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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국요리치료연구소 May 24. 2016

카이로스 시간

- 특수교육에서 시간이란?

  

우리 아이들에게 마음이 있을까?     




그 옛날에는.........

무조건 가르쳐 주어야 하고 안되면 되게 하라는

나의 신념을 굳게 믿으며 아집과 고집으로 무자비하게 밀고 당긴 기억도 있다.


정말 우리 아이들에게 마음이 있을까? 아니

생각이라는 것을 하고 살아 갈까? 라고 자신에게 엄청 묻고 대답하는 시간들을 적지 않게 보냈다.  


  

“어른의 시간 속에서 아이들을 살게 한 일”    



이 일..


우리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이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해야 되는 것을 꼭 하게 하는 것. 그들이 나의 시간 안에 들어오게 하는 일이 최선의 길이 아님을 알았다.

어른의 눈으로 ..  어른의 시간안으로 들어 와야 하는 우리 아이들,

얼마나 답답 했을까? 라고 느끼고 반성한다.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모든 표현에 오감각을 쭈빗 세우고 함께 숨을 쉬는 호흡의 패턴을 알아 가기 시작했다.

온몸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이 아이들을 철처히 몰라라 하고 등을 보이고 있었던 일.

    

온 마음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온 몸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그 순간

순간이 바로 우리 아이들임을 깨닫는 늦깍이 어른이 아이들과 성장하고 있음을 알아 차렸다.

알아차리고 비움은 내가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 속에 새로움을 받아 들일 수 있는


여유, 여백.

  

      

우리 아이들에게 생각은 있을까우리 아이들에게 마음은 있을까?  


  

선택은 있다 없다.


부모, 보호자나 활동보조에 의해 이끌려 오다시피 한다. 보호자가 부모 일 경우와 활동보조일 경우는 확연 다른 모습 속에서 장애인의 시간을 생각하게 된다. 활동보조는 부모보다 계산적인 시간의 지배를 받는다. 몇 시에 도착해야 되고 몇 시에 다른 곳으로 이동을 시켜야 하는 철저히 계획된 사간 속에서 우리 아이들의 생각과 마음을 배제 된다.


부모에 의해 보호될 때는 반반의 시간, 계획된 시간과 의미의 시간이 나누어진다, 그러나

그 의미의 시간은 아이들의 생각과 마음을 읽어 주는 의미있는 시간이 아니라 할 수 없는 일,

고집에 두 손 드는 일, 귀찮은 일이기 때문에 받아 들여지는 시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호자는 말한다, 재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이라고.....


       

부모의 생각이 우리아이의 생각일까우리아이의 행동이 부모의 생각일까?    


    

특수교육과 치료, 심리를 기반으로 요리라는 매체로 아이들과 호흡을 맞춘다.

어떤 요리를 만들것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아이들이 잘 만들어 되는 것도 아니다.


선생님의 화려한 요리솜씨도 중요하지 않다,


이것은 요리라는 매체가 아이들의 관심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아주 매력적이므로 활용 할뿐이기에  이들의 특성을 잘 파악해야 한다.


그들의 특성에 맞는 방법을 찾아 주는 일, 그리고 가르쳐 주는 과정이 엄청 난 인내가 필요하다.

요리라고 하니 모두가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 아이들이 뭘 만들어 낼 수 있단 말인가?‘

“우리 아이들이 잘 할 수 있는 요리가 뭐지?‘

“우리 아이들이 칼질이나, 불을 사용할 수 있나 위험하지?”

“선생님이 만들어 먹이는 거구나.” 등등     


오만가지 궁금증(의문)과 동행하면서 조금씩 서서히 서툴지만 하나씩 둘씩 과정을 거치면서 존재감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절대 만들어 주는 일은 없다. 한 만큼 의미(결과물)를 느끼게 해 주는 일”    


“지금, 현재 우리 아이들이 잘 할 수 있는 것, 만들 수 있는 요리는 없다. 한 단계씩 할 수 있도록 함께 걸어 가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 속에서 우리 아이들의 존재감과 살아 있음의 의미를 인식하는 일이다”    


존재감과 살아있음을 인식하는 일은 우리 아이들 뿐만아니라

함께 살아내야 하는 어른에게도 인식시켜 주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그들만의 방법으로 알아 갈 수 있도록, 그들만의 방법으로 표현 할 수 있도록  

“기 . 다 . 리 . 기” 



치료사,

바로 그(녀)의 삶에 의미가 존재해야 아이들의 시간에도 가치와 의미가 주어지지 않을까.

부모는 끝없는 바다 위를 걸어 거슬러 갈 수 있는,

교사는 아이들로 인한 가르침의 시간에 앞에 숙연해지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들(장애인) 만의 약속과 법칙에 우리가 끼여 든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일이다.   


 


카이로스의 시간이 특수교육 분야에 가능한가? 결론은


 가능하다. 









2016.05.24 권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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