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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쿨베어 Sep 06. 2024

우울을 해소하는 나만의 방법

  배우자를 잃은 슬픔은 어떤 것일까. 감히 가늠하기도 어려운 어마어마한 충격이다. 배우자가 살아있을 때에 잘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과 함께 큰 절망과 슬픔에 빠지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2011년, 나는 아르헨티나의 최남단 우수아이아를 여행하기 위해 어느 한인 민박집을 찾았다. 주인아주머니는 그해 초 시아버지와 남편을 갑작스레 함께 떠나보냈다고 한다. 그곳에서 결혼 후 화훼 농장을 운영하고 계셨는데, 큰 아들은 당시 의대를 다녀서 우수아이아로부터 멀리 떨어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지내고 있었고 고등학생이던 둘째 아들과 시어머니와 함께 살고 계셨다. 나는 원래 가려던 민박집에 자리가 없어서 예약도 없이 찾아가게 되었다. 불시에 찾아온 여행자를 따뜻하게 맞아주시고 마트 장보기와 농장 구경, 물개 투어 티켓팅도 함께 해 주셨다.

  그때 주인아주머니가 해 주셨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바쁘게 살아야 정신이 없어서 우울하지 않을 것 같아."




발버둥 쳐 보자


  아무리 발버둥을 쳐 봐도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우리는 원래도 못 살았고 지금 이 상태에서 유지만 해도 다행이었는데 그의 도박질로 더더욱 가난한 상황을 맞이하였다.

  

  뇌에서 느끼는 것들은 몸으로 반응하게 되어 있는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동작과 같은 것들은 실제로 생각을 떨쳐내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나는 이 상황에서 발버둥을 쳐 보기로 했다. 동네 문화센터에 가서 수영을 배우기 위해 수강신청을 하였다.

  말 그대로 발버둥을 열심히 쳐 보니 물속에서는 전진이 가능하였다. 실제 내 삶에는 큰 영향이 없겠지만 나의 뇌에는 작게나마 영향을 키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발버둥을 쳐서 앞으로 나아가 보기로 했다. 오래전 몇 달 배웠다가 다 잊어버렸던 수영인데 지금 접영을 배우고 있다.

  생각해 보니 그때도 직장 생활 때문에 힘이 들어 새벽에 수영을 하고 출근을 했던 기억이 있다. 수영을 하면서 나의 모든 에너지를 썼는데 안 좋은 일을 떠올리다 보면 가끔 눈물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수경을 쓰고 있기 때문에 남들 신경 쓸 필요도 없었고 그저 몸을 써서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되는 운동이었기에 우울을 극복하는데 나와 잘 맞았던 것 같다. 꾸준히 오래 하다 보면 우울한 마음도 줄어들고 성취감도 함께 생기는 것 같았다.


 직장에서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먹이고 씻기고 치우느라 등과 허리가 많이 굽어있었다. 주변에서는 운동을 해 보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하였고, 나는 운동 또한 사치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다 나에게 맞는 운동을 떠올렸다.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으면서 전신 운동이 되는 것. 바로 수영이었다.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문화센터는 금액도 저렴하였지만 자녀가 셋인 나는 20프로 할인이 되는 서울시 다둥이카드가 있었다.


  수영을 하면서 나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우리 집에서 수영장까지는 걸어서 20분 정도였는데 한여름 35도까지 올라가는 낮시간이었지만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우 열심히 다녔다. 비가 오는 날이나 약속이 있는 날에도 매주 두 번은 열일을 제치고 수영을 하러 갔다. 온몸에 기운이 빠질 정도로 사력을 다해 운동을 하다 보니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다.




움직이자


  회사를 다녔을 때 주중은 늘 아침 8시부터 5시까지 근무를 했고 아이들을 어린이집에서 픽업해서 집에 오자마자 저녁 준비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아이들을 씻기고 재우면 밤 10시가 된다. 주말은 늦잠을 자고 싶어도 아이들이 항상 일찍 일어나기 때문에 비몽사몽으로 눈을 뜨고 앉아 있으면 그가 커피와 빵을 사가지고 온다. 우리 아이들은 봄과 가을에는 주로 집 근처 놀이터에 가서 놀고, 여름과 겨울에는 주로 집에 있거나 서울 근교에 실내 공간으로 가서 주말을 보내며 자랐다.


  육아 휴직을 하면서 좋은 점은 시간을 여유롭게 쓸 수 있다는 것인데 아이가 아플 때 어린이집에서 바로 집에 데려와서 케어할 수도 있고 일요일에 어디를 가더라도 월요일 출근에 대한 부담이 없어서 좋았다.


  회사를 다니면서 아이들에게 늘 미안해했던 부분은 내가 체력이 많이 달리고 출근에 대한 긴장 또한 많아서 자주 놀아주지 못하고 맛있는 음식도 많이 해 주지 못했다. 우리는 세 자녀라서 입장료를 내는 곳을 비롯하여 키즈카페를 가기에도 많이 부담스러웠는데 다둥이 카드가 있으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서울형 키즈카페를 최근에 알게 되었다. 가능한 많은 시간을 아이들과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말이 되면 오전과 오후에 다른 지역으로 키즈카페를 예약하였고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당근 마켓으로 중고 오븐을 구입해서 틈틈이 아이들과 함께 쿠기와 빵을 만들어 구워주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맛있게 잘 먹어주었고 나도 기분이 좋았다. 아이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며 이런 좋은 기분이 쌓이다 보니 아이들이 소중하고 많이 사랑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주변을 사랑하자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우울증에 걸린 나로서는 어려운 일이었다. 결혼을 하고 일이 잘 풀려서 잘 되는 지인들을 보면 그저 부럽기도 하고 나에게는 이제 일어나지 않을 일 같기도 하다. 혼자 살았으면 더 자유롭게 잘 지내고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도박에 손을 댄 그를 떠올리니 결혼이 더욱더 후회하였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까지 짐으로 느껴지는 생각은 최근까지도 매일 했던 것 같다. 그런 내 모습을 나 자신은 볼 수 없기에 안 좋은 생각을 실컷 하면서 우울한 하루를 맞이했을지도 모르겠다.


  살다 보면 매일 안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이들과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난 뒤에는 아이를 짐으로 생각했던 내 모습이 세상 추해 보였던 날도 있었다. 예전보다 더 열심히 땀을 흘려 일하는 그를 떠올려 본다. 그리고 그와 내가 세상에서 전부인 우리 아이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우리 부모님. 지금까지도 나와 우리 아이들을 걱정하고 격려하고 사랑해 주었던 그 시간들도 함께 떠올린다.

  사랑이 없이는 이렇게 살아갈 수 없다는 생각을 이어서 한다. 나와 가장 가까운 우리 가족부터 떠올리며 이렇게 잘 지낼 수 있는 이유를 사랑이라 결론 지으니 자연스럽게 나 자신도 점점 챙기게 되는 것 같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톨스토이 -

  

  "산모의 영혼을 거두어라. 그러면 세 가지를 깨닫게 되리라. 사람 안에 무엇이 있는지, 사람에게 무엇이 주어지지 않았는지,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지 알게 되리라. 그것을 알게 되거든, 하늘로 올라오너라."

  하느님께 벌을 받아 세 가지 깨달음을 얻어야만 하늘로 올라갈 수 있었던 미카엘이 교회 앞에 벌거벗은 채 있었다. 지나가던 구두장이 시몬이 그에게 자신의 구두와 신발을 벗어주며 집으로 데려와 숙식을 제공한다. 미카엘은 구두장이 시몬에게 일을 배우며 일 년이 지났고, 어떤 부인이 고아인 두 아이를 데리고 구두를 맞추러 온다. 그중 한 아이는 생모가 죽으면서 아이를 덮치는 바람에 다리가 불편했지만 생모가 죽고 나자 생모의 이웃이던 부인은 사랑으로 아이들을 키우게 되었다. 미카엘은 아이들을 보며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고 하늘로 올라가게 되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이 난다.


  우울함으로 매일 힘겹게 지내게 되면서 떠오른 책이 하나 있었다. 사람은 사랑으로 살게 된다는 톨스토이의 소설이었다. 모든 원인이 나 때문은 아니겠지만 아이들도 울고 때로는 그도 운다. 나 자신이 늘 힘들다는 이유로 사랑을 뒤로 밀어 놓은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내 삶의 운명이 그의 아내이자 아이들의 엄마인데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산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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