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내가 먼저 말하지 않아서 다행이야.
1.
잘 챙겨먹지 않은 아침을 도니장국에 달걀 후라이까지 얹어 든든히 챙겨 먹고 커피까지 진하게 내려서 멍해지려는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중이다. 뜨거움이 목구멍을 타고 가슴을 찌르르 태우면서 내려 간다. '아, 오늘은 정말 가기 싫다.' 내가 왜 이런 결정을 한 건가. 갑자기 후회가 밀려 왔다. 나는 11월 첫 주부터 개인치료실에 다시 출근을 하게 되었다. 그 동안은 **기관에서 성인을 대상으로 집단수업을 진행했었다. 20년 전의 초심으로 돌아가 유아동, 청소년을 대상으로 1:1 치료수업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첫날, 첫수업에서 특별(?)하고 엄청난(?) 친구를 만나게 되면서 잊고 있었던 트라우마를 만나게 되었다. 한평 남짓한 치료실에서 나는 앉아 있고 그 친구는 탠트럼을 일으키면서 서성이는데...이런 상황에서는 나도 일어나야 된다는 것조차 잊어 버렸다. 이마와 등으로 흘러 내리는 식은 땀이 축축했고, 그 친구가 치료실 밖으로 튕겨 나갈 것을 걱정하는 것보다 당장 내가 먼저 치료실을 뛰쳐 나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속수무책으로 그 친구를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는 안타까움이 뒤섞여 40분이 지나갔다. 나에게 주어진 40분이 40시간이 되는 것처럼 길었고, 초심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나의 선택이 옳은 것인가를 곱씹어 보았다. 정신을 차리고 ... 나, 그럼에도 이 친구를 만나야 하는가? 그래 계속 진행해야 한다고 다독였다.(선생님이 아니면 누가 맡아주겠어요? 지금은 많이 좋아 진 거에요. 라는 말에 해 보겠노라고 생각을 바꾸었다.)
2.
일 주일에 한번 만나는 치료실. 이 친구를 만난지 두달이 지났다. 두달이라고 말하지만 학교 행사로 두 주를 빠지고. 정작 만난 횟수는 6번(회기). 시간으로 따진다면 4시간이다. 함께 보낸 4시간동안 '내가 그만 둔다고 해야 하나?'를 고민하고 또 고민했었다. 문제는 착석이 안되니 아무 일(?)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귀한 40분동안 그 친구의 행동을 관찰하고 분석해 보는 일만 이루어졌다. 서성일때는, 뜀박질을 할 때는, 소리를 지를 때는, 책상을 내려 칠때는, 나를 잡아 당길때는, 소변을 봐버릴 때는, 집어 던질 때는, 움켜 잡을 때는 ....이러한 행동이 나타날 때는 어떤 표현(의미)을 하고 싶은 건지, 무엇을 요구하는 건지 알아 볼 필요가 있었다. 이 친구가 표현하는 행동과 소리에는 분명 의미를 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런데 이 짧은 시간 동안 찾아 낼 수 있는 게 없었다. 어머니와의 상담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 집에서는 다 잘 해요." 였다. '그럼, 내 시간에만 이런가' 장애를 지닌 친구들에게는 다양한 환경을 경험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다양한 환경에서 만나는 문제 상황을 해결할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친구에게는 새로운 선생님과 환경에서 다른 수업이 이루어지기 보다는, 이 친구를 오랫 동안 살펴보고 치료한 선생님이 내 시간을 더해 지속적으로 봐 주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을 했다. 이 친구를 만날 때마다...무엇을 해 줄 수 없음에 대한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컸다. 내가 이 친구의 성장을 위해 해 줄게 없으니 종결한다고 말해야 하는데..... 입 밖으로 꺼내기가 어려웠다. (참으로 난감하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착석이 이루어지고, 짧게는 10초, 길게는 5분동안 유지되었다. 앉아서 활동이 이루어지다가 다시 일어나서 서성이거나 뛰고, 그리고 다시 앉아 주고. 물론 착석을 이끌기 위해,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내용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 이 친구는 색칠하기를 좋아한다. 그렇다고 본인이 직접하는 것은 아니고... 내가 해 주어야 한다. 색칠하는 활동지의 내용을 의자에 앉기. 수저로 밥먹기, 그림그리기, 화장실 가기, 이름 쓰기 등등. 이 친구에게 당장 필요한 일상의 역할을 그림으로 보게 하는 일이다. 물론 나의 입과 몸은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나와의 시간동안 좋아진 것은 짧게나마, 자주 자주 의자에 앉아 준다는 것이다.나의 손을 끌며 색칠을 하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이 친구가 나에게 요구하는 과정에서 나를 잡아 당기고 흔들고 던질 때는 너무 아파서 눈물이 핑 돌고, 험한 말이 나오려는 것을 꾹 참았다. 너무 아팠다. 손목에 멍이 들었다. 그렇게 3개월, 9회기, 시간으로는 6시간을 만났다. (내가 너무 바쁘게 변화와 성장을 꿈꾸고 있는 것을 아닐까?)
4.
다시 시작되는 2월의 수업. 그 친구가 종결을 했다. "그만둡니다 선생님" 이라는 문자에 양가감정이 일어났다..... '아, 잘됐다.' 는 마음과 '아, 이게 뭐지 그동안 내가 한 수업이 맘에 안들었나. 이럴줄 알았다면 내가 먼저 안한다고 할 걸.' 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지원을 받을 수 있는 서비스로 가시겠구나.) 그리고 마음을 가다듬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마음이 홀가분하십니까?' 나에게 대답을 했다. "이 친구, 어디 가더라도 어려움이 많을텐데,.. 어찌하나요?.' 걱정이 되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을 것 같다. 치료실에 들어 오기까지의 어려움, 입실해서는 비품을 던지고 망가뜨리고 , 나와의 몸씨름(?)을 하는 일, 인지, 학습, 행동, 미술, 언어, 놀이 등등 어느 한 가지라도 진행할 수 없었고, 착석과 착석유지가 될 수 있도록 지도 했지만... 그러던 중에도 40분 수업 시간동안 두번이나 소변을 봐 버린 일, 무엇보다도 함께 있는 시간이 가장 많은 보호자의 상담에서도 아이의 상황을 정확하게 들을 수 없었던 일이다.(내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일은 쉽지 않다.....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능력 부족이 먼저임을 자책하면서.. 오늘 하루 씁쓸하고 아쉽고 허전한 마음을 다스리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