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고추무침이 먹고 싶다는 ...
#2022년
먹고 싶다. 보고 싶다.
슈퍼에서 판매되는 많은 고추 중에 왜 잘 사지도 않는 꽈리고추를 집어 들었을까 싶다. 풋고추, 청양고추, 오이고추 등등, 그 중에서 청양고추와 오이고추를 주로 구입하는데 이날은 왜, 왜 꽈리고추를 집어 들었을까. 꽈리고추로 어떤 반찬을 만들어야 되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그렇게 구입 한 고추는 야채실에서 하루, 이틀..... 4일 동안 숨죽여 있었다. 다른 야채들 속에서 밀리고 밀려 안쪽 구석진 곳까지 들어 가 있어 까맣게 잊고 있었다. 일요일은 냉장고 정리하는 날이다. 냉장고 정리하는 날에 발견 된 꽈리고추. 다행스럽게도 싱싱했다. 꼭지를 따고, 물에 씻고, 비닐봉지에 넣어 밀가루 한 숟가락을 넣어 마구마구 흔들어 준다. 이 흔들림에 초록의 고추는 하얀 가루를 뒤집어 쓰고 뽀얀 고추로 변해 있었다. 딱히 이 고추로 무엇을 만들겠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기에 대개는 나의 경우에는 멸치 볶음에 넣거나, 어묵 볶음에 넣거나, 아니면 된장 끓일때 청양고추 대용으로 썰어 넣는게 이 고추의 쓰임이다. 그런데 토요일에 멸치볶음도, 어묵볶음도, 된장국도 다 끓였기 때문에 고추로 단독요리를 만들어 내야 했다. 깊이(?) 생각을 했다. 어떤 반찬을 만들어 내는데 이렇게 깊게 생각해 본적이 없는데... 말이다.
밀가루를 뽀얗게 뒤집어 쓴 고추를 찜기에 올려 쪘다. 하얀 밀가루가 투명해 지면 집개로 거내면 된다. 고추는 생으로도 먹기 때문에 살짝 쪄야 아삭한 식감이 살아 있다. 고추의 양이 많지 않기 때문에 김이 나고 한 5분을 찐 것 같다 얼마 동안 찌느냐보다 생 밀가루가 아니면 된다.고추의 색깔이 초록초록하다. 뜨거운 김이 날아가도록 고추를 접시에 담는다. 고추가 식을 동안 양념장을 만든다. 고추가루 1. 다진 마늘 1/2. 간장 1. 맛술1/2. 설탕 1/2. 참기름 1/2을 넣는다.늦은 시간에, 구입한 지 오래 된 꽈리고추를 무치면서 불현듯 든 생각이다. "엄마가 보고 싶다." 이 반찬은 엄마가 엄청 좋아하셨다.(그 땐 그렇게 생각했었다) 고소하고 알싸하고, 아삭한 ...고추 무침은 ...아득한 텃밭에서 허리 숙여 고추를 따고 커다란 다라이에 넉넉한 물을 받아 치마가 다 젖도록 씻고 고추꼭지를 따 냈다. 마당에 설치 된 화로에 나무를 넣고 큰 솥을 올려 대나무 시루를 걸쳐 밀가루를 뒤집어 쓴 고추를 수북하게 올려 쪄 냈다. 큰 다라이에 찐 고추를 넣고 양념장을 따로 만들지 않고 바로 고추에 고추가루, 간장, 마늘, 등등을 넣고 마지막에 참기름과 통깨를 착착 뿌려 무쳐 내던 고추무침. 그렇게 15명이 넘는 대가족의 한끼 반찬이 만들어졌다.
어린 시절 마루에 엎드려 마당에서 일하는 엄마의 굽은 등을 쳐다보곤 했다. 고추를 씻으면서 한 개 집어 맛을 보고, 시루에 쪄 내면서 찐고추를 입에 넣고 양념장에 무친 다음에 또 맛을 보고 반찬그릇에 담고난 후 또 먹고.... 엄마의 이 모습을 보고 어린 나는 "엄마가 고추를 좋아하나 보다"생각 했다. 모두가 식사를 마치면 엄마는 부엌 계단에 걸쳐 앉아 밥 담은 그릇 옆에 고추 무침을 몇 개 담아오로지 이것만 반찬으로 먹곤했다. 그런 엄마를 보면서 "엄마는 꽈리고추 무침을 무청 좋아하나보다."고 또 생각했다. 그때의 엄마 나이보다 더 든 나는 꽈리고추 무침이 맛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고추가 뭣이 맛이 나겠는가. 다 양념 맛이란 걸 알았다. 오이맛고추도 된장 맛으로 먹는 것이고, 꽈리 고추무침도 간장 양념장 맛이었다. 엄마는 고추를 다면서, 고추를 씻으면서, 찐고추를 보면서, 고추를 양념에 무치면서 왜 그렇게 먹었을까 생각했다. 아마도 하루종일 집일을 하면서 다른 간식거리가 없는 그 시절에 배가 고팠을 것이라 생각했다. 당신을 위해 무엇을 사 먹기가, 해 먹기가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하루 종일 힘들게 반찬을 만들면서 왜 골고루 먹지 않고 고추만 밥그릇 옆에 담아서 그것도 부엌에 쪼그리고 앉아서 먹었는지 엄마 나이가 되어 보니 그 마음을 알게 되었다. 땀에 젖은 허리, 물에 젖은 치마.그 사이에 바쁘게 움직이며 만든 엄마의 고추무침이 먹고싶다. 양념을 뒤집어 쓴 꽈리고추에 엄마의 얼굴이 길고 붉게 보인다. 나는 내가 만든 이 꽈리 고추무침을 먹기 힘들 것 같다.
#2023년
나는 왜 좋아하지도 않는 고추무침을 만들까?
나는 내 손으로 다시는 고추 무침을 만들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가신지 일년이 되었고 나이가 들면서 생각나는 반찬이 어릴 적 엄마의 반찬이기 때문이다. 엄마는 왜 남의 식구들까지 데리고 있으면서 밥을 해 먹였을까? 굽은 허리, 늘어진 옷깃에 뚝뚝 떨어지는 땀방울을 쓱 ~ 훔쳐 내시던 손길을 잊을 수가 없다. 밥 먹는 식구가 많아서 엄마의 정지(부엌)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쯤, 누구나 해 봄직한 엄마처럼, 아버지처럼 살지 않을 거라며 그런 모습을 보고 자란 내가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었다. 그런데 하나뿐 인 딸은 닮고 싶지 엄마를 닮아가는 내모습에 흠짓 놀라고, 엄마의 손맛이 그리워지는 나이가 되어 버렸다.
다양한 꽃들이 넉넉치 못한 제 마음을 사로 잡았던 화려한 봄이 지나고, 여름의 더위가 온몸에 스멀거리며 기어 오를 때가 되면 마트에는 고추의 세상이 펼쳐진다. 적어도 내 눈에는 고추잔치가 펼쳐 진 듯하다. 작아도 작은 고추가 맵다고 했지. 맵기로는 뒤질세라 매대의 가장자리를 차지하는 청양고추가 있다. 그 옆에는 계절의 상큼함을 담은 오이맛 고추가 자태를 뽐내고 있다. 난 매운 고추보다 된장에 찍어 먹어도 좋고 된장에 무쳐 먹어도 상큼한 오이맛 고추를 주로 구입한다. 적어도 나의 구매 호감도에서 어느새 뒷방 지킴이가 되어 버린 일반 고추를 뒤로 하고 쭈그리고 짜글거리는 꽈리고추가 나오기 시작하는 계절이 돌아왔다. 요즘은 계절에 상관없이 입맛에 맞는 고추를 맘껏 구입할 수 있기도 하지만, 봄이 머물고 떠난 자리를 여름이 박차고 들어 오기 전에 제 눈에 띄는 쭈그리 꽈리고추를 보면 나도 모르게 손이 가게 된다. 그래서 오늘도 통 크게 두 봉지를 바구니에 담아 왔다. 사실 난 오이맛 고추를 된장에 찍어 먹는 걸 좋아한다. 꽈리고추는 밀가루에 버무리고 찜기에 쪄 내고 다시 양념장에 버무려 먹는 고추 무침은 좋아하지 않는다. 사실 꽈리고추를 밥상에 올리기까지 과정이 번거롭다. 씻고 밀가루옷 입히고 찜기에 찌는 동안에 간장, 고추가루, 마늘, 통깨를 넣어 양념장을 만들고 버무려야 하기 때문이다. 된장에 푹 찍어 먹는 오이맛 고추보다 꽈리고추 무침은 누군가의 수고로움이 아주 많이 기여해야 되는 반찬이다. 그래서 번거롭고 귀찮은 마음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데도 난 이맘 때가 되면 좋아하지도 않는 꽈리고추를 그것도 두 봉지나 구입한다.
꽈리고추 무침에 대한 아련한 기억이 장바구니를 채우고 있는 것은 엄마가 보고 싶다는 이야기이다. 나는 올해도 엄마가 만들어 주는 꽈리고추 무침이 먹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