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쯤 괜찮아질까요. 트라우마​

전문가의 길은 아직 멀었다.

언제쯤 괜찮아질까요. 트라우마



짜증, 분노, 발작, 폭력 그리고 상담, 치료 그리고 부모, 이러한 단어는 내가 만나는 내담자에게서 또는 양육자에게서 듣는다. 아침 9시에 부재중 통화 내역이 찍혀 있다. 매주 목요일에 만나는 선배의 전화였다. 우리는 이렇게 일찍 전화를 한 적이 없는데 무슨 일인가 걱정이 되어 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선배는 나의 전화를 기다린 것처럼 금방 전화를 받았다.


선배 : 선생님한테 전화하면 안 되는 것 알면서.... 물어 볼 이가 선생님 밖에 생각이 안 났어, 정말 미안한데. 정말 이런 상황에 누구한테 물어 봐야 되나 경험 있는 사람이 없어서.


선배의 서두는 길었다. 내가 선배의 말을 끊고 물었다. "무슨 일이 있어요? 아침부터 전화해서 좀 놀랐는데 무슨 일인지 본론부터 말씀하시면."


선배 : , 우리 센터에 오는 18세 여학생 알지, 그 친구 이야기야. 그 친구가 동생은 장애가 있고 사춘기를 하면서 분노, 폭력 등 감정조절이 안 되고, 다른 곳에 다니다가 소개로 나한테 왔는데 병원에서 우울 약을 처방 받기는 했는데 약을 안 먹는다고 엄마가 이야기하네.


: 그래서 원장님이 저한테 뭘 물어 보시는데요?


선배 : 이 친구의 언행을 봐서는 약을 먹어야 될 것 같은데 어떻게 약을 먹이지, 왜 자기 작은 아들은 약 먹었어?


: 우리 아들? 약은 받아 왔었지요. 먹는 날도 있고 안 먹는 날도 있고 나중에는 안 먹으려고 해서 자율에 맡겼는데(자율이라고하지만 안 먹으려고 하니 어쩔;;;). 안 먹는 날이 많았죠. 본인 거부하면 부모도 어쩔 수가 없더라고요. 몰래 먹일 수 있는 방법도 없고 어디에다 섞어서 먹일 수도 없고 아무튼 그랬어요.


선배 : 그 친구는 엄마만 잡는데. 엄마가 하는 목소리도 싫다고 하고 엄마 소리는 다 잔소리라 하고 집에 있는 것조차 싫다고 하는데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엄마는 잔소리 안한데. 애가 싫어하는 말은 안하고 애가 원하는 대로 다 들어 준다는데 엄마랑 이 친구 말이 다르니까 엄마는 엄마대로 힘들어 하고 아이는 아이대로 분노와 폭력이 나타나는 것 같은데.. 그런데 내가 요즘 에너지가 딸리네, 우리 하는 일이 에너지가 많이 소모 되잖아요. 막말로 이 친구를 만나고 나면 기가 빨린다고 해야 되나 아무튼 요즘 이 친구랑 수업하고 나면 좀 뭐랄까, 아무튼, 그래서 도움 좀 받을까 싶어 전화 했스,


: 그러게요 힘드시겠어요. 그런데 저도 요즘 회의가 들어요. 일주일에 한번 많으면 두 번 그것도 40, 50분을 만나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어떤 도움이 되는지, 요즈음 그런 생각이 들어요. 부모님들 이야기 들어 보면 자녀에 맞춰서 잘 하려고 한다고 말씀하시는데 그게 나도 부모이지만 쉬운 일은 아닌데 그 상황을 어떻게 잘 하는지 구체적으로 말해 보라고 하면 그게 또 하지 말아야 되는 말씀을 하고 있으니 그 조절이 쉽진 않죠.


선배 : 나 이러다가 선생님처럼 번아웃 될까 겁나기도 하고. 이 친구와 끝까지 가 줄 수 있을까 고민도 되고, 다시 병원으로 보내라고 해야 되나 선생님이 다닌 병원은 어때요?


: 다른 병원은 안가 봐서 모르겠지만 병원 다 그렇지 않나요? 약 처방이 우선인..., 병원 가면 의사가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요즘 어떻냐고 물어 보고 우울하다, 불안하다 성질이 난다 그러면 약의 강도가 달라지는 것. 그리고 2주 후에 다시 약 타기 위해 진료 예약하는 정도. tv에서 보는 것처럼 의사 선생님과 마주 앉아서 한 시간 동안 상담을 하는 근사한 모습은 아니던데요. 병원에서도 전문 상담사 만나서 상담 해보라고 권하는 정도.


선배 : 그러면 왜 그 병원을 다녔어요?


: 처음에는 종합 병원에 가서 예약하니 그 선생님이 담당이 되었고, 나중에는 그 선생님이 개원하셔서 서울로 나가게 되었죠. 다시 다른 병원이나 의사 만나서 전후사정, 내력 등 시시콜콜 이야기하기도 싫고 다시 검사하는 것도 번거롭고 그래서 멀어도 진료 했던 의사를 찾아 갔고, 나도 힘들 때 갔었죠. 이유는 그것뿐입니다.


나의 둘째는 중2가 되면서 사춘기를 겁나게 했다. 원인은 형아 때문(형아는 특수교육, 그 당시는 조기교육이었다) 이고, 엄마 때문이라고 했다. 엄마는 형만 알고 형아 위주로 돌아가는 집이 싫다고 했다. 그래서 중2때 학교를 그만 두었다. 일년만에 중고등을 검정고시를 봤다 (이것도 사연이 길지만...). 이 친구도 18세에 대학을 갔으니 지금 선배가 말하는 친구와 꼴이 같다. 그래서 선배는 나에게 경험담을 듣기 위해 전화를 한 것 같은데 뭐 딱히 해 줄 말이 없다, 우리 부부는 아이가 원하는 부분을 99% 수용하려고 노력했으며 아이가 지닌 분노와 짜증, 그리고 폭력성까지 감당해야 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자녀가 부모에게서 받은 소외감과 박탈감을 전적으로 해소시켜 줄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그런 감정을 가지게 된 계기가 가족 안에서 발생한 것이니 우리는 아이에게 용서를 빌어야 했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의 분노 표출이 최고 수위에 올라 폭력이 나타났을 때 무릎을 꿇었다. 엄마 아빠가 어떻게 하면 너의 이 감정이 조금이나마 풀릴 수 있을까 물어 보았다, 그랬더니 아이의 대답은 잘못을 빌라고 했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우리는 아이 앞에서 정말 미안하다고 무릎을 꿇었다. 자기 말에 무릎을 꿇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우리를 보고 아이도 놀랐다, 그렇게 문을 닫고 들어 간 아이는 몇 시간동안 나오지 않았고 우리는 무릎을 꿇은 채 문 앞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이 일이 있은 후 둘째는 조금 풀린 듯했다. 그러나 밀물과 썰물은 있는 법이다. 이러한 부모의 감정이 언제까지 갈 수 있는지 아이는 시시때때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했다. 새벽에 일어나 라면을 끓여 달라, 떡볶이를 만들어 달라, 캄캄한 데 축구를 하겠다, 야구를 하러 가겠다고 했다. 서로 서로 가장 예민한 부분을 건드리며 신경전을 벌렸고, 감정이 메마를 정도로 애를 태우며 삼년의 시간을 보냈다.


선배의 내담자 상황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부모가 바뀌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자기 점검, 자기 검열, 이런 표현이 적합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자리와 부모의 역할을 스스로 돌아보아야 한다고. 그 부모도 상황이 많이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두 자녀가 한명은 장애, 한명은 우울이니 얼마나 죽고 싶을까 마음이 쓰였다.


선배 : 자기가 와서 부모 좀 만나 보면 안 될까? 너무 힘든 부탁인거 같긴 한데 그 어머니 상황이 선생님 상황과 같아서. 도움을 받고 싶네.


: 그러게요. 그런데요 선배. , 제가 그 엄마를 만나면 제가 힘이 들 것 같은데요. 이제는 그 상처를 들쳐 내고 싶지 않은데요.


선배 : 그렇지. 알지 그 마음. 그 마음 알면서도 이 엄마가 너무 힘들어 하니깐, 미안해요.


: 제가 죄송하지요. 아직 프로가 아닌 가 봅니다. 제가 드릴 말씀은 그 엄마보고 아이와 있는 시간에 영상을 찍던, 녹음을 하던 아이와 어떻게 대화하고 지내는지 객관적으로 듣고 볼 수 있게 녹화, 녹음 해 보라고 하시고 같이 함 보세요. 아마도 아이가 엄마를 싫어하는 부분이 있을 거예요. 저도 그렇게 했어요. 나의 말투와 나의 행동이 둘째에게 어떻게 표현되는지는 자신이 알아야 되니까요.



이렇게 결론이 아닌 결론을 내고 통화는 끝났다. 나는 아직도 두 아들의 양육 과정에서 겪었던 상황에 대해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누군가 말했다. 아니 그 일로 인해 일을 하고, 돈을 벌면서 그게 트라우마로 남아 있으면 안 되는 것 아냐.” 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나는 그 동안의 경험으로 공부를 했고 일을 한다.(상담과 훈련을 받았지만, 아직 전문가의 자질이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 그런데 집단으로 부모교육을 진행 할 때는 진담과 농담으로 함께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강의에는 거부반응이 없다. 교육에 참여하는 부모들도 나의 강의에 들어야 될 것, 듣고 버려야 될 것을 선별하고 개인적인 면담 신청은 거의 하지 않는 편이다. 모두가 있는 곳에서 질문을 하고 답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한다. 그러나 이렇게 일대일로 누군가가 나의 지난 이야기를 듣고자 도움을 청하면 다시는 그 시간으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몸과 마음으로부터 요동을 치면서 거부 반응이 온다. 사무실에서 이루어지는 내담자와의 상담에서 경청과 공감은 사적으로 만나 나누는 이야기와 다르다. 어떤 자리에서 내가 있는지, 나의 위치 바로 잡기와 걸러내기가 다름을 알았기 때문이다. (상담이든, 이야기 나누기이든 나에게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이러한 나의 소심한 마음은 언제 넉넉해 질 것인지 나도 나에게 물어보고 싶다. 언제쯤 괜찮아질거 같니, 이 트라우마?























매거진의 이전글이불밖은 진짜 위험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