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묵은지
나이가 들면 그리운 것이 많아진다. 특히
입맛이 고향의 음식을 찾게 된다는......
예전에는 쳐다보지도 않았던 것들이 한해, 두해 나이가 들면서 그리워지는 이유는 뭘까? 즐겁게 달리던 작은 운동장. 꼭꼭 숨어라 외치며 숨바꼭질 하던 좁은 골목길. 가랑이가 찢어지도록 벌리던 고무줄놀이, 단발머리에 검정교복을 차려 입고 하교 길에 콩깍지 빼먹듯 들른 분식집의 납작 만두와 어묵. 그리고 ..... 그리고 말이지, 시큼하게 끓여 내던 엄마의 묵은지 김치, 짜글이인지, 찌개인지, 조림인지 알 수 없는 음식이, 겨울의 문턱에 들어 선 쌀쌀해진 날에 그리워지는 것은 왜일까? 그 시절이 그리운 것인지, 골목어귀에서 들리는 엄마의 목소리와 엄마가 만든 음식이 그리운 건지... 아마도 엄마가 보고 싶고 그리운 것이 음식에 투영된 것인지도 모른다.
엄마의 묵은지는, 허허 그 때 그 당시에는 무슨 김장을 그렇게 많이 해 댔는지, 물론 식구도 많았고 오고 가는 손님도 많았던 우리 집은 언제나 삼시세끼를 차리는데 밥상이 두 개는 기본이었고 어떤 날에는 네 개까지 펼쳐 질 때가 많았다. 우리 집은 왜 그리 손님이 많이 왔을까? 엄마의 김장은 다양했다. 배추는 기본이고, 무로 만든 동치미와 빨간 석박지, 쪽파로 만든 파김치. 아버지가 좋아하는 고들빼기, 경상도에서는 신냉이로 말하곤 했는데 신냉이와 씀바귀, 고들빼기는 뭐가 다른지 아직도 아리 송송할 지경이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김치가 고들빼기 라면, 자라나는 자녀와 조카들에게는 알타리 무라고 불리는 것으로 만든 총각김치이다. 엄마는 한 해의 겨울을 살기 위해 어마 무시한 김치를 담았다. 물론 김치 냉장고도 없던 시절에 마당 한 켠 작은 꽃밭에 웅덩이를 파고 장독을 묻고 그 단지 속에 다양한 김치를 담아 두었던 것이다. 얼마나 많은 김치가 들었는지, 그 해의 겨울을 보내고 봄이 되어도 김치는 계속 상 위에 올라 왔다. 새콤하고 시어터진 김치는 다양한 조리법이 곁들어지고 마치 지난날의 김치가 아닌 듯이 올라오는 일이 많아졌다. 엄마는 그 많은 식구의 밥상을 어떻게 세끼를 차려 냈을까.
몇 개월을 땅속 단지에 있던 김치는 마당 가운데 너른 수돗가의 대야에 담겨진다. 양념을 털어 내고 물에 헹구기를 서 너 번 한다. 소쿠리에 담아 물기를 쪽 뺀 후 김치의 꼭지를 설컹 잘라 낸 후 배추의 결대로 손으로 쭉쭉 찢는다. 한 잎 두 잎 손으로 다 다듬고 만지는 그야 말로 수작업이 되풀이 된다. 배추 한포기로 해결 날 일이 결코 아닌 양이 산더미처럼 쌓이고 한 나절이 지나면 물기는 어느 정도 정리가 되는 듯하다. 엄마는 배추의 물기가 빠지는 동안 마당 가운데 솥을 걸고 불을 지핀다. 그 당시의 최고의 조리기구는 곤로이었다. 석유를 넣고 심지를 올려 불을 지피는..... 가스렌지가 없었던 시절이라 그것도 추억이 되었다. 이 엄청난 김치를 볶기 위해서는 곤로가 감당이 되지 않는 듯, 나무를 넣고 불을 지피는 화덕(아궁이) 비스무리한 것을 설치했다. 그 화덕에 큰 솥을 걸고 참기름을 두른 후 찢어 둔 김치를 넣는다. 짜르르르르 참기름이 열에 의해 소리를 내면 엄마는 잽싸게 김치를 넣고 크고 긴 주걱으로 덖는다. 엄마 손은 무쇠 손인가 싶을 정도도 뜨거운 솥에 손을 집어넣어 김치를 이리 뒤적이고 저리 뒤집는 묘기를 보여 주곤 하셨다. 김치가 참기름에 어느 정도 볶아지면 펄펄하던 이파리가 어느새 숨이 죽어 소리도 내지 않고 얌전해진다. 그 당시에는 다른 양념을 갖가지 넣지 않아도 모두가 맛있다고 한 그릇 씩 퍼 담았다. 고작 넣는 것이라고 억센 들깨가루뿐인데도 말이다. 요즘이야 들깨가루가 곱디고운 가루이지만 그 때는 들깨를 집에서 갈아서 사용했기에, 껍질도 제대로 벗겨내지 않아 엄청나게 거칠었던 기억이 난다. 그 들깨를 볶은 묵은지에 넣었으니 목구멍으로 넘어 갈 때도 거칠었으리라 생각이 되는데 그 조차도 솥바닥을 빡빡 긁어 먹을 정도였으니 엄마의 반찬 인기는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고 생각이 든다.
엄마의 그 묵은지 반찬이 몹시도 그리워지는 계절이 되었다. 아니 나이가 되었다. 묵은지가 먹고 싶다고 말하면 별 생각 없이 하는 말을 종종 듣는다 ‘해 먹어, 김치로 해 먹으면 되지 어렵냐.’ 그런데 김치는 반드시 한 계절을 묵힌 김장김치이어야 한다. 김장김치의 양념을 어차피 탈탈 털어내고 씻어서 하는데 이 김치, 저 김치 똑 같은 거 아니냐고 말하지만 확실히 맛이 다르다. 또한 추억도 다르다. 나는 그렇다.
며칠 전 언니네에서 지난겨울의 김장김치를 3통을 가져왔다. 언니가 동생 와서 김치 좀 가져 갈래? 너가 안 가져가면 다른 사람 주던지, 버리던지 해야겠다고 했을 때, 난 빈 김치통을 들고 부리나케 달려갔다. 김치 세통을 가져 오면서 얼마나 뿌듯하던지, 그 날 이후로 난 볶아먹고, 지져 먹고, 쌈 사먹고, 찜 해먹고 온통 묵은 김치 파티를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이 맛있는 김치가 소싯적에는 왜 그리 싫었던지. 겨울이 지나고 새 봄이 오면, 햇김치를 만들어 먹어야 되는 계절이 도래했음에도 엄마는 묵은 김치를 없애야 되는 의무와 책임을 진 사람처럼 매 끼니마다 밥상에 올렸다. 모두가 맛있다고 밥 위에 올리고 비벼 먹는 중에는 난 그 특유의 냄새와 빛깔이 너무 싫었었다. 하긴 어린 초등생의 입에는 어른의 맛으로 물들이기는 어려웠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몹시도 그립다. 묵은지가 그리운 것인지, 엄마가 그리운 것인지, 아마도 둘 다 그리운 것이리라 엄마가 만들어 주는 묵은지가.
양념을 탈탈 털어내고 물에 샤워 한 김치는 다진 마늘과 참기름으로 거의 맛사지 하는 수준으로 범벅을 한다. 매실청, 굴소스, 까나리액젓, 후추 등 그 시절보다 들어가는 양념이 많다. 비닐 갑 낀 손으로 조물닥 조물닥 양념이 베이도록 주물러 주고 불 위에 올린다. 주걱으로 이리저리 뒤적이고 배추의 숨이 팍 죽어지면 뚜껑을 덮고 약한 불에서 뭉긋하게 끓인다.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냄비의 뚜껑을 열어 김치 한 줄기를 들어 올려 맛을 본다. 아, 배추의 질긴 이 맛. 그래 이 질감으로 먹는 거였지. 물이 조금 생긴 위에 들깨가루를 흩날린 후 덖어 준다. 국물이 짤박하게 되고 배추는 가루를 뒤집어 쓴 후 더 고소해졌다. 좀 더 고급지게 하려면 들기름을 한 두 숟가락을 올려 주면 크...그 향이 아주 끝내준다. 길게 찢은 묵은지를 밥 위에 올려 크게 한 입 물고 입이 터져라 씹는다. 질긴 질감의 배추는 씹을수록 고소해진다. 큰 그릇에 묵은지를 담고 가위로 쫑쫑 잘라주고 밥을 올린 후 들깨가루로 잘박해진 국물을 올려 슥슥 비벼 주면 묵은지 비빔밥이 된다. 그 위에 달걀 후라이라도 올린다면 완성 끝내주는 맛이 된다. 아련하게 떠오르는 유년시절의 그리움을 더듬어 만들어 본 묵은지가 그 시절에는 장독을 비우고, 허기를 채우기 위해 만들었다면, 지금 이 시절에는 그리움을 쫓고, 마음을 채우는 나의 힐링 음식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립다 그 시절이, 보고 싶다 내 엄마가.
내 엄마가 차려주는 묵은지 올려 진 밥상이 있는
골목길이 늘어진 집 마당에 서 있는
어린 나를 찾아 길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