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이를 낳고 키우는 동안 나는 많이 늙었다.
주관적으로는 수술까지 할 정도로 망가졌던 허리 빼고 뭐든 쌩쌩한데, 겉으로는 영 늙어 보이는 모양이다.
한 번은 큰아이 다섯 살 때 유치원 여자 친구가 축복이네 할머니냐 물었는데 엄마라는 내 대답에 자뭇 심각한 표정으로 이런 조언을 해주었다. "화장을 하고 다녀보세요."
또, 둘째 어린이집 가는 길에 꼬부랑 할머니가 둘째와 나란한 나를 번갈아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할머니랑 나왔네."
할머니에게 할머니란 소리를 듣게되고보니, 보통 늙어 보이는 게 아닌 듯싶다.
이런 일도 있었다. 나보다 아홉 살 어린 사촌 여동생과 각자 아이를 데리고 길을 나섰는데 처음 보는 한 어르신에게 사촌 여동생의 어머니냐는 소리도 들었으니 이만하면 나의 늙음을 걱정해야 되는 것인가 싶을 정도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도 이런 에피소드를 전하면 반응이 똑같다.
"어머~ 어떻게 해요."
나의 늙음을 한 명쯤은 부정해줄 줄 알았는데, 어머 어떻게 해요는 수긍이 된다는 뜻이 아닌가. 그러면서 지인들은 염색이나 다이어트, 화장과 같이 젊어 보이는 방법을 안내하며 나의 노화를 위로한다.
정말 내 늙음은 위로받아야 할 것이며
또, 젊어 보이는 방법을 강구해야 하는 것일까.
그것은 마치 나의 늙음을 후회하지 않느냐는 질문처럼 다가온다.
정말 나는 너무 늙어버린 나를 후회하고 있나.
그 길을 걸어온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나.
아이를 낳는 것이 나의 살과 피와 뼈를 공유하는 것인 줄은 임신을 해놓고도 자세히 알지 못했다.
출산 후에 면역력부터 체력까지 모든 게 주저앉듯 내려간다는 것도 몰랐다. 아이를 낳고 난 뒤에야 내 젊음과 건강을 아이와 바꾸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둘째를 낳을 때는 더 나이가 들어 회복은 더욱 어려웠다. 남편이 출근한 동안 두 아이를 혼자 돌보다 허리가 터져 한 달을 누워있으면서 육아의 고되고 외로운 길 속에서 내 몸을 돌보는 것이 중요하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나는 그렇게 스스로 젊음을 아이들에게 양도하고
건강을 내어주며 양육하고 있다. 어느 엄마인들 그러지 않겠냐만, 첫아이 둘째 아이 모두 너무나 늦게 낳다 보니 출산 후의 회복이 먼 일이 돼버렸달까.
써놓고 보니 거창 하지만 내 젊음을 주고 소중한 아이들을 얻었으니 어찌 노화를 후회할 것인가.
다만 노력이 부족한 부분이겠지.
이 지난한 자기 합리화의 결론은 결국
건강관리라는 말로 포장된 다이어트가 아닌가 싶기도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