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깨어 있으라고 하셨는데
앞 베란다에는 하루가 다르게 장미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어제는 아카사아 꽃이 하얗게 산을 덮은 광경을 보았다. 5월이다. 벌써 중순에 접어든.
긴 시간을 할 일을 미루고 지냈다. 코로나의 영향도 있었고 개인적인 일도 있었다. 그동안 열심히 달렸으니 좀 쉬어도 된다는 스스로에게 휴가를 주었다고 핑계를 댄다. 휴가동안은 잠만 잤다. 물론 수면제의 도움도 받았다. 이런 상황을 내가 나에게 주는 핑계를 둘러 대면서 그렇게 시간을, 세월을 갉아 먹고 있었다. 간혹은 이러다가 내가 잊혀 질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잊혀 질까봐 하는 불안과 걱정이 아니다. 내가 무엇을 하던 사람인지, 무엇을 해야 되는 것인지를 잊어버리거나 잃게 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면 갑자기 콧등이 찌릿하더니 눈물이 났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가 아니라 나는 지금 어디쯤에 서 있는가를 생각했다. 도대체 지금 이 상황 속에서 내가 서 있는 자리를 알 수 없다.
작년부터 그동안 내가 가지고 있는 자료를 정라하자고 마음먹었다. 마음먹는 일은 언제 쉬웠다. 하루에도 열두 번 아니 스무 네 번, 시간마다 다짐하고 약속하지만, 스스로의 약속을 어기거나 깨뜨리는 일도 쉬웠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예전에는 거의 20시간을 앉아 있다시피 했는데 의자도, pc도 꼴 보기 싫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아무것도하기 싫고 귀찮았다. 무엇이 나를 일으켜 앉혔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pc 앞 의자 앞에 앉았다. 할 일은 하지 않더라도 의자에 앉는 연습부터 해야 될 것 같았다. 그렇게 pc 앞에서 먹고 놀았다.
작년부터 시작한 원고가 하나씩 정리가 되고 내가 만들고 싶은 책이 한권씩 출판이 되었다. 나의 생각과 약속이 어긋날까봐 모아 둔 자료를 글과 사진으로 엮었다. 그리고 초벌로 쓴 원고를 짬짬이 카페와 블로그에 올렸다. 올린 글은 책의 내용과 조금씩 다르다. 올린 글을 파일로 묶어 수정보완을 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혼자서 하는 작업이라 실수투성이지만 ‘그럼에도 해 냈다’는 생각에 자랑스럽다. 다른 것은 다 제켜두고도 지난 2005년부터 미술재료 대신 식재료로 진행했던 시절의 자료를 들쳐보면서 ‘아, 내가 이렇게도 했구나, 이런 생각을 어떻게 해 냈지.’ 감탄을 했다. 오래 된 자료일수록 참신한 아이디어가 많았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니 신선함이 묻어나고 있다. 그래서 최근의 자료를 바탕으로 오래된 자료를 첨가하기로 했다. 글을 쓰다가 또는 현장의 생생한 기억에서 그 당시에는 생각해 내지 못한 것을 풀었다.
기억을 더듬고 생각을 정리하고 글을 심는 일 년이란 짧고 긴 시간 끝에 한 편씩 완성되어 가는 원고를 보면서 그럼에도 작은 기록이라도 남겨 두길 잘했구나 싶다. 올 상반기에 나온 결과물에 고개가 숙여진다. 《요리치료 이야기》는 2007년부터 시작되었고, 《노인 요리치료》는 2019년, 《요리치료사 레시피》는 일간 요리치료로 올린 글을 모아 엮은 책이다. 책으로 엮어진 자료를 보면서 난 오랜 잠을 청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기 싫고 게을러진다. 혼자 있기를 좋아하지만 더 혼자이기를 원한다. 원고를 쓰는 동안 열정이란 이름으로 써버린 노력 에너지를 충전해야 한다. 항상 말하는 것이지만 나는 정답을 제시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현장에서 만나는 다양한 참여자와 함께 조금 더 즐겁고, 이로 인해 조금 더 행복하고 한마디씩 성장해 갈 수 있는 해답을 찾고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이라고 강조한다. 물론 나도 즐겁고 행복해야 한다. 나의 행복 에너지가 오롯이 전달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하나의 일이 끝나면 탈진을 한다. 조금만 더 쉬다가 다시 작업에 임하려고 한다. 이 상황에서도 수업이 진행 중인 기관과 줌으로 진행하고 있는 기관의 장단점을 사실적으로 적어가고 있다. 아마도 내년이 될 것 같지만 나의 노력 에너지가 채워지고 부지런함이 보태진다면 당겨 질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 전에 cook 에세이 원고가 거의 완성 되었다. 블로그에 올린 글보다는 더 세련되게 다듬고 있는 중이다. 아무튼 아프지 말고 잘 먹고 잘 자고, 열심히 자판 두드려 나만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선선노름을 할 예정이다. 2021.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