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을 기억하는 일은 경험의 진실성이 있기 때문일까?
지난 시간을 기억하는 일은 경험의 진실성이 있기 때문일까? 이다.
- 석 달 만에 다시 만나 그들
차 안에서 맞이하는 햇살은 따끈하다 못해 뜨겁다. 창문을 열면 가을바람을 맞는 기분이 제법 든다. 하늘은 연하늘색 도화지를 펼쳐 놓은 듯 곱고 잔잔하다. 높고 푸른 하늘색에 하얀 물감을 듬뿍 찍어 맘 가는대로 칙 하고 던지듯 뿌려 놓은 듯하고, 손을 뻗으면 구름 솜사탕처럼 잡힐 것 같은 구름이 맑게 떠 있다. 오랜 만에 먼 길을 나선다. 석 달 만에 다시 그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 가을 하늘의 구름 마냥 둥둥 떠 흘러가는 듯하다. 지난 6월, 코로나 여파로 있겠지만 기관의 갑작스런 결정으로 언제 다시 만나자는 말도 못한 채 갑자기 수업이 중단되었다는 담당자의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잊고 있었다. 지난 시절동안 이런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이며, 다시 시작하는 일은 드물었기에 참여자들과 인사를 나누지 못한 섭섭함과 마무리를 짓지 못했다는 찝찝함이 있었지만 내 앞에 펼쳐진 일상의 일로 점점 기억 속에서 사라져갔다. 8월 말, 기관 담당자가 남아 있는 회기를 다시 한다고 했을 때도 나의 일정에서 진행 할 수 있는 날짜를 적어 서류를 보내면서도 약간의 의심(?) 내지는 설마 라는 의혹을 가지게 되었다.
그들을 만나러 가는 날은 가을 나들이를 가는 들뜬 기분이었다. 기관에 들어서서 체온을 체크하고 전화번호를 입력하고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 안내하는 선생님께 허락을 구했다. 그 사이 2층에서 참여자들이 우러러 내려 왔다. 그 중 한 분이 나를 알아보고 아는 체의 몸짓을 했고 좋아서 이리저리 돌아 다녔다. 또 다른 참여자는 반가움의 표시로 손을 잡으려고 했는데 코로나 인사법으로 주먹을 쥐고 부딪치는 인사를 했다. 나는 마스크를 착용했고 헤어스타일도 바뀌었는데 참여자가 금방 알아봐 주는 게 신기했고 눈물 나도록 고마웠다. 2층에서 내려온 참여자들은 다른 프로그램 이동 중이었는지, 안내 선생님과 다른 선생님이 빨리 가라고 안내를 하셨다. 그 자리에 내가 없어야 이들이 움직일 것 같아 2시에 만나자고 하고는 얼른 자리를 옮겼다. 내가 수업을 진행하는 공간은 이들이 밥을 먹고 간식을 먹는 식당이다. 이 기관에서 제일 넓고 익숙한 공간이며 물을 사용 할 수 있다. 한 테이블에 한 명씩 앉아 활동을 할 수 있으며, 공익요원과 생활교사가 테이블마다 보조해 줄 수 있는 환경이기도 하다. 나는 수업 시간 보다 30분 일찍 입실하였으며 담당 선생님이 조리도구와 식재료를 미리 셋팅해 두면 참여자가 앉을 자리를 정하고 테이블에 놓아둔다. 조리도구는 한 명이 사용 할 수 있도록 일인 일 조리도구를 지향하고 있으나 식재료는 소분하여 한 명이 사용 할 수 있는 양을 접시에 담아 둔다.
참여자가 입실하기 전에 미리 준비해 두어야 할 것이 있다. 오늘은 석 달 만에 만났다. 석 달이란 기간은 다시 처음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시 처음이라는 의미는 생판 모르는 상황에서 처음 하는 것과 몇 번이라도 해 봤던 것을 쉬었다가 다시 하는 재시작은 너무 다르다. 일단은 나의 긴장도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들은 한두 번 혹은 몇 번 해 봤기 때문에 긴장하지 않을 수 도 있기 때문이다. 활동 수준의 난이도를 낮추되 지난 시간을 기억하고 반복 할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물론 결과물이 흥미로워야 되고 맛도 기가 막히게 있어야 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흥미를 유발하여 남아 있는 회기에 결석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참여자의 입실이 확인 되면 인사를 한다. “오랜 만에 만났죠. 보다는 석 달 만에 만났어요.” 라고 정확하게 숫자로 표현해 주는 것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 보다 더 세심하게 배려한다면 “우리 6월 1일에 만났고 다시 9월 3일에 만났어요.” 라고 말하는 것이 더 확실하다. 이들은 추상적인 표현보다는 수와 양으로 알게 하거나, 직접 확인 가능한 것이면 더 효과적이기에 설명은 쉬운 것에서 시작하여 확장 된 설명으로 이어 질 수 있어야 했다. 그들도 고개를 끄덕이거나 손을 들거나 양손을 흔들고, 오랜만 이라고 짧게 표현하는 것으로 보아 오랜 만에 만나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듯 보였다.
지난 활동에서 만들었던 요리를 기억 할 수 있도록 무엇을 만들었는지 먼저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우리 지난 시간에 만들었던 요리 기억나는 대로 말해 보세요.” 물론 내가 먼저 이야기를 해 주었으니 그 기억을 더듬어 한 가지씩 기억하고 말을 이어 갔다. 손을 사용해야 하므로 위생교육과, 불과 칼을 사용하므로 안전교육을 진행하고 오늘의 요리는 무엇이며, 몇 개를 만들 것이며 준비된 식재료는 무엇, 무엇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이 해야 하는 활동에 대해 순서와 방법을 설명했다. 물론 그 설명으로 기억해서 해 내는 것은 아니지만 미리 알려 주는 것과 모른 채 강사의 지시대로 움직이는 것과는 다르기 때문에 계속 반복과 간단 설명으로 활동을 촉구해야 한다.
소스를 만들기 위해 파클과 양파를 다지는 활동은 참여자가 어려워했다. 피클은 너무 물러 흐느적거렸고, 물기를 제거했지만 그럼에도 물기가 남아 있어 칼질이 쉽지가 않았다. 마요네즈를 두 숟가락 짜는 것을 지켜 봐 달라고 지원 선생님께 부탁을 했는데, 참여자가 할 수 있도록 방법을 알려 주는 것이 아니라 마요네즈를 직접 짜 주고 있었다. “마요네즈를 숟가락으로 계량해서 담아 두기만 한다. 섞지 않아요.” 를 강조했지만 참여자들은 아주 여유롭게 숟가락으로 휘휘 저어 곱게 섞어 놓았다. 물론 그릇에는 소스 반, 물 반이 되어 있다. 여기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러하다. 참여자의 수, 그들의 특성 때문에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는 활동을 지원하는 선생님들이 함께 한다. 나는 참여자 모두를 지켜 볼 수 없으므로 지원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선생님, 여기 마요네즈 두 숟가락 담을 수 있게 지켜 봐 주세요.” 라고 도움을 청한다. 그러면 지원 선생님은 참여자가 마요네즈의 뚜껑을 열고 한 손에는 숟가락을, 한 손에는 마요네즈 병을 들고 짜는 것을 할 수 있도록 설명을 하거나, 지켜보면 된다. 참여자의 양손 협응과 조절이 쉽지는 않다. 그러면 숟가락은 그릇에 걸쳐 놓고 양손으로 마요네즈 병을 들고 짜 주면 된다. 이러한 방법을 앞서 설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참여자의 활동의 원활하지 못해 시간이 지체 된다고 생각해서 대신 쭉 짜 주는, 대신 활동을 해 주는 아름다운(?) 일이 벌어 진다. 참여자가 휴대용 버너를 사용하는 일도 쉽지는 않다. 나로서는 참여자가 칼을 사용하는 것보다 불을 사용하는 일이 더 긴장을 하게 만드는 활동이다. 달걀 후라이, 불고기 만들기에서 불사용 경험을 믿고 다시 시도를 해 보았다. 불안해하는 참여자가 있으면 용기 있게 버너의 콕을 내리고 스위치를 용감하게 돌리는 참여자가 있다. 무섭다. 불안하다고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버너의 콕과 스위치를 잡고 시도해 보려고 하는 모습에서 지난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3개월 만에 다시 시작한 참여자의 활동에서 그들은 지난 시간을 기억 하고, 경험이 몸으로 표현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해 보지 않는 일에는 서툴고 실수도 일어났다. 빵이 부서지고, 소시지가 잘려지고(부러지고), 치즈가 찢어지는 일이 일어났다. 그래도 나는 그들에게 “어머 왜 이렇게 했어요?” 웃음 지으며 맘 좋은 선생님의 얼굴로 멀쩡한(?) 식재료로 바꿔주지는 않는다. “치즈가 찢어졌어요. 다음에는 치즈는 도마 위에 올리고 비닐을 조심해서 벗겨 주세요.” 라며 한 번 더 있을 기회에 신중하게 집중할 수 있도록 한다. 본인이 직접 손질하고 다듬은 것으로 만들고, 처음의 실수 경험은 다음 활동에는 조심해야 한다는 것도 알게 한다. 참여자가 순서와 규칙을 지킬 수 있는 경험을 갖게 하고 지시에 따라 따라하거나, 혼자서 해 낼 수 있도록 지도한다. 그러나 대부분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거나, 한 대로 두기를 하지만 결과물이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많이 다르지 않으면 참여자가 직접 완성하도록 그대로 두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서툴고 느리고 완젹하진 않지만 그들은 지난 시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스스로 해 내려고 애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