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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국요리치료연구소 Aug 15. 2021

마트에 가면 나만의 보물찾기를 시작한다.

배추국과 겉절이가 된 1900원 배추

마트에 가면 나만의 보물찾기를 시작한다.



나는 마트에 물건을 사러 가면 꼭 찾는 코너가 있다. 그 코너는 기간이 임박해서 몇 %씩 저렴하게 판매하는 매대이다. 그 매대에는 채소, 과일 등이 있는데 하루 또는 이틀 만 지나면 판매 불가한 제품이 놓여 있다. 그 반대편 냉장실에는 우유, 요쿠르트, 콩나물 등의 생물 제품과 냉장, 냉동식품이 자리를 차지하는 코너도 있다. 나는 마트에 가기 전에 구입해야 할 물품을 적는다. 그리고 메모해 둔 폰을 들고 매장을 순례하기 전에 먼저 저렴한 매대를 둘러보고 건질만 한 게 있는지 살펴보는 게 먼저이다. 주로 매대에 나와 있었으면 하는 물품은 연근, 당근, 우엉, 어묵 등 하루 이틀 지나도 맛에는 지장이 없는 것이기도 하고 때로는 배추나 무가 나와 있는지 살펴보기도 한다. 우엉이나 연근은 사실 마트에서 제대로 된 상품을 구입하기에는 가격이 좀 비싸다. 30, 40% 가격이 다운되면 그나마 밑반찬으로 해 먹을 만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구입하는 날에는 냉장실에서 묵히지 않는다. 조림을 할 것인지, 볶음을 할 것인지, 아니면 절일 것인지를 결정하고 바로 손질에 들어간다. 꼭 이런 날은 횡재를 한 기분이 드는 것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고작 일 이 천 원, 아니면 몇 백 원일 텐데 왜 정품을사지 못하고 저렴한 매대를 헤매는지 모를 일이긴 하다. 그리고 내가 또 눈을 크게 뜨고 찾는 것은 배추이다. 마트에는 세 개씩 묶어서 배추를 판매한다. 그 세 개를 구입해서 김치를 담아내기에는 이제 힘에 부치기도 하고 매 끼마다 겉절이 식으로 해 먹는 맛도 솔솔 해서 될 수 있으면 배추 한 포기만 구입하는 편이다. 여름에는 열무와 얼갈이로 김치를 담기도 하고, 양배추나, 양파, 오이소박이 등 다양한 김치를 조금씩 담아서 바꿔 가면서 먹는 재미도 있기 때문이다. 여름에는 배추 겉절이를 씀씀하게 담아 국수에, 고기에, 생선에, 흰밥에 올려 먹으면 더위 때문에 달아 난 입맛과 밥맛이 고개를 돌려 식탁에 머물게 하는 힘도 있다. 



오늘은 야채실에서 잠자고 있는 배추를 꺼냈다. 이 배추로 말씀드리자면 저렴한 매대에서 1900원에 한 포기를 획득했는데 그 배추를 구입해 오자마자 목이 아프면서 열이 나는 바람에 에라 모르겠다, 싸게 샀으니 썩어서 벼려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밀쳐놓았던 배추이다. 배추를 구입한 지 2주가 지났다. 야채를 구입하고 이렇게 오랜 기간을 내버려 둔 적이 없었는데 몸이 아프면 만사가 그러하듯 배추를 다듬고 절이고 씻어 양념을 만들어 버무려 넣기가 귀찮았다. 냉장고를 열고 닫을 때마다 눈에 들어와 마음에 찝찝함이 꾹 박혀 있었는데 오늘 거사를 치르기로 작정을 하고 배추를 다듬었다. 랩에 꽁꽁 두른 배추가 못 먹을 지경이면 ‘먹었다 생각하고 벼려야지’ 마음먹었는데 배추를 잘라 보니  약간 시들었을 뿐 아주 깨끗했다. 배추의 겉 이파리는 삶아서 된장국을 끓였다. 다시마와 멸치, 황태를 넣고 육수를 내고 삶은 배추를 쫑쫑 썰어서 된장과 다진 마늘에 조물조물 주물러 육수를 넣어 푹 끓였다. 배추의 속 이파리는 노랗고 부드러웠다. 배추를 줄줄이 잘라서 소금에 절여 두고 고춧가루, 다진 마늘, 매실청, 젓갈, 설탕을 넣어 양념을 만들었다. 양파와 청양고추, 사과 반쪽에 다시마물을 넣어 쫘르르 갈아서 양념에 넣어 주니 맛이 오묘했다. 절여진 배추는 씻어 물기를 빼준 후 양념을 입혀 주었다. 대파도 송송 썰고 베란다 텃밭에 달린 깻잎을 다섯 장 따다가 송송 잘라 고명으로 올리고 통깨를 촬촬 뿌렸다. 겉절이 한 잎에 밥이 먹고 싶었다. 찬 보리차에 밥을 말아 한 숟가락 푹 떠 그 위에 겉절이를 올려 먹으니 열심히 밭 매다가 참 먹는 아낙 같은 기분이 들었다. 



포기는 배추를 셀 때 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2주 전에 구입한 1900원 짜리 배추를 포기하려고 했다. 그런데 너무 생생하게 잘 있어 준 배추로 배추 된장국도 끓이고, 겉절이도 만들었다. 하루 반찬은 무난하게 해결이 되었고 힘들게 만든 만큼 보리차에 밥 말아 배도 든든하게 채웠다. 이렇게 소꿉놀이 하듯 오늘 하루도 알차게 반찬을 만들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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