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쿠리 속의 호박잎
요즈음의 하루 일과가 집, 병원, 목욕탕, 선배센터, 침대맡 책상이다. 이 생활이 한 해를 지나 두 해가 다가오고 있다. 이러한 생활이 자의였던 타의였던 지금 그러한 생활을 하고 있고 가끔씩 진정한(?) 강의를 하고 있다. 오늘은 병원 가는 날이었다. 교수님의 말씀처럼 '상담을 해야 할 네가 상담을 받으러 간다고? 우리 아이들에게 복용하는 약물에 대해 생각 좀 하자고 했던 네가 약을 복용한다고?'. 나도 내가 상담을 받고 약을 먹을 줄 몰랐다. 왕성한 활동과 하고 싶었던 공부를 마무리 할 즈음에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 났는지에 대해 온 몸에 소름이 돋을 만큼 진저리가 났다. 상담과 약을 복용한 지가 지난 3월부터 그러니까 지금이 7월 막바지이니 4개월이 되었다.
언제나 그러하듯, 병원을 다녀오는 날이면 병원문을 나서는 그 순간부터 흐릿하게 떠오르는 생각들. 약국에서 약을 받아 들 때 어지러운 생각이 많아진다. 어지럽다는 생각이 들면 휘청거린다. 그 휘청거림은 어떤 날은 아득해지는 나를 추스리기 위해 주저앉게 만들고 누군가가 나를 잡아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들기도 한다. 그 바램을 붙잡게 해주고 어지러운 생각을 잠시 내려 놓게 만드는 이가 바로 횡단보도 앞에 앉아 있는 할머니이다.
병원에서 집으로 오는 횡단보도 끄트머리, 그 시간, 그 자리 언제나 앉아 있는 할머니 한 분이 파, 오이, 가지, 정구지(부추), 열무 등을 팔고 계셨다. 깜장 우산으로 해를 가리고 챙 넓은 모자로 얼굴을 가린 할머니는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뀔 때마다 창 넓은 모자를 살짝 들어 올려 길 건너는 아줌마들에게 눈을 마주 치곤 했다. 채소를 사 가라는 무언의 호객행위였다. 길 건너던 몇몇의 아줌마들이 할머니의 채소를 팔아주는 일은 흔한 광경이었다. '어휴! 할머니 더운데 또 나오셨어요. 얼른 팔고 들어가셔요. 이것도 주시고 저것도 주셔요.' 이쯤되면 아마도 단골이라는 짐작을 해 본다. 카드시대에 길거리에서 무언가를 사려면 적어도 현금이 몇 천원이라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나왔는데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억지를 부려서라도 눈을 부릅뜨고 앞을 똑바로 봐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고 입으로 '보여라 보여라 잘 보인다'라고 중얼 거린다. 맞은 편 신호등 뒤로 채소 자판을 벌려 놓고 있는 할머니가 뿌옇게 보이는 순간 '이제 괜찬아 괜찮다'고 다독거리며 길을 건넜다. 웅크리고 손님을 맞이하는 할머니가 오늘처럼 반가울 수가 없었다. 할머니 앞에 놓인 빨간 소쿠리에는 오이, 부추, 양파, 그리고 호박잎이 담겨져 있었다. 할머니가 손수 농사 지은 것이라 말씀 하시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도 모르고도 사람들은 지갑을 열고 현금을 꺼내고 빨간 소쿠리 안의 채소를 한 봉지씩 꾸려 갔었다.
간신히 길을 건넌 내 눈에 보인게 호박잎이었다. 딱 한소쿠리뿐이었다. 살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데 벌써 비닐 봉지에 담고 쑥 내미셨다. '1000원만 내!, 손질 다 했으니 껍질 안까도 되고!' 소쿠리 속의 호박잎이 어떤 꼬라지 인지 살펴 보지도 못하고 덜렁거리며 집으로 왔다. 식탁 위에 펼쳐 본 호박잎은 그야말로 가관(可觀)이었다. 어느 하천에서 자랐는지, 어린아이 치마폭만한 누런 호박잎이 시꺼먼 비닐봉지에 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할머니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내 기억 속의 호박잎은 보들보들, 야들야들했다. 어쩌다 마트에서 판매는 호박잎은 뻣뻣하고 까끌거리고 쪄도 쪄도 밭으로 날아 가려고 했던 기억 때문에 구입하지 않았는데, 직접 키우고 따온 거라는 할머니의 말 한마디에 부드럽고 고소하고 촉촉한 호박쌈을 기억하고 기대했던 추억이 와르르 무너졌다. 호박잎 봉지를 들고 집으로 오기까지의 그 과정은 참으로 행복했다. 어머니가 주신 된장을 짜글짜글 끓이고, 호박잎은 두 손으로 비벼 씻어 물기를 톡톡 털어 제거하여 찜기에 찔 것이다. 쪄 낸 호박잎에 금방 지은 밥을 한 숟가락 올려 짭짤한 된장찌개로 간하여 양볼이 터지도록 한쌈 먹어 보리라. 그동안 약으로 인해 입맛이 없는건지, 밥맛이 없는 건지 몰라 끼니를 등한시 했었는데 이 호박쌈으로 입맛을 돋구리라 생각하며 즐겁게 귀가 했었다.
식탁 위에 펼친 호박잎은 도저히 먹을 수가 없어 보였다. 1000원으로 큰 걸 바란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씁쓸한 생각이 마음을 쏴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고 노력해 보았다. 희미한 눈으로 신호등 뒤편에 앉아 계신 할머니가 정다웠고, 햇볕 아래 앉아 있는 할머니 앞에 손님으로 다가가는 사람이 정다웠고, 아는 듯 모르는 듯 직접 재배한 채소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옹기 종기 차려진 소쿠리 속의 채소가 있어 오래 된 기억을 되살리게 했고 잠시나마의 추억으로 배가 불렀다.
20190731권명숙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