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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쿨베어 Aug 30. 2024

초현실(超現實)

어떠한 사실이나 상태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을 넘어선 상태

  그가 남긴 유서를 본 이후부터 어떤 날은 하루종일 배신감과 분노가 반복되다가 결국 우울한 마음으로 마무리되곤 했다. 사고나 질병으로 나도 빨리 생을 마감하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이 드는 날이면 불안과 함께 신경이 더욱더 날카로워졌다. 사건이 있고 며칠 동안은 처음 느껴보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시간은 정상적으로 흘러가고 사람들은 다들 바쁘고 행복해 보이는데 나만 현실과 동떨어진 느낌을 받았다. 지금 이 상황이 꿈같기도 하여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스스로 계속 확인하게 되었다. 시간이 정상적으로 흐르는 것 같지 않아서 계속 시계를 확인한다거나 지나가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때도 있었다. 마치 초현실주의 그림을 마주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때때로 멀쩡히 숨을 잘 쉬다가도 숨이 제대로 안 쉬어지는 것 같아 몰아 쉬기도 하고, 잠이 오지 않아 한동안 매일 술을 마시고 잠이 들었다. 눈물 없이 하루도 버티지 못하였다. 건강정신의학과 상담이 필요한 상황이었음에 분명했다. 하지만 나는 병원에 가지 않고 나 자신과 싸워 극복할 결심을 했다.




안녕하세요, 무엇이 힘드신가요?

  22년 겨울.

  회사 근처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첫 상담을 했던 경험이 있다.    

  '저... 두통과 속 쓰림이 있는데 약을 먹어도 거의 한 달째 낫질 않아요."

  "두통과 속 쓰림이 있는데 정신건강의학과 상담을 오실 생각을 하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아이가 셋인데요, 아이들과 남편에게 점점 신경질적으로 대하는 느낌도 함께 들어서 오게 되었어요."

  당시에 그는 육아휴직이 끝나갈 무렵이었고, 아이들의 등하원을 비롯하여 집에서 청소와 빨래를 도맡아 하고 있었다. 나는 회사에서 기분이 안 좋거나 아이들 때문에 기분이 안 좋을 때면 때때로 그에게 온갖 짜증을 내기도 했다. 집안일이 제대로 안되어 있거나 할 때면 그에게 화를 냈다가 미안했다가를 반복했다. 정신건강의학과 담당 선생님은 아이가 셋이면 상담을 받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다독여주셨다.


  그 당시 나는 부담스러웠던 육아와 회사의 직속 팀장과의 관계 때문에 힘들어하였다. 팀장과의 불편한 관계와 그녀 때문에 받았던 상처들을 털어놓자 선생님은 나에게 성장하면서 아마도 주변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분명히 있었을 거라며 떠올려 보라고 했다. 잠시 후 나는 그녀와 비슷한 인물을 찾아내었다.

  우리 언니였다.

  세 살 터울이어서 팀장과 비슷한 연령대였는데 대부분 본인의 이야기는 맞고 나는 틀렸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동생인 나를 통제하지 못하여 신경질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때로는 나를 부러워하기도 하고 칭찬하기도 했다. 내가 자랑하지 않아도 대체로 나를 무시하곤 했던 그런 모습이 너무 비슷했다.


  상담과 약물 치료를 함께 하였는데, 나와 맞지 않는 약이 하나 있었다. 플루옥세틴 20mg를 처방받아 복용하다가 프로작 10mg으로 줄여 복용하였다. 불안과 긴장을 눌러주는 역할을 했던 것 같은데 나는 신경이 날카로워졌을 때 안 좋았던 기분을 눌러주는 느낌을 받았다. 의존 증상은 없었지만 생리 과다가 있었다. 복용 후 체중이 감량되었고, 거의 일상생활을 하기 힘들 정도로 하혈하였다. 단약을 하게 된 후 다시 체중은 증가하였고 생리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상담은 처음에는 1주에 한번, 2주에 한번, 4주에 한번 방문하는 순서로 점점 방문 횟수를 줄여 총 6개월 정도 받았는데 사실 약물의 효과보다는 내 마음속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좋았다. 약물에 의존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기 때문에 이 상황을 치유할 방법을 스스로 찾아보기로 했다.


  23년 여름이 되고 나는 더 이상 병원에 가지 않았다. 우울감을 극복하는 데에는 속 마음을 털어놓고, 우울한 상황을 깊게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방법이 좋을 것 같다는 판단을 하였다. 그리고 나에게는 그가 옆에 있었기에 이 모든 상황을 극복해 나갈 수 있었다.




나의 사회생활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외주로 작업하던 회사에서 이듬해에 입사 권유를 받게 되었다. 당시에 나는 정직원 보다는 프리랜서를 선호하여 자유롭게 일을 하기를 원했는데 그래서 계약직으로 1년만 다니자고 마음먹고 입사하게 되었다. 그런데 다녀보니 소속이 되어 일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고, 직장 생활이라는 것도 인생에서 경험할 수 있다면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정직원이 되어 다니기로 했다. 자유롭게 사는 방식을 원했던 나는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 또는 야생마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규칙적인 상황에 나를 밀어 넣어 나 자신을 조금 다듬어보자는 생각도 있었다.


  입사 후 시간이 흘러 내 바로 위에 있던 과장님이 팀장이 되었고, 그 팀장은 내가 처음 그 회사를 들어갔을 때부터 나를 경계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다가가기도 어려운 인물이었다. 나의 육아 휴직 전후로 나에게 나름 배려있는 업무 분장을 해 주기도 했지만 결론적으론 나는 그녀에게 강남에 사는 불성실한 사람이었다. 이 회사에서 오래된 터줏대감 같았던 그녀는 내가 중간에 대리로 입사하였을 때에도 자신의 후배로 인정하거나 받아들이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조금 이상한 논리였지만 그녀는 강남에 가는 것도 싫어했고, 부자도 아니었지만 단지 서초구에 거주하는 나를 별로 반기지 않았다. 사회 초년생 때부터 지금까지 20년 가까이 이 회사를 다녔던 그녀는 자신에게 인사를 안 하고 못 알아보는 사람은 뒤에서 욕을 하기도 했고, 잘해 주는 것 같다가도 나를 뒤에서 욕하기를 반복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나를 회의실로 불렀다. 회사를 무슨 생각으로 다니는지 모르겠다며 그저 월급만 받으면 되냐는 이야기로 시작하였다. 모든 팀원에게 업무분장을 하고 너에게만 업무를 주지 않았을 때 신났다며 물었다. 그 당시 신규 업무가 여러 개 있었는데 팀원을 각자 따로 불러 하나씩 신규 업무를 주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신규 업무를 주지 않은 것을 알게 된 후배들이 팀장에게 왜 일을 주지 않는지 이유를 알려달라고 했다. 사실 나는 따로 불렀다는 것도 잘 몰랐고 팀장이 다 같이 있는데서 업무분장을 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랐는데, 그렇게 업무 분장을 하고 나니 나만 쏙 빠져 있는 것을 알게 된 팀원들이 화가 난 것이었다. 나는 위에서 지시하는 대로 결정 내려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하였고, 팀장은 본인이 시키는 대로 수동적으로 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팀장 본인은 일이 재미있다며 나에게 가정과 일을 분리하라고 했다. 자발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새로운 일이 있으면 먼저 하겠다고 나서야 한다고 했다. 사실 뭘 하는지 알려주지 않아서 자발적으로 할 수 없었다고 얘기하자, 본인이 말을 안 해준 것이 맞다고 했다.


  회의실에서 내내 팀장의 이야기를 거의 듣고만 있던 나는 우리 팀원이나 다른 팀에서 업무에 불편이나 피해를 끼친 일이 있는지 물었다. 그런 피드백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따로 불러서 이야기하는 것인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팀장은 이야기의 마무리를 제대로 하지 않고 갑자기 모두 다 내 잘못이다고 말하며 회의실을 나가버렸다. 나는 이 상황이 충격적이었다. 나는 진짜 무엇을 잘못한 걸까.


  며칠 뒤 나는 그에게 이 상황을 이야기하였고, 진지하게 휴직을 고민하였다. 내 의지가 반영되지 않은 휴직은 결정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나도 물론 내가 하는 일을 좋아하였지만 그녀가 나를 일에 관심이 없고 불성실한 인간으로 결론짓고 나니, 나 또한 무기력함과 함께 무너져 내렸다. 그녀에게 나는 계륵 같은 존재였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잘한 것은 없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얘기를 들을만한 사람도 아니었다.




불안과 긴장


  불편한 시간은 계속 흘러갔고, 새해가 되어 나는 육아휴직을 결심하였다.

  "이제 그만하고 싶어요. 복직 계획이 없으니 새로운 사람을 뽑아 자리를 채워야 할 것 같아요."

  그녀는 다소 놀랐지만 수많은 사람들을 면접을 보며 즐거운 마음으로 새로운 사람을 뽑았다. 그리고는 나의 육아휴직 날짜도 나와 상의 없이 본인 마음대로 결정하였다. 나는 기분이 나빴지만 곧 그녀를 볼 일이 없었기에 나 또한 기분이 좋아졌다. 올해 1월 초 육아휴직을 하기로 마음먹은 날부터 나는 불안과 긴장을 반복하였다. 그리고 두 달여의 시간 동안 집에서 육아와 살림을 하던 중 그는 유서를 쓰고 나가버렸다.


  분노와 배신에 더불어 버림받은 느낌까지 들었다.

  버려진 기분이 이런 느낌일까.


  불안한 마음과 뒤에는 긴장감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는데 그놈의 긴장 때문에 잠도 잘 안 오고 신경이 날카로울 때가 많았다. 유기된 이런 느낌 때문인지 시도 때도 없이 우울한 기분과 함께 무기력함이 나를 지배하였다. 그런 나의 기분은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전달되었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친정 엄마와 그도 당연히 이런 내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가 자살에 성공하였다면 어땠을까. 나는 직장을 잃고 육아를 하며 경제적 부담에 배우자를 잃은 슬픔까지 고스란히 느끼며 살았을 것 같다. 아니 그냥 나도 함께 삶을 마감했을 것 같다. 뉴스에서는 가끔 자녀를 동반한 자살 사건에 대해 사회적 이슈로 다뤄질 때가 있다. 자녀들이 원하지 않지만 부모의 경제적 부담 때문에 자녀를 먼저 죽이고 본인도 자살하는 사건. 남의 일이 아니라고 느껴지던 순간이었다.

 

아이들을 보면 죽기가 더 힘들어진다.

웃음소리. 뽀얀피부. 완전하지 못한 발음들...

내가 낳아서 미안하다.

  




생각할 겨를 없이 바쁘게 살며
마음을 해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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