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절반
여행이 끝나고 며칠이 지나도, 아이의 말이 자꾸 떠올랐다.
“엄마 보고 싶다. 엄마도 여기 좋아했을 텐데.”
그 한마디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회의 중에도, 운전 중에도, 문득 하늘을 올려다볼 때마다 가슴이 저릿했다.
밤에 아이가 잠든 걸 확인하고 거실로 나갈까 하다가, 아내가 거실에서 TV를 보는 소리가 들려 그냥 아이 옆에서 잠들기로 했다.
옆으로 누워 아이를 바라보았다. 천사처럼 자고 있는 아이를 가만히 보고 있으니 눈물이 나올 것 같아 천장을 올려다봤다.
야광 달과 별들이 수 놓여 있는 천장.
아이는 이 작은 우주를 평소에도 좋아했지만 몽골에 갔다온 이후로는 별들에 대해 아이와 이야기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엄마 보고 싶다.’
아이의 말이 또 귓가에 울린다. 나는 아들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아이의 마음 안에는 ‘엄마의 자리’가 단단했다. 부모는 아이의 우주라는데, 붕괴된 우주 속에 살아갈 아이에게 큰 죄를 짓고 있다.
더 이상 이 싸움이 누구를 위한 건지 모르겠었다. 법정에서 이기더라도, 그게 아이에게는 행복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아내와 이혼을 하게 되면 양육권이 누구에게 가든 아이의 우주에는 절반의 공백이 생길 것이다. 다시 하나의 우주가 될 수 없겠지만, 최대한 아이의 우주가 커졌으면 했다. 내가 그 행복을 줄 수 있을까.
며칠 뒤 변호사에게 연락이 왔다.
10월 초로 예정되었던 3차 재판이 11월 중순으로 연기됐다는 내용이었다. 사유는 재산분할을 위해 신청한 은행, 보험사, 증권사 중에서 나도 아내 쪽에서도 아직 회신이 안온 곳이 있어서 미완인 재산분할표를 제출할 수 없기에 상대 변호사 쪽에서 연기신청을 했고 내 변호사도 수용했다는 내용이었다.
7월 2차 재판이후 약 70일 후에 잡혀 있던 3차 재판이 50일 가량 지연되었다. 2차에서 3차로 가는 데만 120일이다. 23년 12월 소장 제출 후 1차 재판은 3월 초. 그리고 2차 재판은 7월 말. 3차 재판은 11월 중순. 법원의 시계는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질 않나 보다.
대체 이 긴 싸움은 언제 끝날까..
어느 날은 퇴근 후 집에 돌아와 불을 켜면, 조용했다. 아내가 아이와 처갓집에서 저녁을 먹고 장인 장모님과 시간을 보내고 오는 날이었다. 또한 아이가 없는 주말은 유난히 길었다.
혼자 밥을 먹기 위해 주방으로 가니 식탁 위에 셋이 쓰던 밥그릇 세트가 보였다. 내 밥그릇을 빼서 밥을 펐다. 저편에 보이는 나란히 놓인 두 개의 밥그릇이 외롭지 않아 보였다. 외로운 건 하얀 밥이 가득 담긴 내 밥그릇이었다.
숟가락을 내려 놓고 소파에 앉았다. TV를 켰지만 흥미를 끄는 채널이 없었다. 무심코 휴대폰을 열어 녹음 폴더에 들어갔다가 바로 껐다. 다음 재판을 대비해 미리 녹음본을 다시 듣고 정리해야 하는데 그 안의 목소리를 다시 듣는 게 너무 괴로워서 오늘은 하지 않기로 했다.
3차 재판일이 연기된 탓에 아내와의 공존은 더 길어졌고 사랑스러운 아들과 함께 할 시간도 늘어났다. 좋은 걸까, 나쁜 걸까. 법은 느리고, 감정은 그보다 더 느리다. 하지만 현실은 그 어떤 것보다 빠르게 나를 몰아붙였다
오늘 대표님이 점심을 함께하자 하셔서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사내 카페로 올라왔다.
“이혼 진행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3차 재판이 연기됐습니다. 변호사 말로는 내년 초, 늦으면 3월쯤 판결이 나올 것이라고 합니다.”
대표는 이미 반쯤 마셔버린 커피 잔을 들어 빙글빙글 돌리다 내려놓고 무미건조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더 기다릴 수 없습니다. 솔직히 말해주세요. 갈 생각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언젠가 이 질문이 나올 것을 알고 있었다.
“양육권이 아내에게 넘어가면 나갈 생각입니다만 양육권을 제가 받으면 나가지 않으려 합니다. 미국에서도 매달 출장 다녀야 하는데 인사팀에서는 부모님 비자는 지원해줄 수 없다 하고, 그렇다고 월 1-2주씩 집을 비울 텐데 매번 보모를 두고 다닐 수도 없습니다.”
어째서인지 대표님은 내가 당연히 나갈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가지 않을 수도 있다는 표현을 하자 표정이 일그러졌다.
“미국에는 성당이나 교회에서 기숙학교가 있어요. 아이가 미취학이니까.. 보육원 형태지요. 아이를 거기에 두고 주말마다 집에 데려와서 보면 되지 않나요?”
테이블 아래 있던 손에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소시오패스가 대표가 되는 걸까 대표가 되면 소시오패스가 되는 걸까.
“제 베이스가 미국이니까 필요하면 내가 알아봐 줄게요.”
대표는 미국 시민권자다. 가족들도 모두 미국에 있다. 배려랍시고 하는 말이지만 장기말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으니까 저러는 거다. 화가 나서 참을 수 없었다.
대표 얼굴을 보고싶지 않아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양육권과 상관없이 나가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