. 이런 생각을 하며 슬프게 의기양양해지곤 했다.     




  잊기도 하고 잃기도 했던 정을 다시 만난 곳은 꽤 의외의 장소였다. 수업 중간의 쉬는 시간 10분. 학생들의 질문 공격을 피해 한 층 위의 강사실로 피신을 왔다. 피곤함을 이겨 보려고 열심히 눈을 비비고 있던 중, 옆자리 동료 선생님께서 내 책상에 뭘 하나 올려놓으셨다. 빨간 포장지에 싸인 작은 초콜릿이었다.



  “선생님, 우리 이거 같이 나눠 먹어요.”



  초콜릿이 여러 개가 든 것도 아니고 딱 한 개만 있는데. 그마저도 그리 넉넉한 크기가 아닌데. 왠지 벼룩의 간을 빼 먹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두 손을 마구 내저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이거 별로 크지도 않은데 저까지 어떻게 먹어요. 선생님 혼자 드세요. 옆자리 선생님께서는 그저 아담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에이, 선생님하고 같이 먹으면 더 맛있잖아요.”



  수업이 다시 시작되기 전까지 달콤한 초콜릿을 혀로 굴리면서, 정을 점점 찾아볼 수 없게 되었던 지난 세월들을 돌아보았다. 어쩌면 포장지에 꽁꽁 싸여 있던 건 내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학생들 중에서도 요리하는 걸 좋아하는 아이들이 있다. 그런 친구들은 한 학기에 한두 번씩은 본인이 한 요리를 교실에 싸서 들고 온다. 보통 자신의 고향 요리를 해 오는데 놀랍도록 맛있을 때도 있지만 좀 낯선 맛이 나서 다른 친구들이 먹기를 꺼릴 때도 있다. 그럴 땐 학생이 혹시나 상처를 받지는 않을까 걱정되어 꾸역꾸역 내가 열심히 먹어 준다. 그럼 선생님 입맛에 딱 맞는다고 생각하는 건지, 아주 신나서는 남은 음식을 다 나보고 가져가도 된다고 호의를 베푼다. 하하, 이것 참……. 비슷한 일이 계속되니 이제는 음식을 좀 그만 싸 들고 왔으면 하는 마음으로, 말을 줄이고 또 줄이고 돌리고 또 돌려서 아주아주 완곡하게 물었다.



  “왜 교실에 자주 음식을 가지고 와요?”


  “친구하고 같이 먹으면 아주 맛있습니다!”



  확신을 담아 외치는 말에 처음에 학생에게 말을 건 의도가 뭐였는지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에라 모르겠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정말이지 행복하게 공감할 수밖에 없는 말인데 나보고 뭘 어떡하라고.  



   

  오빠, 오늘 저녁에는 신기한 외국 요리 먹어 보게 될 거야. 어…… 괜찮지? 가, 같이 먹으면 마, 맛있으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