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발달장애인 요리치료
그들은 해 내고 있는 중입니다.
여름 날씨이다. 5월 중순의 날씨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무덥고 숨이 막힌다. 아직 봄을 즐기지도 못했는데 벌써 여름이 문턱을 넘어서고 있다. 작은 차 안은 더 더웠다. 창문을 열었다 닫기를 반복했고 마침내 더위에 지친 몸이 에어컨을 틀고 말았다. 시원하다. 일찍 맞이한 초여름의 날씨에도 견디지 못하는 데 한 여름은 또 어찌 견딜지 모르겠다. 날은 덥고 길은 막혀 답답함을 더했다. 미리 준비한 얼음물을 마셔보고 더위와 사이좋게 지내보려고 애쓰고 있는 중이다.
길 막힘의 답답함을 벗어나니 달라진 풍경이 보였다. 어제와 오늘의 날씨가 다르듯, 넓게 펼쳐진 땅의 기운도 달라져 있었다. 땅을 일구는 이들의 노고가 보였다. 황토 빛의 논밭은 물이 고여 있고 더러는 모심기를 한 곳도 있다. 다음번에 이 길을 지나면 벼가 자라서 바람에 일렁이는 상상을 했다. 또 산은 어떠한가. 아카시아 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다. 벌써 만개하여 화려함의 끝을 펼치고 있다. 아, 밖으로 나오니 자연에서 계절의 변화를 민감하게 느낄 수 있었다. 몸과 마음이 자연과 동화되어 자연인이 된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오고 조금 전의 길 막힘의 답답함은 잊어 버렸다. 인생 참, 나쁜 게 있으면 좋은 것도 있고 부정이 있으면 긍정도 있음을 또 실감하게 된다. 온 산은 차가 지나칠 때마다 초록과 하얀색을 번갈아 보여 주었다. 꽃의 향기로움과 화려함에서 힐링이 되는 것을 보니 나이가 들었구나 싶다.
나 스스로가 세운 원칙대로 수업 시간 30분 전에 도착을 했다. 주차 후 차 안에서 오늘 수업은 어떻게 진행 할 것인지를 머릿속에서 활동계획서를 점검을 한다. 그리고 기관에 들어서면 먼저 체온 체크와 소독을 한 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수업에 임하는 마음 다짐을 한다. 그리고 프로그램 실에 들어서서 인사를 나누고 미리 준비 해 둔 식재료와 조리도구를 점검을 한다. 식재료를 미리 접시에 담아야 될 것과 나중에 나누어 주어야 될 것을 구분한 후 이용자의 수만큼 소분을 한다. 그리고 도움을 주시는 관계자와 공익 요원에게 어떻게 진행이 될 것이며 제가 도움을 요청 할 때만 움직여 주시라고 당부를 했다.
참여자들은 시간을 칼같이 지켰다. 물론 담당자가 있어 인솔을 하지만 밝고 명량하게 인사를 건네며 입실을 한다. 내가 준비하느라 미처 알아채지 못할 때는 가까이 와서 큰 소리로 인사를 한다. 자리에 앉는 모습을 보면 일찍 온 참여자는 자기가 앉고 싶은 자리에 앉았다. 그래서 매번 자리가 달라진다. 나는 아직 참여자의 이름을 다 외우지 못했다. 예전 같으면 한 명씩 사진을 찍고 이름을 적어 달달 외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젠 사진을 찍지 않는다. 그리고 기관에서 직접 출석 체크를 한다. 이용자들은 매번 앉는 자리가 달라 헷갈린다. 물론 담당자가 이름표를 붙여주지만 보이지 않는 위치에 붙여서 이름표를 보려고 뒤로 밀거나 일어서게 해야 한다. 아마도 수업이 끝날 즈음에 이름과 얼굴이 일치되도록 알게 될 것 같다. 그 중 특별하거나 유독 눈에 들어오는 이용자의 이름은 쉽게 파악이 되기도 한다.
이번 활동의 결과물은 아주 간단하고 쉬워 보인다. 그런데 만드는 과정은 참여자의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져야 결과물이 완성된다. 식재료를 썰고 다지고, 껍데기를 벗기고 으깨고, 섞고 그리고 비슷한 양으로 나누고, 속을 채우는 과정을 거쳐야 감자샐러드 모닝빵 4개가 완성된다. 다양한 활동의 과정에서 참여자의 특성을 살펴보았다. 오이와 당근은 사전 준비로 미리 얇고 납작하게 잘라서 나누어 주었다. 그 다음은 참여자가 가늘고 길게 채를 썰고 다시 작게 잘게 썰기를 해야 한다. 오이와 당근을 썰기 전에 맛살의 비닐 껍질을 벗기고 맛살부터 작고 잘게 칼질을 했다. 맛살은 부드러워서 칼을 쥔 손에 힘을 많이 주지 않아도 잘리는 것에 참여자는 신기해했다.
다음에는 오이를 잘랐는데 힘을 어떻게 주어야 하는지를 몰랐다. 내가 참여자의 칼끝을 잡고 옮겨가면서 힘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를 돌아다니면서 한명씩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더 힘을 들여야 하는 당근을 잘랐을 때는 힘을 써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는 듯 했으나, 손에 힘을 주는 게 아니라 입으로 오, 허, 힘을 주는 소리를 내기도 했다. 감자와 달걀의 껍질 중에서 감자 껍질 벗기기를 더 어려워했다. 그것은 감자의 얇은 껍질을 손톱으로 벗겨 내는 세밀한 부분을 어려워하는 반면에 달걀껍질은 딱딱하지만 어떤 룰에 의해 일어나고 떨어지는 것처럼 쉽게 할 수 있었다. 껍질 벗긴 감자를 손바닥에 올려 주먹을 쥐게 했다. 감자가 뜨거워야 숟가락으로 잘 으깨지는데 감자가 식어 숟가락으로 으깨 질 것 같지 않아서 먼저 손으로 주물러 으깨기를 시도했다.
그런데 손에 감자를 올리는 것, 손바닥을 동그랗게 마는 것, 손바닥에 올려 진 물건을 힘주어 잡는 것을 하지 못했다. 참여자의 손을 내 손에 올려 내가 참여자의 손을 움켜잡으면서 힘의 강도를 알게 했다. 그리고 참여자의 손을 쥐면서 손바닥에 올려 진 감자가 으깨지는 것을 확인시켰다. 그 다음으로 달걀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움켜쥐게 했더니 쉽게 수행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역시 시범학습, 반복학습의 효과가 나타났다. 그렇게 으깬 감자와 달걀, 작게 자른 맛살, 오이, 당근을 그릇에 담고 마요네즈를 두 숟가락을 넣어 골고루 섞이도록 버무리게 했다. 어떤 참여자는 내가 다시 손봐주지 않아도 될 정도로 아주 곱게 섞어 놓았다. 어떤 참여자는 그릇 밖으로 재료를 다 내 보내고 그릇의 가장자리에 거의 처발라 놓았다. 손을 잡고 다시 곱게 모아서 섞는 방법을 알려 주고 혼자서 한 번 더 해 보도록 기다려 주었다. 어쨌든 그들은 해야 할 과정이 많은 활동 임에도 웃는 얼굴이었고 손을 들고 궁금한 것이 많아서 즐거워 보였고 행복해 했다.
지금까지 자르고 썰고, 까고 으깨고 섞어야 하는 신체적인 움직임을 요구하는 활동을 했다면 머리를 사용해야 하는 인지적 활동이 이루어졌다. 직접 만든 샐러드 소스를 4등분으로 나누는 일이다. 그릇에 담긴 소스를 숟가락을 이용하여 가로로 반을 나누고, 다시 세로로 반을 나누어 비슷한 양과 크기로 4개를 만드는 작업은 많이 어려워했다. 나는 돌아다니며 한명씩 점검을 했고 못하는 참여자에게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기다리는 시간이 많음에도 참여자들은 빨리 하자고 하거나 일어서거나, 돌아다니는 일 없이 다른 사람을 기다려 주었다.
마지막으로 빵에 소스를 채우는 일이다. 모닝빵을 미리 가로로 잘라 두었다. 4등분으로 나눈 소스를 빵에 빵빵하게 넣으면 된다. 어떻게 소스를 넣는지 알려 주었다. 모닝빵의 잘라진 부분을 보여 주었다. 한쪽은 잘려져 있고 반대쪽은 붙어 있는 것도 보여 주었다. 빵의 잘라진 부분이 위로 보이도록 손바닥 위에 올린다. 숟가락으로 소스 한덩이를 떠 빵 사이에 가득하게 채운다. 빠져 나온 소스는 숟가락 뒷면으로 톡톡 다듬어 주면 완성이다. 천천히 설명과 함께 모닝빵 한 개를 채우는 것을 보여 주었고, 다시 한 개를 만드는 과정을 보여 주면서 설명을 했다. 그리고 참여자가 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 나는 잘 하고 있는지 둘러보았다. 두 개를 먼저 만들고, 다시 두 개를 만들었다. 어, 그런데 소스가 남아 있는 참여자가 많았다. 왜 남겼냐고 물었더니 빵 밖으로 소스가 자꾸 나온다고 했다. 나는 그들이 만든 빵에 그들이 만든 소스를 남김없이 채워 주었다. 빵은 그야말로 빵빵하게 채워졌다.
샐러드 모닝빵 4개를 만들었으니 포장을 해야 한다. 기관에서는 은박 도시락을 준비해 주었다. 은박 도시락이 많이 있어서 사용해야 한다고 했다. 내가 미리 준비해 간 케이스에 담아 가게 했다. 케이스 하나에 두 개 의 빵을 넣으면 된다. 참여자에게 포장하는 방법을 설명했다. 플라스틱 케이스는 밑면에는 글자가 박혀 있고 뚜껑은 글자가 없다. 빵은 글자가 있는 밑면에 갈색의 모닝빵이 앞으로 보이도록 세워서 넣는다고 설명하고 참여자가 스스로 하도록 했다. 참여자는 케이스에 빵을 거꾸로 넣기도 하고 뒤집어 담기도 했다. 어떤 모습으로 표현되더라도 그들은 스스로 해 내고 있었다. 단, 그 자리에는 관계자와 공익요원이 많아 참여자가 도움을 요청하기 전에 미리 해주려고 하는 모습이 많았다. 참여자가 할 수 있는 데까지 기다려 보라고 요청했다. 아무튼 나와 참여자는 제 손으로 해 내야 하는 낯섦과 익숙하지 못한 어설픔, 함께 맞춰 가야 하는 기다림, 그 속에서 하나씩 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그러하듯 허전함, 허탈함 뒤로 이어지는 또 한 꼭지를 해 냈다는 안도감이 숨을 몰아쉬고 있다. 언제나 그들과 함께 하는 시간에는 긴장한다. 그들과 만들어 내는 두 시간 동안 별 일 없이 마무리 지을 수 있었음에 졸여졌던 긴장의 끈을 느슨하게 푸는 시간이기도 하다. 갑자기 시장기가 돈다. 수업이 있는 날은 종일 굶는다. 밥을 먹지 않는 이유는 배가 부르면 헐떡이는 거친 숨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호흡이 빨라진다. 약간의 배고픔이 나를 더 긴장하게 만든다. 배가 고프네 생각되면 간절히 더 먹고 싶어진다. 빨리 집에 가서 배를 채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