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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리하는 김선생님 Mar 08. 2024

무섭지만 맛있어요

오늘 반찬은 한국어입니다   제8화  굴보쌈






[ 오늘의 반찬 ] 

A/V(형용사·동사)지만


 굴보쌈은 무섭지만 맛있습니다. 맛있지만 무섭습니다.     

 한국어는 어렵지만 재미있어요.     

 내 말도 맞지만 널 이해해.





  밥솥으로는 생각보다 다양한 요리를 할 수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일반적인 가정집에서 흔히 쓰는 전기압력밥솥 말이다. 사실 전기압력밥솥으로 할 수 있는 요리는 대부분 그냥 압력솥으로도 쉽게 할 수 있다. 나는 아직 압력솥에 밥을 지어본 적이 없고, 냄비밥이나 솥밥도 한번도 안 해봤다. 못 해본 게 아니라 안 해본 거라고 주장하고 싶다. 왜냐하면 시도해볼 생각조차 없었으니까.



  “저는 요리하는 걸 좋아해요.”



  늘 한 톨의 의심도 없이 이렇게 말하곤 했지만 이제 와 스스로를 돌아보면 ‘요리하다’ 앞에 몇 가지 수식어를 덧붙여야 오해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저는 ‘빠르고 쉽고 재미있게’ 요리하는 걸 좋아해요.” 이렇게.


 

  정도 이상으로 복잡하거나 정도 이상으로 오래 걸리는 요리는 피하게 된다. 여기에서 ‘정도 이상’이란 그날그날의 상황이나 기분에 따라 달라진다. 가족들의 생일처럼 정성을 다해 축하해 주고 싶은 날엔 전날 밤이나 당일 새벽부터 몇 시간에 걸쳐 준비하더라도 전혀 번거롭다는 기분이 들지 않는다. 방학이나 연휴처럼 종일 시간이 널널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런 특수한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는 매번 빠르고 쉽고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음식만 골라 만든다. 좀 복잡하고 귀찮은 음식일 때에는 최대한 조리 시간을 단축하고 가능한 한 덜 노력할 수 있는 방법을 골똘히 생각해 보는 편이다. 이유는 뭐, 그냥 귀찮기 때문이다.  



   

  부모님 댁에서 수육을 만들 때엔 항상 압력솥을 이용했다. 냄비로 수육을 삶으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 두꺼운 고기덩이가 속까지 잘 익었는지 자꾸만 젓가락으로 찔러 보며 확인해야만 한다. 다 익은 후에도 한참을 더 삶아야만 질기지 않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압력솥을 이용하면 훨씬 빠르고 간단하게 끝이 난다. 고기가 질기지 않을지 걱정할 필요도 없다.



  처음으로 부모님 곁을 떠나 따로 살게 된 신혼 초 겨울. 고마운 지인을 통해 아주 싱싱하고 품질이 좋은 통영산 생굴을 구할 수 있었다. 산지 직송으로 바로 배송된 생굴이라 서울의 마트에서 구할 수 있는 것과는 그 품질이 하늘과 땅 차이로 벌어진다.



  굴이 배송되는 날엔 무조건 굴보쌈을 먹어 줘야 한다. 오겹살 한 근을 덩이째로 사서 바삐 집에 걸어가는 길. 반찬가게에 들러 굴보쌈에 곁들여 먹을 무말랭이도 한 팩 샀다. 오늘은 한시라도 빨리 굴을 입에 넣어야 하기 때문에 무말랭이 따위를 만들어 줄 시간 여유가 없다. 양손에 비닐봉지를 하나씩 들고 또각 또각 구두굽 소리를 마구 울리며 바쁘게 걸어가고 있는데, 깨달아 버렸다. 우리 집엔 아직 압력솥이 없다는 것을.



  집에 도착하자마자 식탁 의자에 앉아 발가락을 까닥거리며 골똘히 생각한다. 압력솥 없이 수육 만드는 법. 냄비로 삶기엔 너무 오래 걸려서 싫다. 냄비는 바로 탈락. 큰 웍에다가 삶는 것도 냄비나 별반 다르지 않을 테니 웍도 탈락. 아이 진짜, 싱싱한 통영산 산지 직송 생굴이 냉장고에서 목이 빠져라 날 기다리고 있는데! 막 성질이 뻗쳐 오르려는 순간, 맞은편 벽면에 있는 하얀 전기밥솥과 눈이 마주쳤다. 가만 보자, 너 이름이 전기 ‘압력’ 밥‘솥’이었지? 오…….



  휴대폰으로 빠르게 검색한다. 전기압력밥솥 수육. 역시나 먼저 길을 닦아 놓으신 선배님들께서 전기압력밥솥으로 수육을 만드는 방법을 자세히도 적어 놓아 주셨다. 대다수가 물 없이 양파나 대파, 사과 등의 채소와 과일을 바닥에 깔고 찌는 ‘무수분 수육’을 만드는 레시피였는데, 우리 집엔 양파 혐오자인 내가 살고 있어 양파는 단 한 조각도 없으니 그냥 수분 가득 수육을 만들기로 했다.     








  먼저 대파를 두꺼운 줄기만 두 대 골라서 깨끗하게 씻고 숭덩숭덩 썰어 놓는다. 그리고 오겹살을 꺼낸다. 집에서 수육을 만들 땐 꼭 오겹살을 고집하고 있다. 껍데기가 있어 고기를 오래 삶아도 쉽게 무르지 않고 예쁘게 썰리기 때문이다. 보기에도 좋고 쫀득한 식감까지 얻을 수 있으니 오겹살을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도마 위에 오겹살 한 근을 통째로 올리고, 각 면에 얇게 된장을 발라 준다.



  밥솥의 내솥만 꺼내 된장을 발라 놓은 고기를 담는다. 고기가 살짝 잠길 정도로 물을 부은 후 거칠게 썰어 놓은 대파 줄기들을 모두 퐁당 빠뜨린다. 된장을 한 숟가락 뜬 다음, 마치 계란을 풀 때처럼 손목에 스냅을 주며 살살살 풀어낸다. 집에 설탕이 첨가되지 않은 스틱 커피가 있다면 하나 넣어 준다. 커피 가루도 돼지고기의 잡내를 잡는 데 좋은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밥솥 뚜껑을 닫고 상단의 레버를 돌려 고압력 모드로 진입한다. 고압 찜 메뉴를 선택하니 기본 시간이 20분으로 설정되어 있다. 아무리 그래도 20분만으로는 조금 부족할 듯하니 40분 동안 찌기로 결정했다. 취사 시작. 세상에 이렇게 편할 수가.



  남은 건 기다리는 일뿐이다. 수육이 완성되기 10분 전부터 생굴과 채소를 준비한다. 생굴을 먹고 싶은 만큼 꺼내 볼에 담는다. 통영에서 막 올라온 생굴. 성인 남성의 엄지손가락보다도 크고 통통하게 살이 차올라서 탐스럽기 그지없다. 흐르는 물에 여러 번 헹궈 준다. 굴에는 생각보다 불순물이 많이 껴 있어서 먹기 전에 잘 씻어 줘야 한다. 까만 불순물이 섞여 나오지 않을 때까지 굴을 씻고 또 씻는 동안 콧속으로 바다가 들어온다. 바다 내음을 맡고 있으니 찰랑찰랑 굴을 헹구는 소리가 꼭 파도 소리처럼 들려오기 시작한다.



  다 씻은 굴은 체에 밭쳐 물기를 뺀다. 그리고 굴보쌈에 곁들일 야채를 씻는다. 남편이 좋아하는 청상추와 내가 좋아하는 알배기배추를 낸다. 마지막으로는 굴을 찍어 먹을 소스를 준비할 차례이다. 초고추장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도 생굴만큼은 꼭 초고추장에 찍어 먹곤 한다. 고추장을 크게 한 숟가락 떠서 식초와 함께 잘 섞어 소스볼에 담는다. 초고추장의 물 먹은 빨간 빛깔 위로 통깨를 조금 뿌리면서 곧이어 시작될 만찬을 기대한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딱 맞추어 밥솥에서도 취사가 끝났다는 알림이 들린다. 한껏 뿌듯해 하는 음성으로 제 할 일을 맛있게 잘 끝마쳤다고 외치는 걸 듣고 있자면 절로 웃음이 난다. 그래, 오늘의 요리는 네가 다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밥솥에게 뒷통수가 있다면 잘했다고 톡톡 쓰다듬어 주고 싶은 심정이다. 밥솥 뚜껑을 열자마자 짭조름한 향이 나는 수증기가 화악 피어오른다. 집게로 고기를 꺼내 열기를 잠시 식힌다.



  크고 넓은 접시를 꺼낸다. 상추를 몇 장 깔고 그 위에 생굴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다. 무말랭이도 함께 낸다. 그쯤 되면 고기가 적당히 식어 썰기 알맞은 온도가 되었을 것이다. 너무 얇지도 않고 너무 두껍지도 않은 크기로 썬다. 고압력으로 푹 찐 덕분에 너무도 부드럽게 칼날이 고깃결을 따라 내려간다. 칼등을 타고 손바닥과 손등까지 전해지는 부드럽고 다정한 온기. 먹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이건 무조건 맛있다. 기쁜 마음으로 고기를 접시에 담고 남편을 부른다.     




  접시 하나에 푸짐하게 모인 사이 좋은 세 친구, 수육, 생굴, 무말랭이. 된장 양념을 뜨겁게 먹은 고기가 옅은 갈색빛을 띠고 있다. 오겹살의 껍데기 부분은 짙은 갈색으로 현현히 빛나며 오감이 기대감으로 떨리게 한다. 육즙을 촉촉하게 머금고 있어 손으로 만지면 그 여유로운 물기가 그대로 느껴질 것만 같다. 그리고 그 위에 자리한 오늘의 주인공, 통영 생굴. 불순물을 다 걷어 내어 이제는 뽀얀 살결을 자랑한다. 제일 통통한 녀석으로 얼른 하나 집어 입에 쏙 넣는다. 아주 신선한 생굴에서는 우유처럼 고소한 맛이 난다.



  알배기배추를 한 장 손에 들고 고기와 굴, 무말랭이를 차례차례 얹는다. 입을 크게 벌리고 베어 먹는다. 와삭, 하는 소리와 함께 베어지는 배춧잎. 입안에서 차가움과 따뜻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배춧잎 너머로 뜨겁게 찐 오겹살이 따스히 다가온다. 중심에 놓인 오겹살은 가지각색의 맛과 온도를 뜨거운 열정으로 진두지휘하는 지휘자 같다. 차가운 생굴이 제 개성을 뽐내며 여기저기를 매끄럽게 넘나든다. 입을 다물고 코로만 나지막하게 숨을 내쉬면 파도 소리가 삽시간에 머릿속까지 퍼진다. 그렇게 감탄에 취해 있다가 어금니에서 오도독, 부스러지는 무말랭이 덕분에 다시금 접시로 시선을 두며 무대 전체를 한눈에 보는 기회를 얻는다.



  아……. 다시 보니 하나 빠진 게 있다.



  “술 한잔 마시면 딱이겠는데.”



  내뱉으며 남편의 눈치를 살짝 본다. 남편의 표정을 보니 그러면 그렇지, 올 게 왔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반주를 즐기는 나와는 달리 남편은 술을 한 잔도 마시지 않는다. 나가서 한 병 사올까 고민되기는 하지만 날이 너무 추워서 쉽사리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사다 줄까?”


  “아니야. 술이랑 먹으면 더 맛있겠지만 술 없이 먹어도 맛있으니까, 뭐.”



  재미있다는 듯 날 살피는 남편의 눈동자. 이어진 남편의 말에 상황이 깔끔하게 정리된다.



  “술 없이 먹어도 맛있지만 술이랑 먹으면 더 맛있겠지?”



  남편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외투를 꺼내입으러 갔다. 입꼬리를 싸악 말아올리며 오늘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다시 배춧잎 위로 모은다. 정말, 결혼하길 잘했다.








  “떡볶이가 어때요?”


  “맵지만 맛있어요.”


  “시장과 백화점은 어떻게 달라요?”


  “시장은 싸지만 백화점은 비싸요.”


  “퀴즈가 어땠어요?”


  “열심히 공부했지만 어려웠어요.”



  문장 만들기 연습이 이어질수록 학생들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진다. ‘A/V(형용사·동사)지만’은 그동안 공부를 열심히 해왔던 학생이든 공부에서 손을 놓은 학생이든 그리 어렵지 않게 배우는 표현이다. 모두가 눈이 반짝반짝 빛났던 학기 초반에 ‘하지만’을 확실히 익혀 놓은 덕분일 것이다. 학기 중반인 지금은 거의 한국 사람처럼 익숙하게 잘 사용하고 있는 ‘하지만’과 의미가 똑같고 생김새도 비슷하기에 모두들 마음의 장벽 없이 잘 받아들이고 연습한다. 그렇지만 더 어렵거나 새로운 내용이 없다는 것은 지루해지기 쉽다는 의미도 된다. 벌써 몇몇은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고 있다.



  이번에는 PPT 화면에 단어들만 띄워놓고 학생들이 ‘-지만’을 사용해 하나의 문장을 만드는 연습이다. 화면에 크게 뜬 단어들을 음성으로 읽어준다.



  “저/어제/아팠다/학교에 왔다. 어떻게 말해요?”


  “저는 어제 아팠지만 학교에 왔어요.”


  “토끼/빠르다/거북이/느리다. 뭐예요?”


  “토끼는 빠르지만 거북이는 느려요.”


  “한국어/어렵다/재미있다. 어떻게 말해요?”


  “한국어는 어렵지만 재미있어요.”



  갑자기 오른편에서 낮게 실소를 터뜨리는 소리가 들린다. 아제르바이잔에서 온 남학생이다. 공부 의욕이 크게 있는 학생도 아니었지만 나이가 어느 정도 있어서인지 수업 태도가 특별히 안 좋았던 적도 없는데. 무슨 일인가 궁금해져 묻는다.



  “루스 씨, 왜요? 무슨 일이 있어요?”


  “괜찮아요. 어렵지만 재미있어요. 맞아요, 맞아요.”



  괜찮다는 말과는 달리 말을 마치고서 책상에 엎드려 버린다. 으이그, 정말. 뻔하다 뻔해. 중간시험이 얼마 안 남은 시점에 그동안 공부 하나도 안 했으니 할 게 산더미인데 하기는 싫으니 머리가 아프겠지. 죄다 어렵게 느껴지는 걸 보면 시험이야 어차피 망칠 게 뻔하니까 그냥 다 포기하고 집에 가고 싶을 텐데. 그 와중에 연습하는 문장이 하필 ‘한국어는 어렵지만 재미있어요’라니! 본인도 기가 막힐 노릇인 거다.



  “루스 씨.”


  “…….”


  “루스 씨.”



  이름을 한 번 더 부르니 그제야 고개를 든다. 이제는 선생님까지 성가시다는 눈빛이다. 나는 그냥 한번 씩 웃어보이면서 질문한다.



  “어렵지만 재미있어요? 아니에요. 한국어는 재미있지만 어려워요. 맞아요?”



  교실 여기저기에서 학생들의 작은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맞아요, 진짜 맞아요. 세차게 고개를 아래위로 끄덕이는 아이들도 보인다. 루스 씨도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로 다시 나와 눈을 맞춘다. 사슴처럼 큰 눈동자가 나에게 와 멈춘다. 눈을 몇 번인가 깜박이는데, 그 속에 조금 전과는 달리 따뜻함만이 가득 차 있다.     



  루스 씨는 더 이상 성가시다는 눈빛을 보내지도, 실소를 터뜨리지도 않았지만 결국 시험을 망쳐 1급 수업을 한번 더 듣게 되었다. 벌써 두 번째 유급을 하는 거였기 때문에 많이 낙담하지는 않았을까 걱정하며 맞은 학기 마지막 날. 내가 미리 준비해 온, 열몇 개의 말풍선들이 귀엽게 모여 있는 롤링페이퍼에 모든 친구들이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을 써 보기로 했다. 그날 루스 씨는 나에게 딱 한 문장을 남겼다. 문장이 묘하게 어색한 걸 보면 그마저도 번역기를 돌려서 베낀 문장이 분명했다. 1급의 마지막 날까지도 번역기로 문장을 쓰다니, 으이그 정말. 그래도 그 한 문장은 이제껏 학생들에게 들은 그 어떤 말보다도 나의 마음을 울리는 최고의 찬사였다.     




  ‘모든 학생이 당신 같은 선생님을 만날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비결이 뭐냐고요? 어, 그냥…… 앞뒤를 한번 바꿔봤을 뿐이랍니다.        







  

  ‘-지만’은 참 재미있는 친구다. 별 새로울 것도 없고 뻔하고 단조로운 이야기만 할 줄 알았던 녀석인데, 앞뒤를 뒤집으면 의미가 묘하게 달라진다. 야식이 땡기는 야심한 밤에 “배고프지만 자야 해.”와 “자야 하지만 배고파.”는 완전히 다른 결과를 동반할 것이다. “널 이해하지만 내 말도 맞아.”라고 말하면 싸움의 도화선을 당기게 되고, “내 말도 맞지만 널 이해해.”라고 말하면 조금 후엔 같이 맛있는 간식 먹고 있을 거다. ‘-지만’ 하나만 잘 공부해 둬도 어디에서 처세술 못 익혔다는 소리는 안 듣지 않을까? 궁금하시면 한번 앞뒤 바꿔서 말해 보세요. 지만이는 단순하지만 대단한 친구랍니다. 대단하지만 단순한 친구 아니고요.     



  나는 굴을 정말 좋아하지만 생각만큼 자주 먹지는 않는다. 굴을 맛있게 많이 먹었지만 다음 날에 배탈로 고생한 적이 꽤 있어서이다. 그래서인지 내게 굴은 맛있지만 좀 무서운 음식이다. 추운 바람이 쌩쌩 부는 날에 엄마한테 굴보쌈 먹자고 조르면 엄마는 바이러스 걱정을 하시며 잔뜩 신난 딸내미를 진정시키곤 하셨다. 그런 날엔 이렇게 말했다. “맞아. 굴이 맛있지만 좀 무섭지.”



  나는 굴을 생각만큼 자주 먹지는 않지만 정말 좋아한다. 다음 날에 배탈로 고생한 적이 꽤 있지만 늘 굴을 맛있게 먹어와서이다. 그래서인지 내게 굴은 좀 무섭지만 맛있는 음식이다. 찬바람에 얼굴이 빨개지는 날에 친구가 굴보쌈 먹자고 조르면 이렇게 말하려 한다. “그래. 굴이 좀 무섭지만 맛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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