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에는 분노… 아닌 진정
내가 느꼈던 우울과 분노는 다른 것이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분노에는 분노. 처음에는 이 방법을 써봤다. 더 화가 나서 날뛰는 모습으로 대처했는데 화가 난다고 해서 표출하게 되면 더욱더 화가 나는 느낌을 받았다. 오히려 잠시 천천히 호흡하면서 부정적인 생각이 들고 쌍욕이 떠올려지면 일기를 썼다. 그래서 내 일기장에는 쌍욕이 난무하였다. 쓰나미가 몰아치듯 저급한 단어들로 채워진 일기장은 며칠 뒤 다시 잠잠해졌을 때 다시 들여다본다. 이번에는 민망함이 쓰나미처럼 밀려온다. 저렇게까지 화가 났다니... 뭐라도 다 씹어먹을 것처럼 화가 머리끝까지 난 모습이 글 속에 녹여져 있었다. 너무 창피한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면서 이 분노의 일기장은 서서히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분노의 일기장
그가 유서를 쓰고 집을 나갔다가 다시 돌아온 뒤 며칠 동안 나는 잠을 뒤척이며 실시간으로 그가 잠을 잘 자고 있는지 살피게 되었다. 그는 쇼를 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너무나도 잘 자고 있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점점 불안해져 갔다.
그가 잘 살아있다는 생각에 안도하기도 했지만 몇 주가 지나자 나는 가끔 숨이 잘 안 쉬어져서 몰아 쉬기도 했고 식사를 제대로 할 수 없어 살이 빠지기도 했다. 그가 살아 있다는 고마움과 나와 우리 아이들을 버리고 가려고 했다는 배신감과 분노가 뒤섞여 이상한 기분을 자주 느꼈다.
시간은 흘러갔지만 나는 점점 숨을 쉬기도 어려워서 몰아 쉬기도 하고 잠도 잘 오지 않아 불이 꺼진 거실에 혼자 앉아 있을 때가 많았다. 그러면 화가 치밀다가 눈물이 흘러내릴 때도 있고 기분이 점점 다운되어 온갖 안 좋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때 떠오른 것이 일기장이었다. 일단 이 나쁜 기분도 한번 적어보자는 생각을 했다. 쌍욕이든 나 자신에 대한 푸념이든 그 어떤 것이든 일기장에 써 내려갔다. 아무에게도 하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를 하면서 쓰다 보면 마치 과식한 것이 서서히 소화되듯 마음속의 화가 내려갔다.
유서 사건 이후 두 달쯤 지나 그가 출근하여 없고 아이들은 잠이 든 새벽 시간에 주로 분노가 폭발하였는데 그래서 일기장에 나의 분노를 적어내며 해소해 나가기로 했다.
쓰레기 같은 내 인생.
모든 게 부정적인 요즘이다.
되는 일이 없고 작은 것에도 짜증이 난다.
여기서 벗어날 방법도 보이지 않고
앞으로도 좋아질 것 같지가 않다.
울고 싶다. 숨어 지내고 싶다.
힘든 상황에서 더 힘이 더 들 때는 욕이 나온다.
다시 기분이 가라앉는다.
이틀 전, 추가로 신용대출을 받아보려고
주거래 은행에 갔는데 불가했다.
앞으로가 막막하다.
그는 살았지만 나는 살아있지 못하였다.
어머님 생신인데 화가 나서 가지 않았다.
통화만 했는데
못 온다는 말에 좀 서운해하시는 느낌이었다.
다음 달은 어떻게 버텨야 할까.
통장에 자꾸 구멍이 난다.
여기서 구멍이 나면 앞으로 채워나갈 힘이 없다.
그래도 일단은 버티기로 했다.
이보다 더 바닥은 없으니까.
낮에 계란을 꺼내다가 깼는데 치우자마자
이번엔 밥이 들어있는 유리 용기를 떨어뜨려
와장창 깨졌다. 되는 일이 없다.
하도 되는 게 없다 보니 이제 별생각이 없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지 막막하기만 하다.
둘째가 샤워를 안 하겠다고 계속 울었고 떼쓰기를 반복했다. 너무 열받아서 소리 지르고.. 분풀이를 둘째에게 했다. 그러다 그 자리에서 아이가 오줌을 싸서 다시 욕조에 넣어 샤워를 시켰다. 진짜 지치고 너무 힘들었다. 거의 한 시간을 그러고 있으니 너무 힘들다.
도저히 안될 것 같아 둘째에게 고아원에 보내겠다고 했는데 첫째가 “그럼 제가 키울게요. 그러니까 그런 나쁜 말은 하지 마세요.”라고 말한다.
아이들이 가까이 와서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말 안 들어서 미안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는 사이 나는 둘째를 보육원에 보내는 상상을 해 본다. 도저히 키우기가 어려운 아이라고 생각되었다.
새로운 날이 시작되었다. 여러 가지 감정이 매일 생긴다. 그런데 좀 이상한 것은 감정이 없이 살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이혼하고 싶다.
그런 생각이 막연하게 가 아니라
실행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도 그렇지만 다들 자기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자신의 아들이 유서를 쓰고 나갔는지 어쨌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시어머니와 미안함을 모르는 시아버지.
나만 불행한 느낌이 너무 싫다.
우리 아기들은 여자애들이라 엄마가 더욱 필요할 텐데 그것보다 나의 이런 분노 섞인 기분, 더러운 현실, 감정의 비중이 점점 더 커져만 간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모르겠다.
분노를 쓰며 분노할 시간을 늦추자
가족이나 주변 친구들에게 할 수 없는 이야기들.
나의 존재에 대해서는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공개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브런치에 연재해 보기로 했다. 글 쓰는 재주가 원래 없었기 때문에 잘 써보자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지만 연재를 하기 위해서는 정해진 날짜에 꼬박꼬박 정리된 글을 올려야 하기 때문에 곧 나와의 약속이 되었다.
어떤 날은 술술 써 내려갈 때도 있었지만 쓰다 보면 그때 그 상황이 왜 그랬는지 생각을 쥐어 짜야하는 글도 있었다. 안 좋은 상황도 쓰다 보니 그냥 지나간 시간들 중 하나였고 그 상황에 연연하거나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점점 하게 된다. 이미 벌어진 일이니 앞으로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