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 갱죽을 알아요.
마음이 허할 때 콩나물 국밥을 끓입니다.
싱크대 깊숙이 박아 둔 된장 뚝배기를 꺼냈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하얗게 변해 있었다. 그런 뚝배기를 흐르는 물에 수세미로 뽀샤시하게 닦아주고 물을 가득 채웠다. 찰랑거리는 많은 물에 식초를 반 컵 부었다. 오래 묵혀 둔 미안함에 대한 나름의 소독법이라고 할까. 아무튼 나는 진심을 담아 뚝배기를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래도 들은 건 있어 주방세제로 씻지 않아야 된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렇게 식초 물에 세척을 한 뚝배기는 새로운 물이 채워져 불 위에서 바글 바글 끓이면서 한 번 더 소독을 한다. 매일 뚝배기에 된장을 끓이고 찌개를 끓이는 것으로 사용을 했다면 이런 수고로움을 덜었을 텐데. 뚝배기는 너무 무겁다. 불 위에 오래 두어야 한다. 특히 여름에는 주방에서 불을 오래 동안 사용하는 것을 줄이려고 노력하는 편이므로 가볍고 빨리 끓어오르는 냄비를 사용한다. 이런 저런 이유로 묵혀 두었던 뚝배기가 새로 태어나기에는 품(노력)이 많이 든다.
아침저녁으로 가슴까지 이불을 끌어 올려야 되는 계절이 와 버렸다. 아주 눌러 앉아 있을 것만 같던 뜨거운 태양도, 후덥지근하고 끈끈한 바람도 주춤해졌다. 뜨겁던 하늘은 곱고 잔잔하게 구름과 벗하며 흐르고, 강렬했던 태양은 눈부신 가을빛으로 바뀌었다. 가장 먼저 계절을 알리는 바람은 얼굴을 들어 행복하게 맞아 주어도 좋을 만큼 시원하게 내려앉았다. 이런 날, 계절과 함께 오는 것은 ‘또 한 계절이 지나가는구나, 찬바람이 곧 불겠구나 ’ 하는 나이 숫자만큼 일찍이 맞이하는 마음이다. 지난여름에 흘린 땀을 잊어버린 것처럼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신선한 바람 때문에 뜨거운 국물을 먹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육수를 미리 만들었어야 되는데 만들어 놓은 육수가 똑 떨어졌다. 뚝배기에 맹물을 담았다. 다시마 두 쪽을 담아 불 위에 올려 끓였다. 처음에는 강 불로 끓이다가 끓고 나면 중약불로 조절한다. 그리고 냉장고에 있는 콩나물을 꺼내서 씻은 후 물기를 빼고 끓인 다시마 물에 콩나물부터 넣는다. 그리고 순두부 반을 넣는다. 양파도 조금, 대파도 조금, 청양고추도 조금, 그리고 다진 마늘은 푹 한 숟가락, 그리고 새우젓을 넣어 간을 맞춘다. 더 매콤하고 알싸하게 먹고 싶다면 청양고추를 더 넣거나, 빨간 국물을 먹고 싶다면 고춧가루를 푹 한 숟가락 넣는다. 나는 맑은 국물이 먹고 싶었기에 고춧가루는 넣지 않는다. 그냥 다진 청양고추로 알싸하게 먹지만 먹을 때는 매운맛 때문에 갑자기 훅 들어 마시지 말고 조심해야 한다. 콩나물의 비린내가 없어지고 순두부도 푹 풀어지면 찬밥 반 그릇을 넣는다. 갓 지은 밥을 넣으면 죽처럼 퍼지기도 하지만 꼬들거리는 식감이 없기 때문에 갓 지은 밥보다는 찬밥이 좋다. 요즘 시판되는 햇반은 전자레인지에 데우지 말고 그냥 넣으면 된다. 그리고 밥 위에 달걀 하나 톡하고 깨뜨려 올리면 그야 말로 식당에서 사 먹을 수 있는 콩나물국밥이 된다.
나는 선선한 바람이 불면 왜 콩나물국밥이 먹고 싶은지 모르겠다. 콩나물국밥은 그 옛날 본가에서 많이 먹던 음식이다. 식구는 많고 매 끼니마다 큰 솥에 밥을 해도 항상 모자랐던 시절, 엄마는 늘 누룽지 아니면 콩나물 갱죽을 드셨다. 솥에 눌러 붙어 있는 밥에 물을 흥건하게 넣고 끓이다가 시루에서 노랗게 자란 콩나물을 한줌 넣어 휘휘 저어 끓여냈다. 뜨거운 콩나물 갱죽을 후르륵 마시면서 ‘아, 시원하다’ 고 하셨다. 그 뜨거운 갱죽을 부뚜막에 걸터앉아 마시면서 왜 시원하다고 하는지 그땐 몰랐다. 그때 그 시절의 엄마보다 나이가 더 먹어 보니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가 조금 된다. 그 시절의 내 엄마는 일상의 고단함을 갱죽으로 달랬던 거 같다. 엄마의 갱죽 한 그릇은 오로지 자신을 위한 음식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모두가 일터로, 학교로 떠나고 텅 빈 부엌에서 온전히 남아 있는 음식이 없었을 것이고, 이른 새벽부터 움직였기에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생각해 낸 것이 시간도, 비용도, 노력도 더 할애하지 않아도 되는 멀건 갱죽이었을 것이다.
불 위의 뚝배기는 넘칠 듯 말 듯 찰랑이며 팔팔 끓는 소리를 낸다. 눈 아래에서 하얗게 피어오르는 김(연기) 사이로 고소하고 매콤한 향이 후각을 자극하고, 나는 그 향에 취해 아련한 기억을 쫒아 추억팔이를 하고 있다. 내가 콩나물밥을 끓이는 날은 계절이 바뀌어 찬바람이 마음을 허허롭게 만들거나, 울컥 엄마가 몹시도 그리울 때, 그리고 우물이 마당 한 가운데를 차지하고 반질거리던 장독대 사이로 봉숭아꽃이 하나 둘씩 떨어지던 넓은 마당이 아련해질 때, 내가 뚝배기 속의 보글거리는 엄마의 마음을 닮아간다고 느꼈을 때 싱크대 앞에서 콩나물국밥을 끓이고 있다. 펄펄 끓는 국밥 한 숟가락에 콩나물 사이로 새우젓을 올려 후후 불어 크게 한 입 채우면 허허롭던 마음이 기억의 땀으로 채워진다. 그래, 계절이 바뀌고 바뀐 계절 탓으로 가슴 한 구석이 쏴 해지려고 할 때, 젊으셨던 내 엄마도 헛헛한 마음을 달래려고 즐겨 드시던 콩나물갱죽으로 마음을 달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