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선 Jan 29. 2023

선택할 자유

지치지 않고 최선을!

Black pink in your area. 귓가에 강하게 박히는 이 선율을 듣자마자, ‘이제 아무 생각 없이 카페 오기도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인지라 푸르진 않지만 그래도 고즈넉한 자연을 감상할 수 있는 큰 창, 직접 로스팅한 원두로 내린 꽤 맛있는 아메리카노, 평균 이상은 하는 우드 앤 화이트 인테리어, 심하게 북적거리지 않는 적당하게 넓은 테이블 간격. 이만하면 주말 오후를 근사하게 보낼만한 카페라고 생각했는데, 공간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아이돌 노래라니. 나는 여자 아이돌 노래를 시즌 별로 꽤 재생하는 편이지만, 그 노래를 카페에서 듣고 싶지는 않았다.


이곳에서 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공간에 대한 열망을 지울 수가 없었다. 바로 안락하고 평화로운 내 방의 책상. 적당한 온도와 조명,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주인장 마음에 쏙 드는 플레이리스트, 허리와 목, 손목 건강에 좋게 설계된 구도, 따듯하고 맛있는 커피와 차가 무제한으로 제공되는 공간. 철저하게 내 취향의 것들만 올라와 있는 그곳으로 서둘러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 컵에는 뜨거운 아메리카노가 가득했고, 나는 아이돌 노래 메들리를 듣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비단 카페뿐만이 아니다. 지난 토요일 저녁, 발길 닿는 모든 술집에 우리가 앉을자리가 없었다. 겨우 찾은 곳은 여느 대학가에 있을 법한 시끄러운 공간. 뚜렷한 공통점이 없는 자극적인 안주들과 함께 길게 쓰여있는 (하지만 음식에 대한 정보는 거의 얻을 수 없는) 음식 설명, 어딘가 인위적이어서 불편하게 느껴지는 환대와 한데 얽힌 노래와 대화 소리. 이런 자잘한 것은 사람 많은 동네에서 어우러져 술을 마시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라 해도 혀 끝에 닿는 조미료의 맛이 퍽 강렬했다. 좋지 못한 의미로 말이다.


낙지볶음, 감자전, 큐브 스테이크. 우리가 시킨 전혀 다른 세 가지의 요리에서 어쩐지 엇비슷한 맛이 났다. 요식업의 세계에서 슴슴한 맛은 대부분 특색 없는 맛으로 치부되기 마련이라서 특히 술집의 안주들은 감칠맛에 집착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런 관점으로 봤을 때 이 음식은 객관적으로 술집에서 느낄 수 있는 평균 이상의 맛이었다. 그런데 나는 이 음식을 먹을 때도 내가 점심에 집에서 해 먹은 파스타 생각이 났다. 마늘, 방울토마토, 닭가슴살을 구워서 후루룩 볶아 먹은 오일 파스타. 후추와 치즈로만 간을 끝낸 슴슴한 음식.


내가 갔던 카페도 식당도, 누군가에겐 꽤나 사랑받는 공간일 텐데 나에겐 맞지 않는 모양이다. 회사를 그만둔 뒤 ‘선택할 자유’가 생긴 뒤로 선택이 어려워지고 있다.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몰라서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에 꼭 들어맞는 선택할만한 보기가 아주 적어서. 예전엔 많은 것을 선택할 자유가 없었다. 광화문에서 미팅을 끝낸 뒤 일을 끝낼 카페를 고르는 기준은 단 두 가지. 자리와 콘센트의 여부였다. 미팅이나 회식 장소를 고르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예약 가능 여부였고, 사실 그 기준에 부합하는 곳들은 대부분 프랜차이즈 업체였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하루의 모든 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선택할 자유가 생겼고, 취향은 점차 뾰족해지고 있다. 그냥 끼니를 때우기 위해 식당을 가거나, 단순히 일할 공간을 찾아 아무 카페나 가야 할 필요가 사라졌다. 선택 앞에 길을 잃고 모든 것의 최선을 누리고 싶은 마음이 때로는 피곤하기도 하지만, 될 수 있는 한 선택의 바다에서 마음껏 헤엄치고 싶다. 아이돌 음악을 들으며, 자극적인 음식을 먹으며, 나답게 살려고 얻어낸 이 자유 앞에서 조금 더 까다롭게 굴기로 다짐한다. 어렵게 고른 그 최선이 주는 행복감은 근사하고 길어서, 그걸 누리려는 노력에 박차를 가해봐야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