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의 일이다. 사찰요리를 배우러 간 적이 있다. 3개월 과정으로 이루어지는 교육은 실습 위주로 이루어졌으며 개인별로 식재료와 조리도구를 나누어 주셨고 레시피도 주셨다. 일주일에 한번씩 3시간을 진행하였으며 두가지 또는 세 가지의 요리를 만들었다. 출석한 교육생을 확인하고 스님이 앞에서 먼저 오늘의 사찰요리를 한 가지식 시범을 보여 주셨고 끝나면 우리는 맛을 보았다. 그렇게 한시간 가량 스님의 요리수업이 끝나고 나면 나누어진 식재료를 들고 각자의 자리에서 스님이 진행했던 요리순서와 요리방법을 기억하고 레시피를 보면서 그대로 만들어 내는 과정이 한 시간 정도 진행이 되었다. 그럼에도 시간이 남았다면 교육생이 만든 요리를 시식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으로 이루어졌다.
3개월 동안 우리가 만드는 요리를 살펴 보다가 배추전을 보았다. 배추전이라.. 설마 내가 생각하는 배추전은 아니겠지 생각했다. 사찰요리의 배추전은, 그리고 스님이 가르쳐 주시는 배추전은 뭔가가 다를 것이란 기대를 한껏 품었었다. 드디어 ‘배추전만들기’ 날이 되었다. 배추에서 이파리를 한 장씩 떼어 낸 배추잎이 체반에 가지런히 누워 있었다. 스님은 나무볼에 밀가루를 풀고 팬에 기름을 두른 후 배추를 밀가루 반죽에 풍덩 적셔 하얗게 변한 배추를 가름 두른 팬에 올렸다. 짜르르르 소리를 내며 배추는 앞 뒤로 노릇하게 구워졌고 대나무 소쿠리에 기름진 배추전을 손으로 주르르 찢으며 맑은 간장에 콕 찍어 시식하게 해 주셨다. 배추잎을 찢은 손가락을 쪽쪽 빨아먹을 정도로 그날의 고소함을 잊을 수 없지만, 하얀 반죽을 뒤집어 쓴 늘어진 배추 이파리마냥 허망함과 허탈함도 감출 수 없었다.
밍밍한 밀가루 반죽옷을 뒤집어 쓴 배추전은 경상도 지방에서는 흔한 요리이다. 명절음식에도 제사음식에도 그리고 밥반찬에도 술안주에도 꼭 끼여 들고, 아이들의 간식으로도 손색이 없었던 배추전인데 이게 사찰요리로 이름을 떡 올리고 있으니 경상도 여자로서 얼마나 허탈한지 스님은 상상도 못하시고 계셨다. 그런데 그 곳에 모인 교육생들은 배추로 이런 요리를 한다는 것과 고소하고 깔끔한 맛에 엄청 감탄하고 신선해 했다. 얼마나 TV에서 김수미선생님이 배추전을 만드는 장면이 나오고 출연자들이 만드는 방법과 완성 된 맛에 감탄하는 방송을 보고 사찰요리를 배울 때의 기억이 소소하게 올라와 미소짓게 했었다.
특히 비가 오시는 날에는 더할 나위 없는 먹을거리로 떠 오르는 배추전은 뜨거운 배추 줄기가 입안에서 밍밍하다고 느꼈을 때 톡 올라오는 배추즙의 뜨거움에 삼키지도 뱉지도 못했던 뜨거움과 민망함 사이에서 어린시절의 기억을 소환하게 만들었다. 배추줄기의 싱거움을 벗어나기 위해 배추줄기를 칼등으로 콕콕 다져 소금에 살짝 절였다가 만든다면 밍밍함과 뜨거움을 느끼지 않아도 되고, 짭짤한 맛과 매콤한 맛을 느껴보고 싶다면 배추전의 사촌인 김치전을 만들기도 한다.
사실 배추전은 소박한 사람들에게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요리가 아닐까 싶다. 김장을 하고 저장해 둔 배추를 쑥 뽑아 별다른 재료를 준비하지 않아도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 할 수 있는 신기한 식재료이기 때문이다. 지금에야 식용유를 두르고 전을 굽지만 어릴 적에는 돼지기름을 쓱싹쓱싹 문질러 전을 구웠으니 단백질과 지방을 대신하였을 것이고, 쌀이 귀한 시절에 밀가루로 배를 채웠으니 멀겋게 푼 밀가루 반죽은 탄수화물 대용으로 섭취했을 것이다. 그리고 집간장에 식초 두 세 방울은 추위와 더위를 이겨 낼 수 있는 영양분으로 작용하였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경상도 여자의 배추전 레시피
여름배추는 배추즙이 많아 촉촉하고 겨울배추는 고소한 맛이 더 난다.
여름배추전은 팬에 오래 구워도 촉촉함 때문에 노릇하고 바삭하게 구워지지 않는다.
겨울배추전은 수분이 적당하여 노릇하고 바삭하게 구워진다.
여름배추전은 밀가루 반죽을 되직하게 만들고, 겨울배추전은 묽게 만들어도 된다.
여름배추전은 겨울배추전보다 팬에 기름을 적게 둘러도 된다.
준비재료
식재료 : 배추잎 6장, 밀가루 100g, 식용유, 소금, 간장, 식초
조리도구 : 팬, 뒤집기, 접시, 볼, 도마, 칼
만드는 방법
1. 배추를 씻어
2. 배추의 물기를 제거하고
3. 배추줄기를 칼등으로 쳐 준다.
4. 배추줄기에 소금을 솔솔 뿌리고
5. 밀가루에 물을 넣고 반죽을 만들고
6.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7. 배추에 반죽옷을 입히고
8. 배추 두장을 엇갈리게 팬에 올린다.
9. 노릇해졌을 때 뒤집는다.
10. 완성된 배추전은 접시에 꺼낸다.
11. 간장소스 : 간장에 식초를 넣는다.
간장소스에 고춧가루를 넣어도 좋다.
간장소수 대신에 초고추장에 찍어 먹어도 된다.
소스없이 배추전의 고소한 맛을 그대로 맛보기를 권장한다.
사찰요리의 배추전은 사찰에서 금기시하는 오신채(파, 마늘, 달래, 부추, 홍거)가 들어가지 않아서 더 매력적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수고로움을 더하여 배추전을 먹어야 하는 이유를 굳이 찾는다면 화학조미료와 식품첨가제가 들어가지 않고 인스턴트 음식이 아니니 더욱 좋았다. 백색 밀가루가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어릴 적 기억 속의 소소(小小)한 배추전이 사찰요리로 다가와서 잔잔한 재미를 느끼게 해 주었다. 권명숙글 2019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