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연히 알게 된 요리의 매력
2. 우연히 알게 된 요리의 매력
평범한 주부에서 학습지 선생님으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딛고
장애 보육교사, 치료사에 이르기까지
특수 교육과 다양한 치료 기법에 대해 공부를 하는 아줌마가 되었다.
내가 요리치료를 발견하게 된 건 결과적으로
자폐 성향을 보인 큰 아이가 있었기에 가능했는지 모른다.
큰 아이를 조기 교육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장애들, 장애를 키워 본 경험으로 장애아동의 마음,
행동방식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대처 요령을 잘 알고 있었다.
이러한 임상적인 경험과 했던 노력들이 바탕이 되었다.
내 아이의 조기교육에 힘 써 준신 정옥남 원장님,
재능기부로 장애아이들과 캠프를 끝난 후 장애아동을 통솔하고
효율적으로 다루는 것을 관심 있게 지켜보던 원장님이 나를 불렀다.
“창연이 어머니, 이번 기회에 장애 분야로 공부해 보시는 게 어때요. 잘 하실 거라고 봐요.”
아이를 키워 본 경험으로 장애 분야에 체계적으로 공부하라고 권유를 받았을 때,
“내 아이 하나 키우는 것만으로도 엄청나다. 이젠 그런 일 안하고 싶다고”고
두 번 생각할 틈도 없이 내뱉었었다.
그렇게 피하고 싶었던 게 장애 친구들을 만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얼마 후 이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보육교사 교육을 거쳐 사회복지대학원에 진학을 했다.
행동치료, 미술치료, 놀이치료 치료 레크리에이션 등을 배우게 되고 그것을 활용해 봉사활동을 했다.
원장님의 격려가 보육교사에서 만족하지 않고 나를 움직이게 하고 도전 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눈 맞춤이 안 되는 아이,
자해하는 아이,
대소변 가리지 못하는 아이,
걷지 못하는 아이,
마냥 울어대는 아이 등
중증 장애아동은 엄마도 힘들지만 교사들도 감당하기는 힘들기 마련이다.
보육교사 자격증은 장애 어린이집으로 이끌었고
보육이 아니라 치료교육을 진행해 나갔다.
중증 장애아들이 나와 함께 있으면 조금씩이나마 변화 되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자해를 하던 아이가 차분하게 자리에 앉고,
눈 맞춤이 되지 않아 전혀 모방도 되지 않는 아이가
“어..어...” “아..아...” “어마.....”“아바.....” 라고
입을 동그랗게 오므리고 눈을 맞추게 되었다.
아이들의 이런 모습에 희망을 걸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한동안 장애어린이집 보육 교사로 활동해 나갔다.
그런데 둘째가 사춘기를 맞이했다.
아 이것이 바로 질풍노도라 하는구나 .. 또 한 번의 위기를 맞았다.
나는 그렇게 아이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보육교사를 그만 두었다.
둘째와 시간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한 장애아 어머니가 우리 집에서 아이를 돌봐달라는 것이었다.
내가 어린이집이나 치료실에 보내라고 했더니,
아이가 적응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 복지관의 치료실을 꺼려한다는 것이었다.
집이라서 안정적이고 편안함을 유지 할 수 있을 것이라 안심하고 보낼 수 있을 것 같다며
꼭 봐달라고 거듭 애원했다.
하는 수 없이, 어머니에게 가족회의를 하고 나서 결정하겠노라고 말씀을 드렸다.
남편은 집안에 자신이 없는 시간이니 얼마든지 해보라고 했고, 두 아이들도 괜찮다고 찬성을 했다.
이렇게 해서 집에서 장애아동 치료실을 오픈 하게 되었다.
한 아이를 맡게 되자 다른 아이들도 봐 달라고 찾아왔다.
그래서 아파트 거실은 학부모님이 기다리는 대기실이 되었고 안방은 치료실로 꾸며지게 된다,
서너 명의 장애아동을 위한 특수 치료실이 꾸며지게 되었다.
예상했던 대로 내게 맡겨진 아이들의 수준은 매우 심각했다.
나는 치료사로서 다양한 아이e,f의 수준을 일일이 체크해 부모님들이 가정에서 지도하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다행히 아이들은 딱딱하고 생경한 교실보다는
가정이라는 익숙하고 친숙한 공간에서 거부반응 없이 잘 적응했다.
큰 소동 하나 없이 아이들과의 수업이 진행되어 갔다.
그 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장애아동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거실에서 두 어머니가 앉아계셨다.
수업이 끝나고 어머니들과 활동 후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상담 시간 이었다,
그 사이 남자 아이는 거실에 놓은 화초 앞에서 우두커니 서서 바라보다가 이파리를 뜯고 있었고,
여자 아이는 주방을 뒤지고 있었다. 여자 애가 눈에 들어왔다.
여자 애가 냉장고 문을 힘겹게 열더니, 안에 있던 달걀, 파, 우유, 식빵 등을 꺼내 놓았다.
그리곤 재미있다는 듯이 만지작거리더니 입에 가져다 댔다.
그 모습은 사실 특별한 게 아니었다.
종종 아이들이 내가 사다 놓은 찬거리가 어질러져 있는 주방에 가서 이것저것 뒤지고 만지고 먹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 날은 그 모습이 새롭게 와 닿았다.
나는 미술치료를 하고 있었다.
사실 미술치료는 아이들이 반응이 워낙 미비하기에 놀이에 가까운 것이나 다름없었다.
만지기 싫어하는 아동은 만지게 하고 마음대로 칠하는 아동은
크레용, 색연필, 연필, 물감 등 재료를 바꿔서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하는 작업이었다.
치료사로서, 미술치료, 행동치료, 인지치료 등으로 아이들을 가르쳐왔지만.
하나 같이 ‘치료’라는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아이들 입장에서는 딱딱하게 비추어질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싫증을 내지 않고 교육과 치료를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해왔다.
이 아이들은 정상아가 아닌 장애아동이다. 그런데 이들의 특수성을 무시하고,
어떤 치료가 좋다더라, 어떤 치료가 효과를 보인다더라 등
넘쳐나는 치료 프로그램을 들이대는 게 마땅한가? 하는 문제의식이 싹트고 있었다.
실제로 만지기를 거부하는 아동에게는 손에 묻는 거, 억지로 무엇을 하게 만드는 일,
작고 답답한 치료실에서의 치료 교육을 거부하는 사례도 종종 있기도 했다.
그런 내 뇌리에 불꽃이 튀었다.
주방에서 요리 만들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시작은 작은 것에서 출발했다.
작은 방에서 이루어지는 치료교육이 아닌 거실과 주방으로 이어진 넓은 공간의 주방에서
커피 믹스와 잔 그리고 뜨거운 물을 식탁 위에 올려 놓고,
‘엄마에게 커피 끓여 주자’
하고 말을 건넸다.
그랬더니 아이들 반응이 너무나 좋았다.
중증 장애아에게 결과를 바라고 무엇을 시킨다는 자체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내가 이끄는 대로 작은 손으로 주전자에 물을 받아서 스위치를 눌러 끓이고,
커피잔에 커피 믹스의 봉지를 가위로 잘라서 커피 잔에 넣은 후, 뜨거운 물을 넣는 데 성공했다.
그리곤 ‘엄마, 엄마’하면서 커피 잔을 들고 거실에 있는 어머니에게 다가갔다.
엄마는 놀라는 표정이었다.
항상 옆자리에서 음식을 먹여줘야 하고 챙겨 주어야 했던 아이가 자신에게 커피를 타왔기 때문이다.
커피 끓이기 성공은 라면 끓이기,
샌드위치 만들기 등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 위주로
장애 아동과 함께 하는 주방에서의 요리 만들기는 효과와 반응은 놀라웠다.
믹스커피 끓이기 시작해 볼까요?
➀전기주전자에 물을 담아요.
➁플러그를 콘센트에 꽂아요
➂주전자의 스위치를 눌러요
➃커피잔을 커피 받침에 올려요
➄커피 봉지를 가위로 잘라요
➅커피를 커피잔에 부어요
➆끓인 물을 커피잔에 부어요
➇숟가락으로 저어요
➈엄마에게 가지고 가요
TIP ...
장애아동이 활동 할 수 있도록 세부적으로 단계를 나누어요.
아동의 연령에 따라 쉽고 재미있는 단계부터 수행 할 수 있도록 해요.
예를 들어
6살 유아는 봉지 커피를 가위로 잘라 커피 잔에 넣는 것부터 시작 해 보아요.
에세이- 먼 길 돌아 여기 서 있네 : 권 명 숙
http://cafe.daum.net/cooktherap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