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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리하는 김선생님 Mar 05. 2024

한국식 스튜 같아요

오늘 반찬은 한국어입니다   제6화  소고기미역국






[ 오늘의 반찬 ] 

N(명사) 같다


 미역국에 소고기가 아주 많아요. 한국식 스튜 같아요.     

 아빠가 미역국을 만들었어요. 아빠는 할머니 같았어요.     

 우리 반 선생님이 재미있습니다. 선생님은 언니 같습니다.





  2주 전에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이 문장을 써 놓고 한동안 멍하니 화면의 흰 바탕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날의 기억이 모두 사라지기 전에 꼭 글로 붙들어 놓고 싶은데, 할머니에 대해서 글을 쓰려면 시간이 조금은 더 필요할 것 같다.


  3일장이 끝나고 사흘 후, 남편의 생일이었다. 가는 사람이 있으면 오는 사람도 있는 법이라는, 사는 동안 종종 들어온 옛말의 의미를 이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좋았고, 슬펐다.     








  부부가 된 이래로 함께 맞는 세 번째 생일. 결혼 후 맞이한 첫 생일에는 소고기미역국과 소불고기, 보리굴비로 생일상을 직접 차려 주었다. 두 번째 생일에는 함께 괌 여행을 떠나 있었다. 괌 공항에서 택시를 잡아 호텔로 가던 길에, 창밖을 보던 남편이 가 보고 싶다고 했던 작은 레스토랑이 있었다. 그곳에서 이국적인 음식을 먹으며 재미있게 생일을 축하했다. 그리고 찾아온 이번 생일. 장례를 치르는 동안 나보다도 남편이 더 큰 고생을 해주었기에, 멋진 레스토랑에서 평상시엔 쉽게 먹지 못하는 독특한 음식을 대접하고 싶었다. 하지만 남편은 이번에는 특별히 먹고 싶은 음식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집에서 직접 생일상을 차려 주기로 했다. 축하하는 마음 이상으로 고마움을 깊이깊이 전하고 싶은데. 표현이 서투른 나는 이럴 때 요리 외엔 달리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하겠다.      



  한국인의 생일상에서 절대로 빠지지 않는 메뉴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모두가 미역국을 첫째로 꼽을 것이다. 미역국은 한국의 전통적인 산후조리 식품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산모들은 출산 직후 미역국을 먹으며 몸을 회복했다고 한다. 그래서 미역국은 ‘태어난 날’을 상징하는 음식이 되었다. 엄마가 아닌 아이 쪽이 제 생일마다 미역국을 챙겨 먹는다는 게 좀 웃기지만, 나도 매년 내 생일이면 미역국을 후루룩 짭짭 잘만 먹어왔기에 차마 웃을 수가 없다.



  미역국은 대부분 소고기를 넣어 만들지만 소고기가 아닌 다른 재료도 저마다의 매력이 넘친다. 나는 생굴을 넣은 굴미역국을 좋아한다. 집에 별다른 재료가 없을 땐 참치캔 하나를 뜯어 넣어 미역국을 끓이기도 하는데, 참치미역국도 아주 고소하고 맛있다. 그래도 평생 미역국을 한 종류만 먹어야 한다면 주저 없이 소고기미역국을 고를 것이다.









  생일 당일, 곤히 잠든 남편을 두고 조용히, 조심히 일어났다. 창밖이 어두컴컴했다. 해도 뜨지 않은 새벽이었다. 출근을 하지 않는 방학이었기에 망정이지, 학기 중이었다면 평일 새벽에 일어나 밥을 차리는 건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다. 겨울 방학 기간에 태어난 이 사람은 참 복도 많지. 저녁상엔 소갈비찜과 잡채 등 나름대로 화려한 음식들이 등장할 예정이지만, 아침상의 메인 메뉴는 미역국 하나뿐이다. 아침부터 소갈비찜, 잡채, 미역국 한 상을 차려준다고 하니 남편이 놀라며 손을 내저었다. 아침 일찍부터 뭘 많이 먹으면 체한다나. 튼튼한 위장을 가진 나 같은 사람은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이 사람은 참 복도 없지.     



  가장 먼저 할 일은 미역을 불리는 작업이다. 시중에서 파는 자른 미역 제품을 사용하면 미역을 미리 손질할 필요도 없고 물에 불리는 시간도 훨씬 단축된다. 요리용 볼에 자른 미역을 넣는다. 미역은 물을 먹으면 양이 무지막지하게 늘어나니, 잘 모르겠으면 ‘애걔, 이건 진짜 너무 적은데?’ 싶을 때 멈추면 된다. 다 불린 후에도 양이 적은 것 같으면 그때 더 추가하면 그만이니까. 그편이 훨씬 안전하다. 마른 미역은 생각보다 적게 넣고, 물은 생각보다 많이 넣어 불려야 한다. 처음엔 말라 비틀어진 파래 반찬처럼 보이던 미역을 불린 지 10분쯤 지나면 제법 미역 같은 모양새를 갖춘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전날 사둔 국거리용 한우 양지를 꺼낸다. 소 양지는 지방과 살코기가 적절히 섞인 부위라 국 요리를 하면 매우 부드럽고 감칠맛이 넘친다. 이미 한입 크기로 썰려 있어 특별히 더 손을 댈 필요가 없다. 미역국 2인분 기준으로 양지 300그램을 사용한다. 고기를 너무 많이 넣는 거 아니냐고? 이게 핵심인데 걱정도 팔자셔.



  도마 위에 소고기를 올리고, 서로 뭉친 조각들은 흩뜨려 놓는다. 키친타올로 가볍게 누르며 표면의 핏물을 걷어낸다. 국거리용 고기도 오랜 시간 동안 완전히 핏물을 빼는 사람도 있지만, 핏물을 과하게 빼면 득보다는 실이 많다고 생각한다. 핏물을 뺄수록 고기가 담백해지는 것은 맞으나, 그만큼 고기의 육향과 풍미도 함께 빠져나간다고 보면 된다. 소금과 후추로 간단히 밑간을 해도 괜찮고, 국을 푹 끓일 것이니 굳이 미리 간을 해놓지 않더라도 충분히 맛이 난다.



  냄비에 참기름을 조금 두르고 고기를 볶는다. 참기름은 고온에서 가열하면 유해물질이 나오므로 불을 너무 세게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런데 사실 그만큼 불을 세게 하면 참기름에서 나쁜 물질이 나오기도 전에 고기가 먼저 다 타버릴 것이니 별로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참기름에 소고기를 볶는 동안 고소한 냄새가 온 집에 퍼진다. 가족들의 생일날마다 우리 집엔 새벽부터 고소한 냄새가 가득했다. 열심히 꿈을 꾸며 달게 자다가도 그 냄새만 맡으면 슬쩍 눈이 뜨이곤 했다. 아, 엄마가 미역국을 만드시나 보다. 기분 좋게 웃으며 다시 잠을 청했다. 참기름에 소고기를 볶는 냄새는 나에겐 엄마의 냄새다. 해마다 엄마가 정성 들여 끓여 주신 미역국을 먹으며 살던 내가, 이제는 나의 작은 가정을 위해 참기름에 소고기를 볶고 있다. 다른 식구는 아무도 눈을 뜨지 않은 새벽녘에 홀로 일어나 참기름에 소고기를 볶는 나는, 엄마 같다.     




  고기가 반 정도 익었을 때 불려 놓은 미역과 다진마늘 한 스푼을 추가한다. 그리고 다시 볶기 시작한다. 미역이 탈 것 같으면 물을 아주 살짝 넣어주는 것이 좋다. 5분쯤 볶으면 미역이 점차 밝은 초록색을 띄기 시작한다. 이때가 바로 물을 넣을 시점이다.



  냄비에 물을 650밀리리터 받는다. 소고기미역국은 오래 끓일수록 맛이 깊어지니 처음부터 물을 넉넉히 받아야 한다. 강불로 먼저 시작했다가, 물이 팔팔 끓으면 중불로 줄인다. 어느 정도 미역국의 형태를 띠는구나 싶으면 국간장을 한 스푼 넣는다. 5분쯤 더 끓인 다음 간을 본다. 심하게 싱겁다 싶다면 소금을 살짝 추가한다. 국간장이 아닌 소금이다. 여기에서 국간장을 또 넣었다간 미역국 색이 너무 어두워져 보기 안 좋을 수 있으므로. 조금 싱겁다고 느껴질 때가 딱 좋다. 불을 약불로 줄이고, 냄비 뚜껑을 닫은 채 천천히 오랫동안 푹 끓인다. 중간중간 냄비 뚜껑을 열고 한번씩 간을 보다가 일순간 와, 됐다!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올 것이다. 그러면 성공이다.     









  소고기미역국은 꼭 갈색 도자기 그릇에 내게 된다. 굴미역국이나 참치미역국은 흰색이나 아이보리색 국그릇도 잘 어울리는데, 유독 소고기미역국은 갈색 도자기 그릇에 담아야 제맛이 나는 것 같다. 소고기 색과 비슷한 빛깔이어서일까.



  숟가락 위에 미역과 고기를 올리고, 국물에 푹 적신다. 그대로 한입에 먹는다. 진하고 기름지지만 전혀 느끼하게 느껴지지 않는 건 아마 미역이라는 재료가 갖는 힘일 것이다. 특별한 조미료 하나 넣지 않았는데 입안 여기저기에서 경쟁하듯 감칠맛이 느껴진다. 과하다 싶게 듬뿍 넣은 소 양지의 힘이다.



  “이거 무슨, 고기 반 미역 반이야.”



  남편의 말마따나 숟가락을 들어올릴 때마다 소고기가 두세 덩이씩 같이 자리한다. 국이라기엔 국물의 비율이 적고 찌개라고 하기에도 건더기가 많은 느낌이다. 이건 꼭…… 스튜 같다. 재료가 다 미역국 재료니까 ‘한국식 소고기 미역 스튜’라고 하자.



  예전에 어느 요리 블로그에서 미역국에 소고기를 너무 많이 넣어 실패했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따로 댓글을 달지는 않았지만, 그분의 미역국이 망한 건 절대로 소고기 때문은 아니라고 심심한 반론을 펼치고 싶다. 나에겐 꼭 시험지의 줄 간격이 너무 완벽하게 균일해서 시험을 망쳤다는 것처럼 들린다. 분명히 소고기 때문이 아닐 거라고요……. 우리 애 잘못이 아니거든요……. 진짜면 뭐 어쩔 수 없지만요.     




  소고기미역국은 우리 아빠가 유일하게 만들 줄 아는 음식이다. 평생 요리를 하지 않던 아빠가, 딸자식 다 키워놓은 어느 해, 아내의 생일에 미역국을 끓여 주겠다 선언하셨다. 엄마도 나도 동생들도 모두 아빠의 노력은 가상하다 여겼지만, 맛에 대해서는 전혀 기대가 되지 않았다. 아빠는 엄마 생신 전날 저녁에 인터넷을 뒤져 소고기미역국 레시피 하나를 찾으셨고, 정갈하게 프린트해서 냉장고에 자석으로 붙여 두셨다.



  다음 날 새벽에 우리가 고소한 냄새로 깨지 않은 걸 보면 아빠의 요리 솜씨는 어쩔 수 없이 엄마보다는 몇 수 아래였나 보다. 그래도 아빠의 미역국은 꽤 성공적이었다. 엄마 미역국처럼 아주 맛깔나지는 않았지만, 딱히 흠을 잡을 곳도 없는 좋은 맛이었다. 요리를 하고 미역국을 먹이는 아빠는 좀 엄마 같았고, 할머니 같았다.          









  한국어 교재는 보통 단원마다 두세 개의 문법 표현을 공부하도록 짜여 있다. 문법 표현은 해당 과의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기에 교재 지면도 꽤 많이 할애된다. 그렇지만 ‘N(명사) 같다’는 너무 쉬워서 문법 표현의 하나로 학습하기는커녕, 대화문을 공부할 때 어휘 중 하나로 슥 지나가듯 제시된다. 명사와만 결합하고 받침 유무에 따른 차이도 없는 쉬운 표현이니 그렇게만 짧게 공부해도 모두 곧잘 사용한다.



  “몽나 언니는 정말 엄마 같아요.”



  외국인 학생들은 학급에서 유독 마음이 넓고 다른 친구들을 잘 도와주는 친구를 보고 ‘엄마 같다’고 표현한다. 그런 학생이 남학생일 때에도 ‘아빠 같다’고는 말하지 않고 똑같이 ‘엄마 같다’고 한다. 엄마의 이미지에는 국경 간의 차이가 없는 모양이다.



  나는 학생들로부터 아직까지 한번도 ‘엄마 같다’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다. 우리 반 학생들은 나에게 항상 ‘언니 같다’거나 ‘누나 같다’고 말하며 키득거린다. 엄마 같은 학생보다 내가 더 나이도 많은데. 같이 있으면 즐겁고 재미있지만 포근하지는 않은가 보지? 눈꼬리와 마음이 함께 샐쭉하게 휘어진다. 그래도 뭐, 생각해 보니 괜찮은 것 같기도 하다. 동시에 목표가 하나 생겼다. 나중에 아줌마 선생님, 할머니 선생님이 돼도 언제나 ‘언니 같은’ 선생님으로 남고 싶다. 어린 친구들에게 진짜로 아줌마 같은 선생님, 할머니 같은 선생님이 되지 않으려면, 빠르게 변화하는 학생들의 취향과 관심사를 놓치지 않도록 코피 터지게 노력해야 할 것이다. 갑자기 마음이 의지로 불타오른다.          










  아빠는 아빠의 엄마를 잃었다. 아빠는 어디에서 ‘엄마 같은’ 이미지를 찾게 될까? 할머니의 영정사진을 앞에 두고 향을 피우던 아빠의 얼굴은 꼭 할머니 같았다. 앞으로 아빠가 요리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할머니의 얼굴을 함께 떠올리게 될 것 같다. 아빠가 요리를 자주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남편은 어느새 흰 쌀밥과 함께 미역국 한 그릇을 다 비웠다. 나는 그날 ‘너무 맛있다’와 ‘진짜 고마워’라는 말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도 없이 많이 들었다. 축하해주려는 마음은 제대로 잘 전달된 것 같은데, 미역국 밑바닥에 푹 끓여 가라앉아 있을, 고맙고 또 고마운 내 마음도 그만큼 잘 전해졌을지.



  참기름에 소고기를 볶을 때 나는 고소한 냄새는 내겐 정말 엄마 같다. 생일날 새벽, 남편도 그 냄새를 맡았을까?     




  나는 음식 냄새로 기억되고 싶다. 어떤 냄새가 내 얼굴을 떠올리게 만들어 줄 것인지 아직은 전혀 감이 안 잡힌다. 아마도 오래오래 시간이 지나야 할 것이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겠지만, 침이 맛깔나게 고이게 하는 내음이 날 때 나를 떠올렸으면 좋겠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강해지고 주의를 기울일수록 짙어지는 그런 내음. 무언가를 오래도록 요리할 때 나는, 믿음직하면서도 고소하고 기대가 되는 그런 내음. 어느 날 어디에선가 그런 내음이 문득 풍겨오면 씩 웃으며 ‘아내 같다’고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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