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요리하는 김선생님 Apr 11. 2024

저는 요리하는 한국어 선생님입니다

오늘 반찬은 한국어입니다   프롤로그



  여러분, 안녕하세요?     



  어떤 말로 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까 잠시 고민했는데요. 저에게 가장 익숙한 인사말로 문을 여는 것이 제일 좋을 것 같았답니다.     



  저는 한국어 선생님입니다. 날마다 같은 말로 인사하며 하루를 시작해요. 한국어 수업을 한 지도 벌써 6년을 꼬박 채웠으니 똑같은 인사말을 수천 번은 했겠네요. 매 학기 첫날에는 새로운 학생들을 만난다는 생각에 설레면서도 무척 긴장이 되곤 합니다. 꼭 지금의 제 마음처럼요. 교실 문을 열 때면 가슴이 마구 쿵쾅거려 심호흡을 하기도 해요. 그러면 얼른 외치는 거예요. 수없이 반복해서 너무나 익숙한 그 말을요. 밝게 웃으며 “여러분,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면 긴장으로 팔딱팔딱 뛰던 마음이 마법처럼 싹 가라앉거든요.     



  저는 요리하는 한국어 선생님입니다. 수업이 끝나면 오늘 뭘 해 먹을까부터 고민해요. 퇴근길 지하철에 앉아 있는 제 머릿속에는 토마토나 닭고기, 배추 같은 식재료들이 둥둥 떠다닙니다. 지하철을 가득 메운 인파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와중에 휴대폰으로 레시피를 찾아보기도 하고, 새로운 레시피를 혼자 골똘히 연구하기도 한답니다. 그러다가 집에 도착해요. 바쁘게 손을 움직이다 보면 어느 순간, 지하철 천장에 떠다니던 재료들이 꽤 먹음직한 음식으로 우리 집 식탁에 두둥 등장합니다. 첫술을 뜰 때엔 설레면서도 무척 긴장이 되는데요. 그러면 그냥 얼른 한입 맛보는 거예요. 혓등과 목구멍을 타고 그날의 요리가 쏙 넘어가면 하루 동안 쌓인 피로가 싹 날아가거든요. 꼭 마법처럼요.          








  여러분은 뭘 사랑하세요?     



  저는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을 참 사랑합니다. 그리고 요리하는 것도 정말 사랑해요. 이 말을 하면서 스스로가 좀 기특해졌습니다. 정말 오랜 시간 동안 그 누구에게도 무엇에도 진심으로 마음을 두지 않고 지냈기 때문이에요. 어렸을 때도 사랑이 많은 아이는 아니었습니다. 엄마는 그런 저를 보고 ‘차갑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저는 이런 제 성격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늘 강한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사랑하는 게 없는 만큼 약한 모습으로 상처받을 일도 없을 테니까요.     



  첫 직장을 구하기 위해 이력서를 쓰면서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라는 고사성어를 자랑스럽게 인용했습니다. 너무 가까이 지낼 수도 없고 너무 멀리해서도 안 되는 사이. 선생님이 학생을 대할 때 새겨야 할 가르침을 주는 좋은 말이지만, 사실 제 마음속에서는 아직 만나보지도 않은 학생들에게 던지는 선전포고와도 같았습니다. ‘그러니까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지 말 것.’ 고슴도치처럼 힘껏 가시를 세우면서요.



  그런 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난 6년 동안 학생들은 하루도 빠짐없이 저에게 먼저 다가오고 또 다가왔답니다. 처음에는 솔직히 당혹스럽고 좀 귀찮았지만 매일 반복되다 보니 그런 감정마저도 익숙해지더라고요. 그렇게 바라지도 않던 사랑을 날마다 받던 어느 날, 갑자기 저는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어요. 꼭 마법처럼요. 그러고 보니 외국인 학생들이 말하는 한국어는 가끔 좀 희한하게 들리는데 요상한 효과가 있더라고요. 그게 마법 주문이었을까요. 궁금하시면 그 이야기는 앞으로 차근차근 들려 드릴게요.     



  그런데요, 사랑할 수 있게 되니까 고민도 시작됐어요.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요. “사랑해”라고 말하거나 하트 모양 손짓을 하는 건 평생 해본 적이 없어서 좀 별로였어요. 그래서 한동안은 사랑하는 마음을 꾹꾹 누르고 집에서만 혼자 열어봤답니다. 그러다가 답답해져서 그냥 저에게 익숙한 방식을 택하기로 했어요. 요리 말이에요. 음식을 만드는 건 굳이 부끄러운 말을 하지 않아도 되니 좋더라고요. 완성된 요리를 먹는 사람들도 늘 행복하게 웃어주곤 했으니 전달 효과도 확실한 것 같고요.          








  부족한 저에게 사랑을 가르쳐 준 외국인 학생들과, 그럼에도 여전히 서투른 제가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인 요리. 그 둘을 한데 모아 열여섯 편의 이야기로 엮었습니다. 전혀 다른 둘이 마치 처음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싹 어우러지는 걸 보면 사랑스러운 것들은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이 있는 모양이에요.




  여러분은 한국어를 얼마나 알고 계시나요?



  한국 사람이라서 누구보다도 잘 아신다고요? 글쎄요. 과연 그럴까요. 그럼 한국어로 이야기를 하면서 무슨 감정을 느끼시나요? 매일 하는 말이라서 별 감흥이 없으시다고요? 적어도 예전의 저는 그랬답니다.



  혹시 모르죠, 이 글에 나오는 학생들의 요상한 주문 같은 한국어를 함께 되뇌다 보면 여러분의 오늘도 함께 사랑스러워질지. 진짜 마법처럼요.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 같이 닭한마리를 먹을까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