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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쿨베어 Sep 20. 2024

수용과 타협


만약에 라는 흥정


  실제로 벌어지지 않은 상황을 머릿속에서 떠올려 볼 때가 있다. 불안하기 때문에 뇌가 미리 걱정을 하여 상상을 한 것이라고 한다. 이 불안한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과거에 불안했던 기억을 뇌가 떠올리는 것이다. 생각을 떠올리게 하여 미리 대비를 하고 있다고 착각을 하는 상황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두려운 상황에 맞닥뜨리기 전에 미리 뇌가 타협을 한다.


  지난 몇 달 동안 진짜로 일어나지 않은 걱정스러운 상황이 자꾸 떠올려졌다.

  다시 남편이 사라지는 상황.

  이혼을 하고 아이들과 헤어지는 상황.

  내가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상황.

  이런 안 좋은 감정들을 자꾸 떠올려 집중하다 보니 꼬리에 꼬리를 무는 안 좋은 감정만이 남았다. 이 상황에 너무 몰입을 하다 보면 걱정스러운 상상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망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헤어 나올 수 없을 정도로 불안하다면 빨리 다른 좋았던 상황을 떠올리려 노력하였다. 가장 좋은 방법은 즐거웠던 과거의 사진을 보는 것이었다. 아랫니가 두 개만 있었을 때 아이들의 활짝 웃는 얼굴. 스스로 첫 발을 떼던 모습. 아이들끼리 서로 끌어안고 즐겁게 웃는 상황들이 가득 담긴 사진을 열어 한참을 들여다본다. 또는 과거에 여행을 하던 즐거웠던 시간들을 억지로라도 꺼내서 뇌로 전달하는 연습을 자주 하였는데 생각보다 효과가 있었다.




꽃은 다시 피겠지만,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하루는 우편으로 대장암 검사가 날아와서 본격적으로 일을 하기 전에 꼭 검진을 받으라고 했다. 건강 검진을 갔던 그는 카드로 몇 만 원을 결제했다. 대장내시경을 하는데 맨 정신으로는 도저히 못할 것 같아서 수면내시경을 결제했다고 했다. 나는 웃었다. 이렇게 겁이 많은 그는 어떻게 그 높은 다리 위에서 뛰어내릴 생각을 했던 걸까. 뛰어내리지 못했던 이유는 소주를 한 병이나 원샷하듯 마셨지만 술이 취하지 않아서라고 했다. 막상 진짜로 죽을 생각을 해보니 긴장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가 썼던 유서의 내용 중 가장 비중이 컸던 이야기는 거짓말이었다. 그는 나에게 혼나지 않고 꿀리지 않으려고 계속 거짓말을 했다고 한다. 어떻게 해서든 돈을 벌고 싶었는데 점점 대출이 늘면서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죽기 직전 알았던 모양이다. 유서 쓰기 전날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냈던 것에 대해서는 행복이라는 단어를 쓰면서도 자기 같은 아빠랑 사느니 없는 채로 살아가는 게 더 나을 것 같다고. 마지막으로는 모든 짐을 나에게 남겨놓고 떠나서 미안하다고 했다.


 다시 집으로 돌아온 그는 휴대폰 비밀번호를 나에게 알려줬다. 내가 수시로 확인할 수 있도록 모든 걸 오픈하기로 했다. 그리고 우리는 대출을 해결하기 위해 함께 방법을 고민했다. 상처는 순간이었지만 치유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 집에는 다시 새롭게 꽃이 피겠지만 지나간 나의 마음의 상처는 되돌릴 수가 없다. 새로운 꽃이 필 때까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방법을 그와 함께 고민하며 가정을 지킬 방법을 고민해 나가려고 한다.

  

  나는 가끔 그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사는 것보다 뒤지는 게 더 어렵다."




이 상황을 받아들이자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내 탓보다는 그를 많이 탓하게 되었다. 그의 착한 모습을 보고 만남을 이어가게 되었고,

나는 이후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다. 그리고 세 자매를 낳아 정성껏 키우는 중이다.

  이 가정을 지켜야 하는 것은 이 결혼을 선택하고 결정한 나의 의무이다. 아무리 쓰레기 같은 아빠라도 살아는 있어야 한다. 그가 정말 쓰레기 같은 사람이었다면 이제는 그를 재활용하여 재탄생을 할 때이다. 나도 함께 노력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노력은 아마도 이제부터 시작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저의 긴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리며
저와 같은 경험은
간접 경험으로만 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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