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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국요리치료연구소 May 28. 2018

2. 우연히 ‘발견’한 요리치료

늘려있는 식재료

2. 우연히 ‘발견’한 요리치료

     

 내가 요리치료를 발견하게 된 건 결과적으로 자폐성향을 보인 큰 아이가 있었기에 가능했는지 모른다. 큰 아이를 조기교육 과정에서 특수교육과 관련된 것에 대해 알게 되었다. 발달이 늦은 아이를 키워 본 경험으로 장애아동의 마음과 행동을 잘 이해하고 대처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0연이 어머니, 이번 기회에 장애 분야로 공부해 보시는 게 어때요.   잘 하실 거라고 봐요.”

 

 큰 아이의 조기교육을 담당해 주신 원장님의 권유로 시작하게 된 보육교사 공부와 연이어 석사과정을 밟게 되었다. 아이를 키워 본 경험으로 장애 분야에 체계적으로 공부하라고 권유를 받았을 때, “내 아이 하나 키우는 것만으로도 엄청나다. 이젠 그런 일 안하고 싶다”고 두 번 생각할 틈도 없이 험한 소리를 내뱉었었다. 그렇게 피하고 싶었던 게 장애 친구들과 함께 하는 것이었다.    

 

 ‘아, 나 진짜 이 길을 가야 하는 거 아닌가?’


아이들의 특성 상 치료실 보다는 집이 더 안정적이고 호의적인 반응을 가지고 온다. 한 어머니의 부탁으로 집에서 치료실을 오픈하게 되었다. 나는 미술치료와 인지치료를 병행하며 아이의 수준을 기록하였다. 이 기록을 바탕으로 어머니에게 가정에서 지도하는 방법을 알려 주는 것이 핵심이 되었다. 다행히 아이들은 딱딱하고 생경한 교실 대신 익숙하고 친숙한 공간에서 거부반응 없이 잘 적응했다. 큰 소동 하나 없이, 착착 아이들과의 수업이 진행되어 갔다.  


 나는 미술치료와 인지치료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중증의 장애아동에게 미술치료라 하기에는 아이들의 반응이 워낙 미비하기에 놀이에 가까운 것이나 다름없었다. 만지기 싫어하는 아동은 만지게 하고 마음대로 칠하는 아동은 규칙, 즉 종이에 칠하게 하고 크레용, 색연필, 연필, 물감 등 재료를 바꿔서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하는 작업이었다. 치료사로서, 미술치료, 행동치료, 인지치료 등으로 아이들과 함께하지만 하나 같이 ‘치료’라는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아이들 입장에서는 딱딱하게 보이는, 하기 싫은 활동이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싫증을 내지 않고 교육과 치료를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해왔다. 이 아이들의 특수성을 무시하고, 어떤 치료가 좋다더라, 어떤 치료가 효과를 보인다더라 등 넘쳐나는 치료 프로그램으로 무분별하게 들이대는 게 마땅한가? 하는 문제의식이 싹트고 있었다. 실제로 만지기를 거부하는 아동에게는 손에 묻는 거, 누군가가 억지로 무엇을 하게 만드는 일, 작고 답답한 치료실에서의 교육을 거부하는 사례도 종종 있기도 했다.

 

 장애아동의 치료수업이 끝나고 어머니들과 자녀의 활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상담시간이었다. 남자 아이는 거실에 놓은 화초 앞에서 우두커니 서서 바라보다가 이파리를 뜯고 있었고, 여자 아이는 주방을 뒤지고 있었다. 여자 애가 눈에 들어왔다. 냉장고 문을 힘겹게 열더니, 안에 있던 달걀, 파, 우유, 식빵 등을 꺼내 놓았다. 그리곤 재미있다는 듯이 만지작거리더니 입에 넣었다 뺐다하는 동작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사실 특별한 게 아니었다. 종종 아이들이 내가 사다 놓은 식재료가 있는 주방에 가서, 이것저것 만지고 먹곤 했다. 그런데 이 날의 장면은 새롭게 와 닿았다.

    

 ‘아, 저거야. 억지로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꺼내고, 흥미롭게 다루잖아. 그래, 식재료를 활용해서 놀이 활동을 만들면 좋겠네.’


 아이들이 보여 준 한 컷에서 요리하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작은 방에서 이루어지는 치료교육이 아닌 거실과 주방으로 이어진 넓은 주방 식탁에 커피 믹스와 커피 잔 그리고 뜨거운 물을 준비하고, ‘엄마에게 커피 끓여 주자’하고 말을 건넸다. 아이들 반응이 너무나 좋았다. 중증의 장애아동에게 결과를 바라고 무엇을 시킨다는 자체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만, 아이들은 가르쳐준 대로 작은 손으로 주전자에 물을 받고 커피 잔에 커피 믹스의 봉지를 가위로 잘라서 커피 잔에 넣은 후, 뜨거운 물을 넣는 데 성공했다. 그리곤 ‘엄마, 엄마’하면서 커피 잔을 들고 거실에 있는 어머니에게 조심스레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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