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외도. 그래서 나는 법정에 섰습니다.]-19화

양육환경 조사 보고서

by 첩극



토요일 오전, 아이와 문화센터에 다녀오고 점심을 먹은 뒤 키즈카페에 갔다.


“아빠 이거.”

아이는 조립해야 하는 장난감을 하나 건네 주었다. 자기가 다른 거 하고 있는 사이에 만들어 달라는 뜻이다. 머릿속이 편안하지 않아 집중이 잘 안되었다.


요새 장난감이 이렇게 어려웠나? 나 어렸을 때 조립 잘만 했던 것 같은데. 끝내끝내 완성은 했지만 아이가 다른 것에 집중하고 있어서 완성했다는 말없이 아이를 멍하니 보고 있었다.


조립 장난감을 가지고 아이랑 놀아주면서 미안하게도 집중하지 못했다. 용인에 간다고 해서 상간남을 만난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아내는 상간남과 헤어졌다고 했었고 생각해보니 용인엔 아내의 다른 친구도 있어서 간 적이 몇 번 있었다. 누구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전에 아이도 데려갔었고 거기서 그 친구랑 찍은 사진도 보여줬었다.


이제 좀 마음이 편하다.



용인에 다녀온 아내는 생각보다 일찍 왔다. 아이와 저녁을 먹고 있을 즈음 도착한 것으로 기억한다.

아내는 고생했다며 아이를 씻기고 셋이서 같이 놀다 아이랑 자겠다며 들어갔다. 소파에 누웠지만 마음이 편치 않다.



결국 이 패턴의 반복이다.

또 상간남을 만나나 의심하고, 어차피 이혼할 건데 그 의심은 왜하며 왜 아직도 분노하는 것일까. 어차피 머지않아 이혼인데.

아이는.. 아이를 생각하면 또 마음 한구석이 짓눌리고 설명하기 어려운 우울감이 몰려온다.


아마 한 달이 넘어서야 왜 블랙박스를 확인하지 않았을까 싶어서 찾아봤었다. 하지만 이미 저장된 데이터는 다 최근 걸로 덮어진 후였다. 아쉬웠다.




오늘은 조사관이 가정방문을 하는 날이다.

다행히 오후 늦은 시간에 잡혀서 반차를 쓰고 아이를 하원 시켰다. 아내 역시 반차를 쓰고 집을 청소해 두었다. 아이에게는 오늘 어떤 아저씨가 오는 데, 선생님이라고만 말해 두었다.


조사관이 도착해서 집안을 둘러보고 사진을 찍었다. 아이는 놀이방에서 놀게 잠깐 두고 앉아서 이야기를 했다. 정확히 어떤 이야기들인지 기억은 안 나는데, 현재 유치원과의 거리, 집 근처의 초등학교 그리고 어떤 식으로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지에 대한 이야기였던 것 같다.


아내가 먼저 방에 들어가서 아이랑 노는 모습을 보고 (문을 열어둔 상태), 그 다음으로 내가 아이와 노는 모습을 보셨다. 마지막으로 아이와 둘이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해서, 우리는 직접적으로 묻지 말아달라고 재차 요청 드렸고 알겠다고 하셨다.


면접조사관이 얼마나 아이방에 있었는지, 실제로는 긴 시간이 아니었지만 체감상 정말 길었고 불안했다. 아이의 대답보다, 혹시라도 조사관의 질문에 아이가 무언가를 눈치채고 감정이 불안정해지지 않을까 걱정이 더 컸다.


잠시 후 나오셨고, 곧 보고서가 판사에게 제출되고 우리도 볼 수 있다는 말을 하고 가셨다. 아저씨랑 뭐했냐는 물음에 가족 그림을 그려달라고 했고 다른 건 기억이 안 난다는 대답을 했다. 다행히 아이는 모르는 눈치였지만 그 날은 아이에게 미안해서 더 열심히 놀아주었다.




회사에서 회의 중 출장 이야기가 나왔다.

지난 첫 재판쯤 출장간 것 말고는 최대한 출장을 미루고 있다. 2개월 기준으로 2-3주는 보통 출장을 다녔는데 다행히 신임 대표이사가 비상경영을 시행하는 바람에 해외는 임원진 출장이나 비상 이슈 말고는 모두 화상미팅으로 변경하라는 지시가 있어서 가능했다.


상무님이 이번 상반기 실적이 괜찮으니 비상경영 중임에도 고객사 관리 차원에서 한 바퀴 돌고 오라고 지시하셔서 어쩔 수 없었다. 출장을 가야 한다는 것이 확정되자 불안이 요동쳤다. 트라우마가 올라와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심장이 마구 뛰고 어떻게든 안 갈 방법을 강구했다.


결국 바람과 달리 일정은 정해졌고 다행히 2개 국가만 가기로 해서 10일 정도만 다녀오는 걸로 확정되었다. 그 사이에 별 일이 없길 바라야지.




가사조사관의 보고서가 올라왔다는 변호사의 연락이 왔다.

변호사가 보내준 파일을 조심스레 열어보았다. 총 10장의 보고서였고 상단엔 [양육환경조사보고서] 그리고 사건번호와 원고 피고, 사건본인이라는 단어 옆에 아들 이름이 적혀 있었다. 아이를 법원에서 부르는 법적 호칭이 사건본인 이라는 것이 미안했다.


2페이지에는 당사자 인적사항이 적혀 있었는데 나와 아내의 칸이 원고 피고로 구분되어 생년, 직업, 최종학력, 혼수별 (초혼/재혼유무), 결연별 (연애 N년)이라고 적혀 있는 걸 보니 연애에서 결혼까지 걸린 기간을 적은 것 같았다.


별거기간은 같이 살고 있기에 ‘-‘으로 표기 되어있고 사건발생 원인은 나는 ‘피고의 부정행위 부인’ 아내 칸에는 ‘부인’이라고 적혀있다. 직계존속으로 부모님의 생년이 써 있고 직계 비속으로 남 1명 여 0명. 마지막으로 자녀양육안내 소감문을 적힌 날짜가 적혀있다.


중요한 건 3페이지 부터다.



3. 당사자의 주장

이라는 소제목으로 원고와 피고의 친권 및 양육권, 면접교섭, 양육비에 대한 서로의 주장이 적혀있고 그 밑으로 현재까지의 양육상황이 적혀 있었다.


아래로 양육환경, 면접교섭 및 양육비 이행사항, 양육계획들에 대해 각자 주장했던 것들이 적혀있고 9페이지가 되어서야 출장조사 결과가 있었다. 현재 집의 주소와 위치, 그리고 평수,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까지의 도보거리 등과 주변 환경에 대해 적혀 있었다. 그리고 거주지 사진들이 몇 장 붙어있다.


변호사를 통해 들었지만 아쉽게도 그 밑의 가사조사관의 의견은 나오지 않았다. 판사에게 가는 보고서에는 가사조사관이 위 원고, 피고의 의견과 방문조사 그리고 최종적으로 양육권을 누구에게 주는 게 적합할지 조사관의 의견이 있다고 했는데 변호사도 볼 수 없다고 했다.


어쩔 수 없지.




가사조사관의 방문이 끝나자 큰 산을 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같이 살고 있지만 이혼이 이제 실감이 된다. 이렇게 사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구나.


어느 날 갑자기 아내가 요새 여자 만나냐고 물어봤다. 잠깐 당황했지만 짧게 만난 사람과의 관계가 끝난 상태였기에 의연하게 넘길 수 있었다.


“누굴 만나든 말든”


시큰둥하게 대답하고 넘겼다. 본인도 변호사랑 연락을 하고 있을 테니 지금 내가 누굴 만나도 재판에 영향이 가지 않는 다는 것은 알 것이다.



며칠 뒤 아내는 금요일에 회식인지 약속인지 있어서 술을 마시고 들어왔고 아내가 돌아온 시간에는 이미 아이를 재우고 티비를 보면서 위스키를 한 잔 마시고 있었다.


보통 현관 옆에 있는 드레스룸으로 가서 바로 옷을 벗는데 그 날은 가방만 두고 나오더니 소파 내 옆자리에 앉았다.


술기운이 올라오는지 푸-푸- 거리면서 숨을 쉬는데 지금 내가 술을 마시고 있음에도 술냄새가 풍기는 게 짜증이 났다. 어떤 마음으로 짜증이 났는 지는 잘 모르겠다.


아내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렇다고 눈을 감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나를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많이 마셨어?”


걱정이 되서 물어본 건 아니다. 내일 아내가 아이를 데리고 나가기로 한 날이라 지장이 갈까 싶어 물어본 것뿐이다. 우린 이미 남보다도 못한 사이니까.


아내는 취한 얼굴로 소파에 등을 기대더니 천천히 고개를 내 어깨 쪽으로 기울였다.


“안아줘”


갑자기 아내가 안겼다. 나는 감싸지 않았고 아내 혼자 나에게 안겨 있었다.

태연한척, 건조한 척했지만 이 땐 잠깐 사고가 멈췄던 것 같다.

그러다가 얼굴을 들어 나를 보는데, 술 때문인지 아내의 눈이 살짝 풀려 있었다.


‘왜 그렇게 바라보는 거야? 왜 연애할 때처럼 바라보는 건데.’


곧 아내 입에서 믿기 힘든 말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