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부자 여행
퇴근하고 집에 와서 아이랑 놀고있는데 아내가 들어왔다.
아내는 내게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이를 재우고 나와서야 처음으로 입을 떼었다.
“그걸 녹음했어? 무섭네 당신.”
이걸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정말 무서운 건 당신인데.
고민하다 결국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서로 서면을 제출한 날이나, 재판일 혹은 가사조사관과 대면하는 날에는 특히 아내가 날카로워지고 나는 또 숨이 막힌다.
언젠가 변호사에게 물어봤었다.
집에 있기가 너무 끔찍해서 같이 있고 싶지가 않다고.
당시 변호사는 내가 집을 나가면 양육권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혼소송이 진행된 지 반년이 넘어서도 같이 살 줄은 몰랐나 보다.
지금의 우리 모습이 이혼소송하는 가정의 일반적인 모습이 아니라고 했다.
“엄마 화났어?”
아내가 드레스룸 문을 쾅 닫고 들어가서인지 아이가 물어봤다.
“아니야, 실수로 문을 세게 닫았나봐.”
아이는 다시 기찻길을 만드는데 집중했다.
어느덧 휴가철이 되었다.
회사에서는 팀원들끼리 서로 휴가를 덜 겹치게 가려고 스케줄을 조정중이었다.
감사하게도 팀원들은 내가 내년 초 주재원 파견이 예정 되어있다는 이유로 한국에서 보낼 마지막 휴가기에 최우선권을 주었다.
아이는 엄마아빠와 함께 가길 원했지만 아내는 원하지 않았다.
나 역시 불편했지만 마지막 가족 여행이 될 수도 있기에 잠깐 갈까 고민했으나 아내의 “난 아이랑 따로 갈 거야.”라고 단호하게 말한 바람에 마음을 접었다.
아이와 나,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 가야겠다고 생각해서 가족 단톡방에 회사에 이야기한 휴가 날짜를 공유하고 같이 갈 수 있는지 여쭈어봤다. 아직 여행지는 정하지 않은 상태였다.
아쉽게도 부모님은 이미 외갓집 형제 자매들과 하와이 예약을 해놨다고 하셔서 알겠다고 했는데 아버지에게서 따로 연락이 왔다.
아버지는 손자와 같이 가고 싶다고 하셨다.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아버지의 로망 중 하나가 몽골에 가는 것이라는 것이 생각나서 검색을 해봤다.
도저히 아이를 데리고, 거기에 아버지를 모시고 자유여행으로 갈 엄두가 나지 않아 패키지로 마음을 먹었다.
비행시간도 세시간 반 밖에 안 걸려 아이한테도 부담이 없을 것이다.
아버지께 전화로 몽골 어떠시냐고 여쭤보니 너무 좋아하셨다.
바로 괜찮아 보이는 4박 5일 패키지를 예약했다. 우리만 가는 단독 패키지이고 한국어 가능한 가이드에 기사가 함께하는 일정이다.
마일리지로 비즈니스 업그레이드가 가능했는데, 비즈니스가 남아있는 좌석이 둘 밖에 없었다. 아버지와 아이를 태우려했는데 아버지가 본인은 이코노미 타겠다고 하셔서 아버지만 이코노미 타는 걸로 가면 마음이 좋지 않을 것 같아 그냥 모두 이코노미를 타는 것으로 했다.
아버지가 하와이를 포기한 만큼 좋은 여행이 되길 바라며 준비했다.
몽골 여행은 정말 좋았다.
아이가 기억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도 너무 좋아했다. 여행기간 말, 낙타, 소를 타고 모래 썰매도 탔다. 가이드 분도, 기사님도 친절했다.
가이드는 삼부자를 가이드 하는 건 처음이라며 멋지다고 해주셨다.
몽골 여행을 큰 걱정 없이 진행할 수 있었던 이유 중에 하나가 아이가 양고기를 잘 먹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혹시 아이가 입에 안 맞을 것을 대비해 여러가지 간단한 식품들을 챙겨갔는데 쓸 일이 없었고 잘 적응하는 아이에게 고마웠다.
돌을 구워서 양고기를 삶는 허르헉을 먹을 때는 갑자기 아내가 생각났다.
아내는 요리만화를 참 좋아했는데 어떤 만화의 허르헉 편을 보고 이거 먹고 싶다고 아이가 크면 몽골에 여행가자고 몇 번 말한 적이 있었다.
매일 밤 다른 지역의 게르로(몽골의 전통 가옥) 옮기며 긴 시간을 차에 있으면서도 아이는 불평 한 번 하지 않아 고마웠다. 차를 리무진으로 요청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밤마다 수없이 펼쳐진 별들의 향연을 보며 아이에게 별자리를 설명해주었다.
밤에는 아이를 재우고 게르에서 아버지와 간단한 안주와 함꼐 몽골 술을 마셨다.
아버지는 매일밤 주무시기 전에 너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라는 말을 하시고 잠에 드셨다.
여행에서 돌아오고 아이는 며칠동안 밤에 몽골여행한 것에 대해 이야기하다 잠들었다.
옆에서 누워 나를 바라보고 재잘거리다 잠드는 모습이 너무 예뻤다.
너에게 다양한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이렇게 됐어도 최선을 다할 게.
며칠 뒤 아내가 아이를 데리고 휴가를 갔다.
회사에서 밀린 일도 일이지만 중요한 일이 있었다. 재산분할표를 작성해야 했다.
아파트의 잔여 대출액은 작성기준이 아닌 내가 소장을 제출한 시점으로 작성해야 하기에 당시의 잔여 대출액을 찾고 기입했다. 마찬가지로 소장을 제출한 시점의 내 계좌들의 금액을 찾아 기입했다. 지금은 Draft로 작성하고 후에 은행정보 요청한 것의 회신이 오면 해당 날짜를 찾아 수정해야했다.
시중 은행과 보험, 주식업체에서 보낸 회신은 서로 볼 수 있었다. 3년치인지 5년치인지의 기록에대해서 다 나온다. 첫 장에 어떤 곳은 딱 해당날짜에 맞춰 금액을 기입해주었고, 어느 은행은 그런 것 없이 전체 리스트를 보낸 곳도 있었다. 또 어느 은행은 소장 제출한 시점이 마지막이 아닌 현재까지의 모든 리스트를 보내기도 했다.
그래서 아내가 회사에서 받은 보너스 금액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내의 회사는 회계연도 마감일이 달라 보너스가 5월에 나왔다. 5월이라.. 한창 아내가 나한테 생활비 안보내서 적금 깨야한다고 빨리 보내라고 재촉하던 시점이었다. 역시 아내는 이번에도 작은차 한 대 값을 상여로 받았었다.
당시에 변호사비를 할부로 낸 바람에 아내에게 생활비를 지연하긴 했다.
딴 주머니를 찬 게 없어서 결국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하여 보냈었다.
실제로는 돈이 이만큼 있었구나 생각하니 화가 났지만 같이 살고 있기에 생활비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떄는 재산 분할을 소장 제출하는 시점에서 이뤄지는 지 몰랐고, 이혼 일이 있기 전엔 내가 생활비를 보내면 그만큼 아내는 남는 돈을 적금 통장에 넣었었다.
문제는 이혼이 시작하고 내가 생활비를 보내고 아내가 저금을 하면 그 금액은 고스란히 아내 돈이라 재산 분할에 반영되지 않는다.
후에 그걸 알았으면서도 그냥 보냈다. 이혼까지 몇 달 남지 않았는데 당장 몇 백에 싸워서 아이에게 그 분위기가 전달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었다.
한참 재산분할표 정리 중에 여행간 아내에게서 카톡이 왔다.
[이번 달 생활비 보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