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외도. 그래서 나는 법정에 섰습니다.]-29화

아이와의 주말

by 첩극


산에서 내려오고 변호사에게 먼저 연락을 했다.


[변호사님 안녕하세요. 어제 밤에 집에 들어오니 와이프가 모든 가전과 본인, 아이에 관한 가구, 물건들을 모두 다 뺀 상태였습니다.

카톡으로 저렇게 메시지가 남겨져 있어 답장했는데 아직도 읽지를 않네요. 이 경우 제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공동 재산을 무단으로 가져갔으니 절도죄 신고가 될까요? 아이는 일단 유치원을 계속 다닐 텐데, 하원 할 때 제가 가서 아이를 데려오면 문제가 될까요?]


변호사에게는 금방 답장이 왔다.


[참 대단하네요. 우리는 법원에 어필하는 형태로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데려오면 서로 다툼이 심해집니다.

판사들이 몹시 싫어하는 일이고, 자녀에게도 좋지 못하구요.

데려오라고 하는 변호사도 있는데 솔직히 저는 무엇을 위한 아이 쟁탈인지 궁금할 때가 많아요.

부인에게 전화해서 왜 이렇게 했는지 물어보고, 주말에는 원고가 데려가고 월요일에 데리고 가라고 하면 어떨까요?

주말에는 아이를 꼭 보는 형태로요… 어차피 몇 달 안에 판결 날 테니 까요.]


[그러게요. 저한테 스크래치내기 위함이지 아이한테 좋을 게 하나도 없는데 와이프 행태가 너무 화가 납니다.

이 일을 강하게 어필 부탁 드릴게요. 애는 제가 주말에만 보는 걸로 하겠습니다.

그런데 아이 물건과 옷까지 다 가져가서 이 집에서 아이가 놀거나 공부할 게 없는데..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네, 강하게 어필할 게요.]


그래, 내가 생각해도 아이를 하원 때 데리고 오고, 또 유치원 보내고 출근하면 다음엔 아내가 데리러 갈 텐데 그런 게 반복된다면 아이에게 혼란만 가중시킬 것이다.


변호사의 말은 옳았다.

하지만 나에게 그 옳음은 너무 차가웠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이에게 몇 주 전에 엄마 아빠가 얼마 뒤엔 따로 살 거라고 함께 말했었다.

엄마 아빠의 사정으로 따로 살게 되지만 너에겐 두 개의 집이 있고 엄마 아빠가 너를 사랑하는 마음은 항상 한결 같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했었는데..


그날 밤 아이는 울었다.

엄마 아빠랑 같이 살고 싶다고 말하며 울다 잠들었다.

자고 있는 아이를 안아주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내도 주말에 내가 집에 데려가서 본 다는 것에 대해는 알겠다고 했다.

다만 다음 주말부터 하라고 했고 일주일 동안 나는 적막한 집에 혼자 있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외로움이 사무치게 올라왔다.

가구도 없는 텅 빈 집에서 나는 더 작아져갔다.

내가 살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물건들을 채워야 했고 아이를 위해서라도 집에 왔을 때 놀 수 있게 무언가를 사둬야 했다.


마트에 가서 빨래판과 빨래 비누를 샀다.

집 근처에 코인세탁방이 있지만 매 번 갈 수는 없으니 간단한 빨래는 손빨래를 해야 했다.

아이가 집에 왔을 때 덜 어색하도록 아이의 놀이방에 장난감과 동화책, 그리고 공부할 것들을 채웠다. 아이가 좋아하는 풍선도 잔뜩 사서 불어놨다.


그래도 집은 허전했다.

가장 중요한, 나에게 가장 필요한 아이가 없다.

매일 퇴근하면 웃으며 나를 맞이해주는 아이가 없으니 집에 들어오기가 싫었다.


급하게 중고차를 알아봤다.

다다음주에 일본에서 고모가 크리스마스겸 놀러오시기로 했었다.

고모와 동생, 그리고 아이와 함께 글램핑을 가기로 했는데 아내가 차를 가져간 바람에 고모를 모시고 다닐 차가 필요했고 어차피 후에 아이를 데리고 어디를 다니려면 차가 있어야 했다.

아이가 아빠 차를 기억하기 쉽게 아이가 좋아하는 빨간색의 차를 골랐고 인터넷으로 카시트를 주문했다.


본가에 이 사실을 알렸고 퇴근하고 회사에서 차를 배송 받은 날 본가에 갔다.

오랜만에 어머니가 해 주신 밥을 먹으며 아내가 아이와 집을 나간 것과 재판 진행상황을 알려드렸다.

부모님 눈빛이 말없이 아팠다.

나는 그 아픔을 보면서도 모른 척 밥을 삼켰다.


주재원에 대해서도 그동안 어머니와 아버지의 입장이 달랐는데 이번에는 둘 다 주재원을 나가는 걸 고려해보라고 하셨다.

나는 단박에 싫다고 대답했으나 날 위해서 말씀하시는 부모님의 마음을 모를 리 없었다.


침대도 가져가서 소파에서 잔다는 말에 부모님은 요와 두꺼운 이불을 챙겨 주셨다.

이불은 있었기에 요만 챙겼다.


부모님께 말씀드리지 않았지만 사실은 소파가 아니라 침실 바닥에서 자고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아이가 옆에 있을 거란 상상을 하며.


오늘도 부모님 마음에 대못을 박는다.

살면서 이렇게까지 불효를 저지른 적이 있을까.

못난 아비로도 모자라서 못난 자식이다.


어머니가 반찬을 싸주겠다 하셨으나 냉장고가 없어 반찬을 받아도 보관할 수가 없었다.

겨울이니 베란다에 두어도 어느정도 괜찮겠지만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반찬을 베란다에 두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집에 빨리 올 일도 없어 저녁도 회사 식당에서 먹고 퇴근하고 있다.



토요일이 되었다.

드디어 아이를 볼 수 있는 날이다.


처갓집 현관에 들러 아내에게 도착했다고 메세지를 보냈고 아내는 아이와 함께 짐을 들고 내려왔다.

일요일까지 아이가 원래 집에서 지낼 수 있게 잠옷과 세면도구, 아이가 좋아하는 장난감과 책을 함께 보냈다.

걸어서 백화점 문화센터에 가야 했기에 짐을 받아 차에 실었다.


“차 샀어?”

“어, 당신이 가져갔잖아. 다음 주에 고모랑 캠핑도 가야하고.”

“그 땐 차 빌려주려 했지. 돈이 있나봐? 차를 사고.”


마음 속에서 분노가 끓어올라 대답하지 않았다.

이 차는 마이너스 통장으로 샀다.


이혼 소송이 진행될수록, 나는 마이너스가 쌓여갔다.

이 기간 어떤 것도 나에게 플러스는 없었다.


문화센터에서 아이의 발레 수업이 끝난 후 백화점에서 점심을 먹었다.

키즈카페에 가고 싶다 하여 집 근처 키즈카페로 이동했다.


아이와 둘이 키즈카페에 온 적도 많은데, 오늘따라 부모 모두가 함께 온 가족들이 더 보였다.

평소엔 전혀 신경쓰지 않았는데 오늘은 같이 온 부모들이 부러웠다.

앞으로도 우리는 셋이 키즈카페 올 일이 없을 텐데.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아이가 저녁으로 돈까스를 해달라고 했다.

평소 같았으면 마트에서 돈까스를 사서 했을 텐데, 냉장고가 없으니 그냥 근처 가게에서 먹었다.

아이랑 종종 오던 곳이라 다행히 아이도 좋아했다.


어느새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했는데 걱정이 앞섰다.

텅 비어 버린 집을 보고 아이가 어떤 감정을 느낄까 두려웠다.

아빠 없이 외갓집에서 지낸 너의 시간은 어땠을까.

왜 아빠랑 같이 살지 못하는지 아내가 이야기는 잘 해줬을까.


“아빠 티비 없어? 냉장고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아이가 물어보는데 뭐라고 대답해야 할 지 모르겠다.


“어.. 그거 없어졌어. 아빠 혼자 살아서 없어도 괜찮아.”


아이는 대답이 없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이는 본인에게 가장 익숙한 놀이방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여러 장난감들을 채워 놨기에 아이는 이 공간이 낯설어진 것을 모르는지 새로운 장난감들과 놀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이와 놀다가 잘 시간이 되어 아이와 함께 샤워를 했다.

양치를 시키고, 머리를 감겨주고 몸을 씻겼다.

이 당연했던 것들이 지금은 너무 소중했다.

평소보다 더 오래 정성스럽게 씻겨주고 내가 씻는 동안 아이가 벽타일에 물감놀이를 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아이와 안방에 들어간 뒤 부모님이 주신 요에 아이와 함께 누웠다.


“아빠 바닥에서 자? 아 맞다 침대 할머니네 있지. 내 침대도 거기 있어.”


“괜찮아 난방이 따듯해서 더 좋아. 우리 천장에 별 보면서 몽골 이야기하다 잘까?”


한참 별자리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가 아이의 숨소리가 일정해진 것을 느꼈다.

아이는 피곤했는지 어느새 잠들어 있었다.

원래였으면 커다란 침대와, 붙어있는 너의 침대에서 뒹굴 거리다 잤을 텐데 작은 요에서 둘이 자니 아이는 뒹굴 거리지도 못했다.

조금이라도 편하게 아이가 잘 수 있게 옆으로 이동하여 맨바닥에 누웠다.

이불도 하나 밖에 없어 아이에게 다시 잘 덮어주고 긴 패딩을 꺼내 덮었다.


아빠는 괜찮아.

너만 행복하면 돼.


그렇게 아이를 한참 바라보다가 나도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