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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작가 Apr 17. 2021

출산의 기억-나는 나,너는 너

여자, 엄마, 아줌마로 잘 사는 이야기

첫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을 기다리는 마음은 뭐랄까? 남들 다 낳는 거니까 괜찮겠지 라는 1%의 생각과 경험해보지 못한 것에서 오는 두려움과 걱정이 99% 정도 된다. 맘 카페 게시판에는 출산할 때 얼마나 아픈가요?어떤 느낌인가요? 라는 질문이 올라오기도 하는데 먼저 첫 출산을 경험한 어떤 이는 항문으로 큰 수박이 나오는 느낌이라는 이해하기 쉬운 문장으로 출산을 표현해주었다.


출산 예정일이 며칠 지나고도 첫 아이는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예정일이 지나도 아이가 나오지 않으면 엄마 뱃속에서 아이가 커져서 엄마도, 아이도 고생한다는 말을 들었다. 걱정도 되고 조급한 마음에 집 근처에 있는 운동장을 3~4시간 정도 걸었다. 땀에 흠뻑 젖을 정도로 힘들게 걷기 운동을 하고 온 날, 바로 그날 저녁부터 배가 사르르 아프기 시작했다. 못 견딜 정도의 아픔은 아니라서 자는 둥 마는 둥 뒤척이고 있었는데 새벽 2시부터 심하게 배가 아팠다. 몇 시간 동안 조금씩 진통을 겪고 있는 중에 뱃속에서 퍽~하고 터지는 소리와 함께 아이가 발로 차는 느낌이 들었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일어서려는 데 아래로 물이 쏟아지듯 흘렀다.     

양수가 터진 거였다. 자궁 안에 태아를 보호하는 액체가 가득 차 있고 이것을 양수라고 하는데 내 의지와 상관없이 주르륵주르륵 흘러내렸다. 이젠 진통 간격과 상관없이 빨리 병원에 가야 했다. 자고 있는 남편을 깨워 미리 챙겨 둔 출산 가방을 챙겨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도착하니 새벽 6시쯤이었고 출산 전 검사와 관장을 하고 분만실에서 진통 간격을 체크했다. 진통은 배가 너무 아팠다가도 어느 순간 몇 분 동안은 잠잠해지고 또다시 폭풍 같은 아픔이 몰려오는 거라서 배가 아프다가도 잠잠해지면 꾸벅꾸벅 졸고 또다시 배가 아파 고통스러워하는 지루한 시간이 반복되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시계를 보니 점심시간을 훌쩍 지난 낮 2시쯤이었다. 병원 창문으로 들어오는 희미한 햇살에 조용함까지 더해져 나른하고 늘어지는 오후였다. 진통은 계속되었지만 드라마에서 흔히 보았던 것처럼 주변 사람의 머리를 쥐어뜯으며 소리 지르는 정도의 고통은 아니었다. 그런데 오후 5시를 넘어서부터 진통이 점점 강해지고 고통스러웠다. 지금 당장이라도 아기가 나올 것 같았다. 배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아래쪽에 아기가 움직이고 꿈틀거리면서 바로 나올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항문 쪽으로 입구에 단단한 벽돌이 있고 금방이라도 벽돌이 나올 것 같은 느낌에 답답했다. 계속되는 진통에 제발 수술이라도 해달라고 말하고 싶은 시간이 고통스럽게 흐르는 중이었다. 그때였다. 남편이 옆으로 가까이 오더니 내 손을 잡고 말했다.     


“나… 잠깐 나가서 빵 좀 먹고 와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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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저녁 6시쯤 되었던 것 같다. 나는 이렇게 배가 아파 죽을 것 같은데 너는 배가 고파서 지금 빵을 먹으려고 하는 거니...... 게다가 지금 바로 아이가 곧 나올 것만 같은데 말이다. 새벽부터 와서 점심도 못 먹고 12시간 정도를 진통하는 사람 옆에 있었으니 멀쩡한 사람은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싶기도 하다. 기가 막히고 화도 났지만 그 순간 깨달은 건 우리가 철저히 남이라는 사실이었다.     


-- 나는 나고 너는 너구나! --  당연하면서도 단순한 진리였다.     


이 당연하고도 단순한 진리를 잊고 사람들은 부부 사이에 너무 많은 기대를 하고 같이 슬퍼하고 같이 기뻐하고 같이 아파할 거라 착각한다. 똑같은 상황에서 나는 화가 나지만 남편은 전혀 모를 수 있다. 나와 비슷하게 생각하고 느낄 거라 착각하지 말자는 거다. 물론 모든 부부에게 들어맞는 얘기가 아닐 수도 있다. 어떤 남편은 아내가 입덧으로 힘들어하면 그 괴로움을 같이 느끼며 입덧도 같이 하는 남편이 있다 하고 출산으로 고통받는 아내를 보며 대신 아파주었으면 하는 마음에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가끔, 아주 가끔 있다고 들은 적이 있긴 하다만 남자의 공감 능력은  확실히 여자와는 다른듯 하다. 가끔 무심하고 공감 능력 부족한 남편을 볼 때면 그날, 첫 출산의 기억을 떠올린다. 그것이 다툼의 이유가 아니라 당연하고 단순한 진리를 잊지 말자는 되새김질 같은 거라고 해야 할까?


부부는 일심동체가 아니다. 나는 나, 너는 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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