꽈리고추무침과 보고싶은 얼굴
먹고 싶다. 보고 싶다.
슈퍼에서 판매되는 많은 고추 중에 왜 잘 사지도 않는 꽈리고추를 집어 들었을까 싶다. 풋고추, 청양고추, 오이고추 등등, 그 중에서 청양고추와 오이고추를 주로 구입하는데 이날은 왜, 왜 꽈리고추를 집어 들었을까. 꽈리고추로 어떤 반찬을 만들어야 되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그렇게 구입 한 고추는 야채실에서 하루, 이틀..... 4일 동안 숨죽여 있었다. 다른 야채들 속에서 밀리고 밀려 안쪽 구석진 곳까지 들어 가 있어 까맣게 잊고 있었다. 일요일은 냉장고 정리하는 날이다. 냉장고 정리하는 날에 발견 된 꽈리고추. 다행스럽게도 싱싱했다. 꼭지를 따고, 물에 씻고, 비닐봉지에 넣어 밀가루 한 숟가락을 넣어 마구마구 흔들어 준다. 이 흔들림에 초록의 고추는 하얀 가루를 뒤집어 쓰고 뽀얀 고추로 변해 있었다. 딱히 이 고추로 무엇을 만들겠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기에 대개는 나의 경우에는 멸치 볶음에 넣거나, 어묵 볶음에 넣거나, 아니면 된장 끓일때 청양고추 대용으로 썰어 넣는게 이 고추의 쓰임이다. 그런데 토요일에 멸치볶음도, 어묵볶음도, 된장국도 다 끓였기 때문에 고추로 단독요리를 만들어 내야 했다. 깊이(?) 생각을 했다. 어떤 반찬을 만들어 내는데 이렇게 깊게 생각해 본적이 없는데... 말이다.
밀가루를 뽀얗게 뒤집어 쓴 고추를 찜기에 올려 쪘다. 하얀 밀가루가 투명해 지면 집개로 꺼내면 된다. 고추는 생으로도 먹기 때문에 살짝 쪄야 아삭한 식감이 살아 있다. 고추의 양이 많지 않기에 김이 나기까지 한 5분을 찐 것 같다 얼마 동안 찌느냐보다 생 밀가루가 아니면 된다.고추의 색깔이 초록초록하다. 뜨거운 김이 날아가도록 고추를 접시에 담는다. 고추가 식을 동안 양념장을 만든다. 고추가루 1. 다진 마늘 1/2. 간장 1. 맛술1/2. 설탕 1/2. 참기름 1/2을 넣는다. 고추에 양념장을 넣고 섞는다.통깨를 넣어주면 꽈리고추찜, 또는 꽈리고추무침이 완성 되었다.
늦은 시간에, 구입한 지 오래 된 꽈리고추를 무치면서 불현듯 든 생각이다. "엄마가 보고 싶다." 이 반찬은 엄마가 엄청 좋아하셨다.(그 땐 그렇게 생각했었다) 고소하고 알싸하고, 아삭한 ...고추 무침은 ...아득한 텃밭에서 허리 숙여 고추를 따고 커다란 다라이에 넉넉한 물을 받아 치마가 다 젖도록 씻고 고추꼭지를 따 냈다. 마당에 설치 된 화로에 나무를 넣고 큰 솥을 올려 대나무 시루를 걸쳐 밀가루를 뒤집어 쓴 고추를 수북하게 올려 쪄 냈다. 큰 다라이에 찐 고추를 넣고 양념장을 따로 만들지 않고 바로 고추에 고추가루, 간장, 마늘, 등등을 넣고 마지막에 참기름과 통깨를 착착 뿌려 무쳐 내던 고추무침. 그렇게 15명이 넘는 대가족의 한끼 반찬이 만들어졌다. 어린 시절 마루에 엎드려 마당에서 일하는 엄마의 굽은 등을 쳐다보곤 했다. 고추를 씻으면서 한 개 집어 맛을 보고, 시루에 쪄 내면서 찐고추를 입에 넣고 양념장에 무친 다음에 또 맛을 보고 반찬그릇에 담고난 후 또 먹고.... 엄마의 이 모습을 보고 어린 나는 "엄마가 고추를 좋아하나 보다"생각 했다. 모두가 식사를 마치면 엄마는 부엌 계단에 걸쳐 앉아 밥 담은 그릇 옆에 고추 무침을 몇 개 담아오로지 이것만 반찬으로 먹곤했다. 그런 엄마를 보면서 "엄마는 꽈리고추 무침을 무청 좋아하나보다."고 또 생각했다. 그때의 엄마 나이보다 더 든 나는 꽈리고추 무침이 맛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고추가 뭣이 맛이 나겠는가. 다 양념 맛이란 걸 알았다. 오이맛고추도 된장 맛으로 먹는 것이고, 꽈리 고추무침도 간장 양념장 맛이었다. 엄마는 고추를 다면서, 고추를 씻으면서, 찐고추를 보면서, 고추를 양념에 무치면서 왜 그렇게 먹었을까 생각했다. 아마도 하루종일 집일을 하면서 다른 간식거리가 없는 그 시절에 배가 고팠을 것이라 생각했다. 당신을 위해 무엇을 사 먹기가, 해 먹기가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하루 종일 힘들게 반찬을 만들면서 왜 골고루 먹지 않고 고추만 밥그릇 옆에 담아서 그것도 부엌에 쪼그리고 앉아서 먹었는지 엄마 나이가 되어 보니 그 마음을 알게 되었다. 땀에 젖은 허리, 물에 젖은 치마.그 사이에 바쁘게 움직이며 만든 엄마의 고추무침이 먹고싶다. 양념을 뒤집어 쓴 꽈리고추에 엄마의 얼굴이 길고 붉게 보인다. 나는 내가 만든 이 꽈리 고추무침을 먹기 힘들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