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어린이집 가기 싫다는 둘째 데리고 친정에 갔다가 나의 막냇동생 아기 시절 사진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당시 동생에게 주어진 병명은 선천성 심장이상, 그리고 다운증후군.
태어난 당시 작은 산부인과에서는 전혀 몰랐다가 한 달이 지나도 가라앉지 않던 황달 증세로 몸의 기미가 심상치 않은 것 같아 대학병원에 갔을 때야 비로소 그가 나면서부터 병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내 나이 열네 살 때 병원에 따라갔다가 발바닥 찢어 피검사를 하는 의사를 보고 엄마가 "그 어린애 발바닥을 그렇게나 많이 찢냐."라고 울부짖었던 모습은 아직도 내 머릿속에 남아있다.
장애를 이유로 포기하라던 의사의 선고에 엄마는 모성의 의지로 거부했으며, 나는 그 거부가 아이의 미래를 의사 개인의 기준으로 포기할 문제는 아니라는 한 인간의 윤리적 외침이라고 생각한다.
생명이 위태로워서가 아니라 장애와 합병증 때문에 살아도 제대로 산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부모에게 생명포기를 권한 그 의사에 대한, 지극한 모성의 발로에서 또 인간의 기본권을 지키고자 하는 숭고한 본능이 엄마에게서 "나는 포기못합니다. 이 아이가 생명이 끝난다고 해도 차디찬 병원이 아니라 내 품에서 떠나보내겠습니다."란 외침을 끌어낸 것이라 여겨진다.
일주일간의 회유와 강권 속에 막내는 한달여의 입원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입원 전에는 혼자 힘으로 젖병을 빨던 아이가 퇴원 후에는 그 힘도 없어서 숟가락으로 떠먹여주어야 했다.
그렇게 살린 아이가 바로 막내동생이다.
엄마는 의사 보란듯이 아이를 살려냈고, 막내도 남들 길때 기고 설때 섰고 걸을 때 걸으면 제 몫의 발달을 해내었다.
친정에서 본 사진은 그 시절의 기록이다.
얼마나 사랑받으며 자랐는가 하는 내용이며
또 얼마나 살리고자 애썼는가에 대한 증거이다.
의사는 그 아이에게 미래가 없을 꺼라고 단언했지만 지금 서른이 된 그 아이는 매일 첼로 연습을 하면서 일주일에 세번쯤은 취미생활인 트롯트 부르기를 위해 노래방을 혼자 찾아가며 인생을 나름대로 즐기며 살고 있다.
그러니까 누가 어떤 이유로든 생과 미래를 재단하고 단정지을 수는 없는 것이다.
흔들릴 필요도 없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태어났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