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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국요리치료연구소 Jul 19. 2021

호박꽃이 피었습니다.

호박꽃은 예뻤고, 이파리는 거칠었다.

호박꽃이 피었습니다.
 


작년, 마트에서 단호박을 구입했고 그 단호박을 찌기 위해 씻어서 속을 파냈다. 대개는 호박 속에 소복이 담긴 씨를 숟가락으로 벅벅 긁어 음식물 재활용으로 버린다. 이 호박씨가 재활용에 포함되는 건가 갑자기 생각이 나네. 아무튼 알뜰하게 파 낸 호박 속을 일층 화단에 던졌더랬다. 호박씨가 과연 싹을 틔울 것인가 아니면 썩을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툭 던져서 버렸다. 그리곤 까맣게 잊고 있었다. 가을이 오고 추운 겨울이 지나가고 따스한 봄이 와 온갖 풀들이 앞뜰을 빼곡하게 매우고 있어도 지난 해 던져 버린 호박씨는 생각지도 못했다.


다시 뜨거운 여름을 맞이했고 7월 3일에 난 다시 단호박을 찌고 있었다. 호박을 손질하고 자르고 숟가락으로 속을 파내면서 지난해 툭 던져 버린 호박씨를 생각해 냈다. 지금까지 기별이 없는 것을 보니 아마도 호박씨는 썩어 거름이 되었나보다 생각했다. 그렇게 잠시 지난여름의 단호박에 대해 생각하면서 올해도 난 단호박을 좋아하는구나 싶다. 그리고 삼일이 지난 7월 6일, 언제나 그러하듯 아침을 맞이한 나는 주방에 달린 창을 열고 세탁실에 달린 창을 열고 마지막으로 베란다 창을 여는 의식(?)을 갖는다. 베란다 창을 마지막에 여는 이유는 베란다 밖에서 펼쳐지는 온갖 풀들과 인사를 나누고 오늘은 어떤 풀이, 어떤 꽃이 피었는지 살펴보는 것이 즐거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5월에는 화려한 장미가 줄지어 피고, 6월에는 수국이 보랏빛을 탐스럽게 뽐내고 있다. 강아지풀, 보리, 민들레, 취나물, 머위, 정구지, 돌나물 등 참으로 다양한 먹거리를 찾을 수 있다. 이름을 몰라서 그냥 지나치는 것들도 있지만 말이다. 올해는 어디서 날아 왔는지 깻잎이 자라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풀들 사이로 노랗게 꽃이 피어 있었다. 밝고 진한 노란 꽃, 무슨 꽃인지 궁금해서 신발을 갈아 신고 밖으로 나가 확인을 했다. 앗! 호박꽃이다. 언제 이렇게 자랐는지 호박잎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고 줄기가 뻗어 타고 올라가고 있었다. 그 후로 꽃들이 두 개, 세 개 늘어나면서 피었다. 참으로 신기했다. 작년에 툭 던져 버린 단호박 씨가 이렇게 물과 빛을 받고 싹을 틔우고 꽃을 만나게 해 주었다. 다시 확인하기 위해 사진을 찍어 확인을 했다.


호박이 맞다. 홍홍홍, 참으로 신비롭다. 그렇게 호박을 비를 맞고 햇빛을 품어 씩씩하게 자라고 있었다. 아침마다 나의 일상이 호박꽃으로 인해 화려하고 행복해 졌다. 바로 어제, 휴일에 모두가 나간 집에 혼자 있으면서 호박잎에 애정이 발동했다. 단호박 이파리는 쌈으로 먹을 수 있는지 궁금해졌다, 사실 호박 쌈을 무지하게 좋아하는 일인이다. 자박자박하게 끓인 된장에 푹 쪄 낸 호박잎을 손바닥에 올려 밥을 올리고 된장을 올려 크게 한 입 먹으면 기운이 나기도 했었는데 이제는 진짜 아련한 추억이 되어 버렸다. 추억을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닌데 이야기가 옆으로 샜다.


호박잎을 먹을 수 있는지 궁금해 하다가 임 선생님에게 문자를 보냈다. 임샘은 검색을 해 보니 먹는다, 못 먹는다 반반의 의견이라고 했다, 아차,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는지, 검색을 해 보면 되는데 말이다, 폭풍검색을 해 보니 반반의 의견이 있다. 그래서 직접 호박잎을 만나 보기로 마음을 먹고 두꺼운 바지를 입고 모기약을 다리 부분에 뿌린 후 호박잎을 따러 들어갔다. 베란다에서 내다 본 것과는 달리 풀이 꽤 많이 자라 있었다. 혹 여기 배암이라도 있으면.... 아파트에 배암이라니 혼자 생각하고 혼자 웃었다. 호박꽃이 제법 많이 피었다가 지고 있다. 가위를 들고 쭉 늘어진 호박잎을 한 장, 두 장 한 네 장을 자랐을 때 온몸에 두드러기가 올라 왔다. 5장을 따다가 급기에 후퇴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온몸에 가려워 지는 느낌은 뭘까. 그래도 큰 맘 먹고 들고 나온 호박잎을 그냥 버리기는 아까워서 주방에서 호박을 펼치고 맨 손으로 만져 보았다. 오마나,  이렇게 거칠어서야, 완전 초록 수세미를 만지는 것 같았다. 누구는 부드럽다고 했고, 어떤 이는 먹을 만하다고 했는데, 부드럽고 먹을 만한 이파리는 아니었다. 이파리를 유심히 살펴보고 껍질을 벗겨 보고 어찌 해 보려고 했는데 포기를 했다. 온몸이 너무 가려워 왔고 손등이 둥둥 부어올라 왔다. 미련 없이 쓰레기통으로 버렸다. 나의 뜰 안에서 자란 단호박, 내가 만져 본 나의 단호박 이파리는 어찌 해 볼 수 없을 정도로 거칠고 억셌다.


그럼에도 작은 기대를 해 본다, 노란 호박꽃이 화려하게 피었다고 지고 난 자리에 단호박은 과연 열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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