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외도. 그래서 나는 법정에 섰습니다.]-24화

엄마 보고 싶다

by 첩극

9월엔 추석이 있었다.

아내와 나 둘 다 일반 직장인이기에 주말을 포함해 5일을 쉬지만 전혀 반갑지가 않다. 우리집이 큰집이라 친척들까지 온 가족이 모이는 명절에 나랑 아들만 가야한다.


설에는 친척분들께 아내가 본인 큰집에 가야해서 나랑 아들만 왔다며 둘러댔지만 이번엔 또 뭐라 해야 할까. 다행히 아버지가 먼저 연락을 주셨다. 이번엔 형제들에게 오지 말고 따로 보내자고 하셨다고 하였다. 아버지도 명절에 형제분들이 보고싶으실 텐데.. 죄송했다.


처가는 걸어 갈 거리이고, 본가까지도 차로 30분 밖에 안 걸리니 명절엔 보통 오전에 본가 가서 아침 겸 점식을 먹고, 오후에 처가에 가서 저녁을 먹는다. 설 부터는 그렇게 할 수 없었지만.


이번에는 아이와 추석 당일 전날 본가에서 가서 명절음식을 만들고 놀다가 잤다. 어머니가 아이를 재우신 덕분에 아버지와 동생이랑 간단하게 술을 마셨다. 동생은 중간에 친구와 통화한다고 잠깐 나갔다. 아버지는 내 얼굴을 한참 바라보시다가, 아무 말없이 술잔을 부딪쳤다.


다음날 오후 아이를 데리고 집에 가는 중에 오늘은 아빠가 외할머니네 못 간다고 말을 해야 했다.


“아빠 설날에도 같이 안갔잖아.”

“아빠가 외국 사람들이랑 일하는 거 알지? 거기는 우리랑 쉬는 날이 달라서 오늘 일하는 날인데 중요한 회의가 있어서 아빠가 집에서 화상회의로 들어가야 해. 아빠가 같이 못 가서 미안해. 이따 저녁 먹고 나올 때쯤 데리러 갈게.”

“빨리 와. 아빠 밥 남겨둘 게. 할머니가 갈비했대.”

“알겠어. 아빠가 빨리 갈 수 있으면 엄마한테 연락해둘 게.”

눈물이 조금 흘렀다. 혹시 룸미러로 아이가 볼까 재빨리 훔쳤다.


집에 와서 아이와 아내를 처가에 보내고 커피를 내려 마셨다. 책이나 읽고 있을까 하다가 명절에잠시지만 이렇게 혼자 있는 시간이, 내 다가올 미래를 예습하는 게 아닐까 하는 서글픔이 올라왔다. 뭐라도 하자는 생각에 이미 깨끗한 집을 정리하며 아내의 연락을 기다렸다.


아내에게 이제 나갈 거라는 카톡을 받고 집에서 나왔다. 중간 지점인 처갓집 단지 놀이터에서 만나 같이 놀다가 들어갔다. 이혼중인 가정의 명절은 참 끔찍하다.


밤에 누웠는데 아이에게 미안한 감정이 계속 올라왔다. 양육권을 받기 위해 서면에 계속 관련 내용을 넣고 있지만 가능성이 낮다는 변호사의 말에 얼마 안 남은 시간동안 어떻게든 아이와 많은 시간과 추억을 쌓고 싶었다.


다음날 아침, 다같이 아침을 먹고 아내는 약속이 있다며 나갔다. 공원에 가려다 아이가 수영하고 싶다고 하여 워터파크로 향했다. 구명조끼를 입고 있지만 아직 수영을 못해서 파도풀에서는 항상 나를 껴안고 있는데 그 시간이 참 좋았다. 언젠가 아이가 혼자 파도풀을 즐기겠지만, 조금 늦게 컸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했다.


저녁쯤 아내가 돌아왔고 같이 아이가 좋아하는 고기집을 갔다. 특이하게도 아이는 돼지껍데기를 정말 좋아한다. 젤리 같아서 맛있다며 콩가루도 찍어먹지 않는다. 아이와 본가에 갈 때도 매번 같은 프랜차이즈를 가는데, 아버지는 껍데기를 좋아하는 손자를 보고 자기랑 입맛이 똑같다고 매번 좋아하셨다.


아내에게 다음 주 월화 연차를 낼 거고 아이 데리고 2박 3일 여행을 갔다 오겠다고 얘기했다. 10월에 친구들과 예전에 약속한 여행이 잡혀 있기에 서로에게 자유시간을 주는 개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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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갈 거냐고 물어봐서 아직 안정했다 하니 아내가 먼저 별장은 안된다고 했다. 이혼 진행 전에는 아이랑 둘 만 종종 가기도 했는데, 이혼을 하면서 아내는 함께 가는 것 외에는 안된다고 못박았었고 나도 그럴 마음이 없었다.


그 날은 아내가 아이를 재우기로 한 날이라 거실에서 어디로 여행 갈까 찾아보다가 후쿠오카 항공권이 둘이 합쳐 23.8만 원에 특가 나온 걸 확인하고 바로 예약했다. 수화물도 포함이라 정말 낮은 가격이라 바로 구매했다.


작년 이맘 쯤에도 아이와 일본 여행을 다녀왔었다. 고모가 요코하마에서 살고 계셔 작년 5월에는 다같이 갔다 왔었고 10월에는 오무타라는 작은 도시에 아이와 둘이 갔다 왔다.


아이가 호빵맨을 좋아해서 후쿠오카에도 호빵맨 뮤지엄이 있으니 하루는 거길 가고, 다른 하루는 아쿠아리움을 가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예상대로 아이는 여행을 잘 즐겼다. 공원에서 달리기시합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먹으며 예정된 스케줄도 모두 소화했다. 자기전에는 색종이로 이런저런 것들을 접으며 놀고 손가락으로 그림자놀이를 하고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이는 아쿠아리움에서 본 돌고래 쇼가 인상깊었던지 돌고래 이야기를 꺼냈다.


“아빠 돌고래 진짜 멋있었어. 나도 물 속에서 돌고래랑 놀고 싶어.”

“정말? 아빠랑 엄마는 예~전에 여행가서 돌고래랑 같이 수영했거든.”

“진짜? 어디서?”

“쿠바 라는 나라인데, 많이 멀고 비행기도 한 번에 안가. 네가 수영을 할 줄 알게 되고, 좀 더 크면 같이 가서 돌고래랑 수영하자.”

“엄마도 같이?”

“글쎄, 같이 갈 수 있으면 같이 가자.”

“그럼 나 빨리 클래!”

“수영을 먼저 배우는 게 빠를 걸?”

“수영 가르쳐줘.”

“그래, 우리 열심히 수영장 다니자. 엄마가 어렸을 때 수영선수였으니까, 아들도 금방 배울 수 있을 거야.”


평소에는 자기 전에 책을 읽어주고, 책에 대한 이야기를 서로 주고받다가 잠이 들고, 주말이나 이번처럼 여행와서 함께 모든 스케줄을 소화한 날엔 내가 그날 있었던 일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쭉 이야기해주거나 아이가 인상 깊었던 것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하는데 아이는 그걸 참 좋아했다.


“엄마 보고 싶다. 엄마도 여기 좋아했을 텐데.”



아이의 잠들기 전 마지막 말에 나는 쉽게 잠에 들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