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퇴직을 했다. 삼식이 시리즈와 젖은 낙엽 시리즈가 웃고 넘기는 남의 일이 아닌 내 일이 되어 버렸다. 남편이 퇴직을 했다는 것 뿐, 나는 여전히 아침달을 보고 출근하고 저녁별을 보고 퇴근을 한다. 아이들은 각자의 생활에서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이러한 현실이 결혼 30년을 맞이한 중년부부의 현실적인 생활을 말해 주는 듯하다. 남편의 퇴직과 더불어 예전과 바뀐 생활 패턴이 있다면 집에서 삼시세끼를 먹어야 하는 사람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회사생활에서는 챙기지 않던 밥은 꼭 먹어야 했다. 퇴직한 남편과 식사시간이 불규칙한 아이들을 위해 바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전기밥솥에 항상 밥을 돌려 놓아야 하고, 날을 잡아 몰아서 반찬을 만들어 냉장고에 저장해 두어야 하는 일이다. 그렇게 이 삼일 후면 밥은 누렇게 변해 있고 반찬은 냉장고에서 식탁으로 들락거리다가 상해서 버려야 되는 양이 많아졌다. 오히려 밥을하고반찬을 만드는 시간보다 냉장고를 뒤져 청소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이 상황을 해결 할 수 있는 방법은 삼식이에게 밥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밥 해라, 밥 지어라~, 쌀씻어 밥 안쳐라~'라는 말은 전문성(?)을 가진 사람에게 하는 말인 것 같았다. 남편에게는 '밥 만들기'이다. 사 먹는게 싫다면 손수 밥을 지어야 하고 국을 끓이고 밥찬을 만들어야 한다. 내가 이래뵈도 요리로 특수교육을 하는 사람인데 가족들의 식사에 몸과 마음이 얽매여 마음을 졸이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부리나케 귀가하여 바쁘게 밥을 하다보면 된밥이 되거나, 햇반을 데워 먹는 일이 많아졌다. 그럴 때 듣게 되는 소리는 '엄마 밥이 그립다는 것'이다. 엄마밥은 물을 넉넉하게 넣어 되지 않고 숟가락에 착착 달라 붙는다나 어쨌다나. 그래서 엄마 밥을 직접 해 먹을 수 있도록 레시피를 내밀었다. '전기밥솥에 밥하기' 레시피에서 밥짓기의 고난이도는 밥물 맞추기이다. 중난이도는 쌀씻기이다. 이 두 과정을 잘하면 나머지는 전기밥솥이 시작과 더불어 마무리까지 해 준다. 나는 쌀씻기가 난이도를 가져올 지 몰랐다. 물을 받으면서부터 쌀알을 떠나 보내고 물을 버리면서 또 쌀을 떠나 보낸다. 이것이 정말 어려운 일인가 싶을 정도로 섬세함이 요구되는 과정이었다. 오히려 물맞추기가 난이도가 낮았다. 쌀 3컵을 했으면 물 3컵 동량을 부으면 되었고 옛날처럼 쌀을 씻어 불리는 과정도 없다. 전기압력 밥솥이 열일을 하기 때문이다. 전기밥솥은 쌀을 잘 익혀 밥으로 지어 주니 물의 양이 중요하다. 그래서 쌀씻기와 밥물 맞추기 난이도의 순위를 가리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쌀씻기는 물을 받아 쌀을 씻은 후 물을 버리고 새로운 물을 받고 물을 버리기에서의 반복과정은 쌀이 물따라 나오기 때문에 어렵다고 했다. 밥물을 맞추기 위해서는 쌁과 물을 동량으로 했을 때 쌀을 서너번 씻은 후 남겨진 물의 양에 따라 밥맛이 달라짐을 알았다. 밥솥의 눈금을 읽을 수 있다면 눈금에 맞출 수 있지만 눈금이 여러 개 있다보니 어느 선에 맞추어야 되는지 헷깔리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컵으로 계량하는 것이 제일 쉽지만 이때 남아 있는 물의 양에 따라 진밥, 된밥이 결정나는 것이었다. 그래서 주방일을 해 본 적 없는 퇴직남성이 사용하기 쉬운 전기밥솥은 취사와 보온이 되는 최소한의 활용도만 있는 것으로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였다.
가르치는 일을 하는 나는 스스로를 다독였다. 남편을 이해하려고 많이 노력 중이지만 짜증이 펌프질을 하고 있다. 손수 라면도 끓여 본 적 없는 사람에게 신선한 식생활은 아니더라도 굶지 않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된장찌개는 뚝배기 맛이라며 반드시 뚝배기에 끓여야 한단다. 엄마처럼 짭짤하게 해 달란다. 된장찌개는 국물을 자작하게 짭짤하도록 만들어 달라고 주문하지만 나의 결과물은 항상 된장국이 되어 버린다. 심심하다못해 밍밍하여 국인지 찌개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게 내가 끓인 된장찌개 맛이다. 그래서 냄비와 숟가락을 쥐어주고 직접 만들어 먹어라고 명령(?)했다. 냄비에 물 200cc, 된장 한 밥숟가락, 갈아 둔 멸치와 새우가루 한 밥숟가락을 넣고 끓인다. 여기까지는 무난하게 잘 했다. 두부 반모, 호박 반쪽, 양파 반의 반개, 파 조금, 다진마늘 조금, 설탕 한 작은 숟가락을 준비해 주고 눈으로 스캔하고 기억해 두라고 말했다. 준비 한 재료를 넣은 후 팔팔 한번 끓인 후 약한 불로 지긋이 끓여 준다. 남편은 준비한 식재료 중에 두부, 호박, 양파, 파를 썰어야 되는 상황에서 헤메고 있었다.
'두부는 어떻게 썰어야 되나 부서지면 어쩌나?
파는 크기가 어느 정도여야 되나?
뭐 부터 넣어야 하나?
불을 세게 하면 국물이 없어지는데.'
싱크대 앞에 서 있는 아저씨의 말을 듣고 있으니 미처 느끼지 못한 걱정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재료의 크기는 알아서 적당히 썰고 국물이 졸지 않도록 불조절을 하시고, 두 손은 같이 움직여야 하고 눈은 항상 이중방어와 수비 태세를 취해야 한다고 설명을 했다. 걱정이라는 양념을 잔뜩 친 된장찌개가 어렵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엄마의 추억은 주방의 구석구석 깔려져 싱크대 앞에만 서면 조미료처럼 여기저기 쳐 댄다. 호박을 큼직하게 썰어서 물컹하도록 익힌 호박찜 타령을 했다. 호박볶음도 아닌 호박찜은 애호박을 길게 반 잘라 반달썰기를 하게 했다.
'왜 이게 반달썰기야? 동그랗게 썰면 안되나?'
애호박 한 개에 물 100cc를 넣고 새우젓 한 작은 숟가락을 넣고 냄비뚜껑을 덮은 후 불조절을 하면서 끓이면 끝이다. 호박국물을 많이 먹고 싶다면 물 의 양을 조절하면 되고, 새우젓으로 간을 하고 호박의 크기는 너무 두꺼우면 뜨거워서 아찔한 한 입이 될 것이고 너무 얇으면 끓이면서 뭉개져 호박죽이 될 것이니 호박의 두께는 1cm정도로 썰어야 한다.
남편에게 요리를 가르치면서 새삼스레 느끼는 것은 추상적인 설명은 절대로 안된다는 것이다. '적당히 해! 알아서 해!, 쫌!' 이라는 의미 담은 언어가 안 통하고 알아 듣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몇 cc, 몇 cm, 몇 분, 몇 숟가락 등등 양을 계량하는 수치와 끓이는 시간을 정확하게 언급해 주어야 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했다. 불조절은 처음에는 센 불에서 하다가 한 번 훅 끓어 오른 후 중불에서 끓이는 것을 알려 주었다. 식재료 준비가 덜 되었으면 약불로 조절한 뒤 식재료 준비를 마무리 하는 것까지 할 수 있도록 설명했다. 그러나 요리를 하다 보면 정확한 이론적 탐색이 실천적인 지식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때 발휘되는 것이 유연성있게 대처할 수 있는 융통성의 발휘는 경험으로 취할 수 있는 오랜 방법적 기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옛날에는 밥 먹는 식구들이 많아서 반찬을 통채로 두고 먹어도 모자랐을 시절이었다. 그래서 남은 반찬이 없으니 상하지도 않았고 개, 돼지 등의 가축도 키웠으니 줘 버리면 그만이었는데 지금은 달랑 혼자 또는 둘이 먹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밑반찬은 시간 날 때 많이 만들어 저장하니까 상하지 않도록 조금씩 덜어 먹어야되는 것은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귀찮은 일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옛날에는 이렇게 먹어도 괜찮았어 왜그래 귀찮게'
'그냥 먹어도 상관없다. 우리는 반찬 통채로 여럿이 먹어도 아무 탈없이 잘 컸는데 별나다 별나!'
'그 당시는 밥먹는 식구가 많아서 먹고 남는 반찬이 거의 없었고, 반찬의 가짓 수도 적어서 만든 즉시 소비가 가능했었지. 반찬을 그대로 상 위에 올려 먹었어도 되었지. 지금은 하나 아니면 둘 정도 먹는 반찬인데 당연히 덜어서 먹어야지.'
나는 쉬는 날 밑반찬을 만들어 놓는다. 물론 버리는 것이 더 많지만 말이다. 만들어 둔 밑반찬을 꺼내 먹는 방법도 알려 주어야 했다. 김치, 장아찌, 젓갈, 멸치볶음 등은 접시에 한 끼 먹을 만큼 모둠으로 담아 내는 것을 알려 주었더니 그냥 꺼내서 먹고 다시 냉장고에 넣어 둔다고 고집을 부린다. 그 말도 맞는 말이긴 하다. 설거지 할 그릇만 늘어 나고, 혼자서 먹거나 우리 가족이 먹는 건데 뭐하러 번거롭게 그러냐는 생각도 들 것이다.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여기가 식당이 아니라고 빡빡 우겨 보기도 하였다. 남편은 그런 게 아름다운게 아니라 귀찮은 일이고, 맛은 그맛이 그맛이라고 오래 된 고집을 부렸지만 나는 나의 방식대로 가르쳤다. 저장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밑반찬은 조금씩 덜어서 먹으면 된다. 그 자체만으로 충분한 반찬이지만 좀 더 고급스럽게 먹으려면 젓갈류에 참기름 똑 한방울과 통깨 톡톡 올리면 풍미를 더 낼 수 있다고 알려 주었더니 참기름을 쏟아부어 범벅을 해 놓는다. 통깨는 뿌린건 지 쏟은건 지, 젓갈을 먹는건 지 통깨를 먹는건 지 모를 지경으로 만들어 놓는 남자주부(主夫:주방에서 일하는 지아비)는 그럼에도 엄마밥과 엄마반찬을 찾는다. 엄마반찬이 그리운 이유는 젓갈을 꺼내 작은 접시에 덜어 담아 그 위에 참기름 한방울과 통깨를 조금 올려서 먹으면 잠시의 수고로움과 번거로움으로 보기에도 아름답고 맛도 고소하게 만들어 준 정성을 먹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무튼, 접시에 반찬을 덜어 먹어야 한다고 그렇게 해야 된다고 결론만 말해 버렸다.
우리의 기억 속에 저장되어 있는 어머니의 상차림, 집밥이라 하면 식재료 준비에서 마무리 설거지까지를 말한다. 식당에서 누군가가 차려 내 주는 인스턴트 상차람의 식사를 원하지 않는다면 누군가는 손수 장을 봐야 하고 주방에서 직접 씻고 썰고 끓여서 차려내는 일련의 과정을 해내야 한다. 이제는 여자, 주부, 엄마가 반드시 해야 한다는 시대는 지났다. 누군가는 자신을 위해 밥을 지어야 하고 다른 식구를 위해 밥상을 차려내야 한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시간은 강물처럼 잔잔함 속에서도 변화를 가져오 듯 누군가의 노동이 있어야만 근사한 식탁이 만들어진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그렇게 길들여졌는지도 모른다. 주방에 서 있는 뒷모습은 남녀노소를 구별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고 집밥이 몹시도 그리운 사람이 뒷모습을 아름답게 보여 주면 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핵가족의 시대를 떠나 독거, 일인, 독신 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생활이 존중되는 문화 속에서 스스로를 위한 밥문화가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집밥이 얼마나 그리우면 가정식 백반, 집밥 상차림으로 식당 홍보를 하고 있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내가 정의하는 집밥은 내가 먹든, 타인을 위하든, 그것이 라면이든, 밥이든 스스로 몸을 움직여 차려 낸 음식을 말한다. 직접 만든 집밥을 혼자 먹는 분위기를 상상해 보면서 우리는 진정 집밥이 그리운가, 엄마의 손맛과 정감이 애뜻한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영화 리틀포레스트에서 주인공은 엄마의 레시피를 떠올리며 혼자 가꾸고 수확한 식재료로 요리를 하고 혼자 밥먹는 장면에서 나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다양한 매스컴에서 요리가 대세인 요즈음 엄마가, 아내가 해주는 밥이 집밥이라고 착각을 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스스로 할 수 있는, 만들어 저장해 둔 반찬이라도 차려 낼 수 있는, 라면이라도 손수 끓일 수 있는, 오이라도 깎아서 된장에 찍어 먹을 수 있는 인식과 행동이 나타났을 때 새로운 개념의 집밥 먹기가 이루어 질 것이라 믿는다.
20190729권명숙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