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왜 코인에 아니 도박에 빠지게 되었는지 알아야 한다. 나는 급한 성격이지만 느긋한 그의 속도에 맞춰 최대한 천천히 알아내기로 했다. 그가 저지른 일이... 아니 그와 내가 저지른 일이 앞으로 아이들에게 피해가 갈 것을 생각하니 너무 미안했다. 정확히 무엇 때문에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도 일부 잘못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사건이 있고 그다음 날, 유서의 내용을 다시 한번 유심히 살펴본 뒤 그에게 물었다. 어떤 상황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었기에 그에게 화를 내야 할지 다독여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일단 그에게는 생을 마감하지 않아 다행이라며 빚이 있어도 충분히 같이 해결할 수 있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그는 고개를 떨구고 미안함 가득한 얼굴로 나의 질문에 대답하였다. 회피하고 싶어 하는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난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최대한 조심스레 물었다.
직장을 안 다녔다는 게 언제부터야?
아침 8시 출근해서 오후 5시 퇴근이었던 나는 아침 6시 40분이면 눈 뜨자마자 출근했다. 근처에 사시는 우리 엄마와 함께 그가 9시까지 등원 준비를 하여 아이들을 등원시켰다. 그리고 그는 바로 출근한다고 나가서 점심시간이 지나 집으로 돌아와 청소와 빨래, 설거지 등의 집안일을 했다. 또는 재택근무를 한다고 거짓말을 하고는 집에 있었다. 5시 반쯤 나의 퇴근길에 그와 함께 아이들을 하원시키고 나서 온 가족이 모여 함께 저녁을 먹고 아이들을 씻겼다. 그리고 다시 회사로 가서 일을 마무리해야 한다고 하며 오후 8시면 집 밖을 나갔다가 밤 12시 즈음이면 퇴근하였다. 그가 만든 복잡한 일과 때문에 그가 바쁘게 일을 한다고 생각했고, 복직하여 정신없이 회사와 집만 다녔던 나는 그를 의심할 겨를이 없었다. 주변에서는 그가 육아도 하고 일도 한다며 그런 남편이 없다고 칭찬하였고, 나 또한 그런 그를 고맙게 여겼다. 마주칠 시간이 적었기에 의심할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20년, 21년, 22년 이렇게 삼 년 동안의 육아휴직을 전부 사용하게 된 그는 23년이 되자 진짜 복직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복직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름대로 규칙적인 일정을 만들어 회사를 다니는 척하였다. 그렇게 1년여의 시간이 넘어 24년 4월 7일 사건이 벌어지기 전날까지 그는 카드론과 제2금융권 대출을 받고 카드깡을 하며 최선을 다해 매우 열심히 도박질을 하였다.
코인을 했는데…
계좌에는 왜 10원도 남아있지 않은 거야?
그 길고 긴 육아휴직이 그의 생각을 변화 시긴 걸까. 육아를 하면서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혼자 구상했던 그는 코인 선물거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처음에는 3백만 원으로 3천만 원을 벌게 되었다고 했다. 300이 3000이 되는 순간 그는 도파민이라는 것을 맛보았을 것이다. 한번 큰 수익을 냈던 기억 때문에 도박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도파민과 함께 자신감이 생긴 그는 그렇게 생긴 그 돈을 다 잃고도 육아휴직수당, 아동수당, 카드깡, 대출 등으로 더 큰 리스크를 만들며 빚을 불려 나갔다. 돈은 그저 숫자에 불과했고, 도파민으로 시작해 미련으로 끝이 나는 도박에 빠지게 되는 아주 기본적인 루트를 밟고 있었던 것이다.
선물거래를 하였다고 했다. 코인 선물거래는 높은 수익을 만들 수 있지만 동시에 큰 리스크가 존재한다. 미래의 가격에 대한 계약을 체결하기 때문에 실제로 가상화폐를 소유하고 있지 않아도 거래가 가능하고 레버리지를 이용하여 소규모 자금으로 큰 규모의 거래를 할 수 있다. 현재 시점에서 가격을 기준으로 앞으로의 기간 동안 가격의 움직임을 예측하여 그에 따른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점으로 현물거래와 다른 특징이 있다.
말이 그럴싸하지 동전을 던져서 앞면일지 뒷면일지 맞추면 수익을 내는 동전 던지기 게임 같은 느낌이었다. 갑자기 코인 거래소에 불 지르는 상상을 한 번 해본다. 순진한 사람을 순식간에 도박장으로 꼬셔낸 것 같은… 그런 말도 안 되는 수익구조였다. 간도 크다. 겁도 많은 사람이 어쩌다 이런 것에 빠지게 되었을까. 나는 그에게 도박이라는 단어를 썼지만, 그는 자신이 도박을 했다고 인지하지 못하였다. 선물거래를 했을 뿐 이건 도박이 아니라고 여겼던 것 같다. 주식이든 코인이든 너무 깊게 빠지면 도박이 된다. 대부분 고학력자들이 빠져든다고 한다. 강원랜드 같은 곳에 가야만 도박이 아닌데 자기 자신이 인지를 못하고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점이었을지도 모른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강원도 지역은 원래 강력범죄가 드물다고 했다. 그곳의 강력계 형사들은 대부분 도박 때문에 재산을 탕진하고 자살하기 위해 강원도로 숨어버린 사람들을 찾아내 집으로 돌려보내는 일을 많이 하고 있다고 한다. 매우 큰 규모의 도박장이 강원도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강원도 인제 경찰서에서 남편이 가출하게 된 이유를 물었을 때 나는 도박과 채무라고 대답을 했는데, 형사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이 사건이 벌어지게 된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그와 나의 대화가 없었다는 것이다. 돈을 땄거나 잃었거나 대출을 받았거나 하는 경제적 상황들은 배우자인 나와 함께 의논해야 하는 것임에 분명한데 그는 그런 것들은 공유하지 않았다. 문제는 공유하지 않은 그 상황 때문에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에게 과연 어떤 존재였을까. 육아에 지쳐 돈이 없다고 맨날 징징대며 바가지를 긁는 마누라정도였을까.
대출은 얼마나 있어?
주변에 빌린 돈은 얼마야?
유서를 쓴 당일에는 6~7천만 원 정도의 대출이 있다고 했다. 며칠 뒤 그의 휴대폰을 열고 정확히 대출금이 얼마인지 카드값이 얼마인지 정리하기 위해 우리는 마주 앉았다. 그는 마치 힘이 쭉 빠지고 풀이 죽은 곤충 같았다.
**은행 카드론 수 천만 원(이율 15.57%), **저축은행 수 천만 원(이율 14%), **뱅크 수 천만 원(이율 8.4%), **은행 백 여 만 원, **보험 이백 여 만 원, 카드값 수백만 원, **친구 천만 원, **친구 삼백만 원, 시아버지 오백만 원, 예금에 넣으라고 줬던 5천만 원. 더 이상 빌릴 곳이 없어서 유서를 썼다고 했다. 사채를 쓰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했던 순간이다. 연봉이 좋았다면 더 많이 빌려주기 때문에 더 큰 리스크가 있었을 것이다. 대충 계산해 봐도 1억 5천에서 2억 사이였다. 계산을 하고 있었던 당시에는 덤덤하게 계산기를 두드리며 메모장에 하나씩 목록을 적어 내려갔다. 돈은 그저 숫자에 불과했다.
모파상의 <목걸이>라는 소설이 떠올랐다.
소설의 내용과 상황은 다르지만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허드렛일로 고생했던 주인공의 초라하게 늙은 모습이 꼭 10년 뒤에 내 모습일 것만 같았다. 나 자신에게 투자하는 것을 서서히 미뤄두고 일과 육아에만 전념하며 살았다. 나를 희생하는 것은 만족하였지만 그렇게 살았어도 일과 육아에 늘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런데 갑자기 나 자신이 초라하고 불쌍하게 느껴졌다. 나는 등신 머저리 같았다.
보통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이라면 옷도 사고, 신발도 사고, 머리도 하고, 화장도 하고, 가끔은 맛있는 점심도 사 먹고 비싼 커피도 한잔 하면서 자신에 대한 보상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우리 집 앞에 있는 동네 미용실에 가서 일 년 중 한 번 정도 머리를 자르는 게 전부였고, 새치가 아직 얼마 없어 펌이나 염색은 한 적이 없었다. 아이들을 출산하기 전에는 화장을 꼬박꼬박 잘하고 다녔는데 퇴근하고 아이들이 한꺼번에 반겨주니 얼굴에 화장품이 묻어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냥 아이들이 쓰는 로션을 함께 쓰는 것이 전부였다. 자외선 차단제라도 발라야 하는데 라는 생각만 하였다.
나는 키가 커서 굽이 있는 신발을 기피하기도 했고, 출산 후 퇴행성 관절염도 생겨서 워킹화 한 개, 여름이면 조리샌들 한 개 정도로 버티었다. 일 년 동안 사계절 옷 값이 30만 원을 넘지 않았고, 점심은 도시락을 싸고, 커피는 회사 카페에서 제공하는 커피를 마셨다. 휴대폰 월결제와 교통비를 포함하여 한 달에 10만 원 정도를 쓰며 살았다. 누가 시킨 것은 아니었지만 넉넉하지 않은 우리 집 가계에 내가 이렇게 살지 않으면 나중에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서 학원도 못 다닐 것 같은 불안한 생각 때문이었을까. 나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생활하였지만 만족하였다.
직장 후배들은 예쁘게 꾸미고 여가 시간은 운동과 여행으로 자신을 가꾸었다. 가끔은 나도 저렇게 싱글로 살아가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그래도 나에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스러운 세 자매가 눈에 아른거렸다. 하지만 그의 도박질을 알게 된 그 순간 이후로는 내가 등신 머저리 같았다. 눈물이 쏟아졌다. 그가 잠이 들었을 때와 집에 없을 때에도 나는 그와 함께 채무를 정리해 놓은 메모장을 들여다보며 이 돈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에 휩싸여 제대로 잠들지 못하였다. 매달 꼭 써야 하는 생활비를 제하고 남은 돈으로 이 돈을 갚으려면 10년도 부족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신 같았지만 동전 모양의 잎이 주렁주렁 달린 워터코인을 당근에서 분양받았다. 재물운을 상승시켜 주는 워터코인의 잎이 무성해지면 우리 집 살림도 조금 나아지겠지.
이 우울한 상황을 극복해 낼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